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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Oct 20. 2021

#07. 동계캠핑 맛보기

다섯 번째 모녀 캠핑

캠핑 황금기 9월에는 백신 맞느라 한 번 밖에 캠핑을 못 갔으니 10월은 가을 캠핑을 제대로 즐길 셈으로 매 주말 캠핑장을 예약해두었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다.

분명 지난주 운전할 땐 에어컨을 켰었는데 이젠 히터를 틀어야 한다.

아이의 등교 전쟁과 엄마(외할머니)의 화풀이로 마음이 계속 불편했지만.. 어쩌겠나 가족인데..
https://brunch.co.kr/@puppy3518/52

풀 죽어 있는 아이에겐 같이 노력해보자며 현실적인 방법을 제안했고(10분 단위로 알람 맞추기), 기특하게도 애플 워치를 차고 자며 스스로 일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도 늦을 때도 있지만 큰 충돌 없이, 아픔 없이 노력하는 것만 해도 정말 대견하다.

홧김에 멀쩡한 선풍기를 박살 낸 엄마 또한 풀 죽어 계시다. 아마 화를 못 참고 물건을 부순 자신의 행동에 자괴감 또한 들었으리라. 그래서 엄마에게 면죄부를 주기로 했다.  "엄마, 캠핑에서 먹게 도토리묵 무쳐줄 수 있어?"  무침의 대가 엄마는 신이 나서 직접 묵을 쑤어 엄마표 밀키트를 챙겨주셨다. 부작용은 엄마의 수다 모드도 함께 회복되었다는 것.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이번 목적지는 화천

미리 예약을 못해서 자리가 있는 곳 중에서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는 강원도 화천의 캠핑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막상 내비게이션을 찍어 보니 3시간 남짓 걸린다. 생각보다 꽤 머네.


이너텐트용 라디에이터를 구입했기에 난로는 두고 갈까 하다가, 믿기지 않는 일기예보(화천 일요일 최저 기온 -2도)에 급히 난로를 챙겼다. 난로를 쓰려면 등유를 사야한다. 혹시 근처 주유소에서 등유를 팔지 않을까 봐 운전을 하면서도 '등유'를 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주유소를 지날 때마다 등유를 파는가 빠르게 스캔하며 지나치기를 여러 번, 드디어 '실내 등유'라 붙어 있는 주유기가 있는 주유소를 발견했다.


무시동 히터의 경유를 처음 살 때, 노즐 잡는 강도를 조절 못해서 무서운 속도로 넘쳐흘렀던 흑역사가 있기에 이번에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주유기 앞에 차를 대자 사장님이 오시더니 통 사이즈를 보시고 10리터 드리면 되죠? 하고 손수 넣어주신다. 사장님이 그 순간 천사로 보였다.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은 주유소의 강아지

등유 주유기 옆에 강아지가 있길래 아이에게 말해주니 신나서 나와 한참을 쓰다듬고 사진도 찍어주고 예뻐해 준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마음의 짐이었던 '등유'도 사고 아이도 예쁜 강아지와 놀았기에 남은 길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엄마, 다음에 기름 넣을 때 요기 또 오자"

"응? 다음 주에 포천에 오니 그때 들르면 되겠네. 그런데 엄마가 저 주유소 못 찾으면 어쩌지?  아 맞다! 영수증에 주소 있어"


그렇게 등유를 산 영수증은 아이의 휴대폰 케이스 안쪽에 지금까지 보관되고 있다.




화천, 너 참 멀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원도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지도에서 눈으로 본 거리는 도로 형태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했다. 꼬불꼬불 천천히 가다 보니 너무나 멀구나.


그래도 점점 북쪽으로 갈수록 제법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산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도 모르게 "꼬마화가, 저기 산 좀 봐봐. 어머어머 너무 예쁘다"라고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엄마도 이제 나이 드나 봐. 자연이 좋아지네, 그래도 아직 완전 나이 들어 보이진 않지?"

"응. 지금은 아니야, 그런데 엄마는 등산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걸 보니까 곧 그렇게 될 걸. 좀 더 지나면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잠자리 안경을 쓰고 정면 보고 삼성폰 기본 카메라로 셀카를 찍어서 실명 프로필 닉네임에 상태 메시지는 없이 올릴걸"


으아.. 너무 디테일한 묘사다.

나이 들어 보이고 싶지 않으면, 아이가 묘사한 모습 반대로 해야겠다.


아이와 이런저런 수다 떨면서, 그래도 나오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나오면 우리에게만 집중할 수 있기에 시시콜콜한 대화여도 더 깊이 가슴속에 남게 된다.


휴게소까지 들르느라 거의 4시간 만에 첫 번째 목적지인 동구래 마을에 도착했다.


묘한 매력의 동구래 마을

화천이 이렇게 물이 많은 동네였구나!  넓은 강가에 쭉 뻗은 자전거도로를 보자 힘든 것도, 추위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얼른 주차하고 구경하자!

그러나 차 뒷문을 열고 겉옷을 챙기는데..


어.. 어.. 차가 막 뒤로 간다.

"어! 차가 왜 이래? 꼬마화가! 가까이 오지 마. 차가 이상해! 막 움직여"

내 힘으로 안 될 것을 알지만 짐까지 실은 거대한 차가 움직이면 대형사고가 날거란 생각에 양손으로 차를 잡고 아이부터 피신을 시키는데 갑자기 든 생각!


'아! 여기 평지지.. 그러고 보니 계기판도 꺼져있네...'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과 유유하게 떠나는 옆 차의 뒷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렇다. 옆 차가 나가는데 내 차가 뒤로 가는 듯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이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나 스스로에게 창피한 느낌?

이런 풍경 보여주고 싶어서 떠난다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는 동구래마을은 코로나로 편의시설 운영을 안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예쁜 정원과 저 멀리 강원도 산자락의 기세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도자기 체험 안 하고 커피 좀 안 마시면 어떠리.. 그러나 화장실을 쓸 수 없는 건 아쉬웠다. 깨끗해 보이는 화장실이 있었지만 우리 바로 앞에 이용하셨던 아주머니가 나오시며 TMI를 던지신다.

"어머! 막혔네. 배가 아팠거든.. 뚜껑 덮어놔야겠다".

우리는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했다.


아직은 초록이 많이 남아 있는 10월의 정원


여행의 묘미는 시장

이번 캠핑부터는 웬만하면 밀키트를 준비하지 않고 현지 시장에 가서 직접 재료를 사기로 했기에 화천시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시장과 캠핑장이 가까워 동선도 아주 좋았다.


잘 정돈된 현대식 시장이었고, 사람이 없어 좀 쓸쓸해 보였다. 아마 5일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라 그럴 거라 예상한다. 점심을 안 먹었기에 김밥과 메밀전,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화천 막걸리 1병을 사서 캠핑장으로 출발.


깔끔한 화천시장


화천 휴 캠핑장

오전 10시에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캠핑장 도착하니 곧 어두워지게 생겼다.

빨리 텐트 치고 정리해야겠다.


그러나, 전에 어둠 속에서도 잘 쳤던 텐트가 그날따라 왜 이리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인지.. 사실 여러 번 씨름하면 하긴 했을 텐데 구세주처럼 캠핑장 사장님이 나타나셔서 한 번에 텐트를 세우고 치는 법을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사양하지 않을게요.)


쉘터로 바꾸고 좌식으로 지지고 볶다 보니 너무 복잡하여 베스티블이란 걸 추가로 구매하여 가져 갔다. 텐트 한 면에 연결하여 연장하는 작은 텐트 같은 건데 사용 사례를 찾아보니 한 블로거는 그 공간을 방처럼 쓰고 있었다. 우리도 여기서 잠을 자고 쉘터는 거실로 쓰면 되겠구나! 해서 급하게 베스티블과 그라운드시트까지 샀다(방으로 쓰는 텐트에 왜 투명한 창이 있는 거지? 란 의문과 함께).


어째.. 본체보다 영 부실하다. 본체는 그라운드시트와 잘 체결이 되는데 이건 따로따로 논다. 스커트는 휘날리고 이 추운 날 여기서 잘 수 있을까? 불안하다.


어마어마한 짐을 내려놓고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엄마! 여기 와서 나 사진 찍어주라. 노을이 정말 예뻐"

정리하느라 미처 하늘을 못 봤는데 와.. 멀리 온 보람이 있다. 명품 노을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 작품들. 힘들어도 괜찮아. 노을을 봤으니.



늘 위험할까 봐 구석에서 음식을 해서 테이블에 차려주다가 이번에는 아이도 같이 하기 위해 미니 화로를 준비했다. 고체연료를 3개는 넣어야 고기가 좀 익는구나~ 싶었지만 처음 구워보는 고기에 아이는 신이 났고 고기 굽느라 밥을 제대로 못 먹겠다고 귀여운 투정까지 부린다. (훗. 이제 알겠니. 엄마는 늘 그랬다고)


잠시 불멍도 했으나 바람이 너무 불어 어린 왕자가 뿜어대는 불길은 우리를 잡아먹고 싶은 요괴처럼 보일 정도로 맹렬히 우리에게 달려들었고, 아이의 바지는 구멍이 나버렸다.

빠르게 정리 후 텐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사장님께서 아버님 생신이시라고 케이크를 나눠주셔서 엄마 고기 구워주느라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단 아이는 나머지 요기도 든든히 했다.


밖은 추웠지만 생각보다 난로는 너무 따뜻해서 영화 보고 자면 되는데 아쉬운 건 인터넷이 느려도 너무 느리다. 결국 끝까지 못 보고 집에서 마저 보기로 하고 포기했다.


내 계획으로는 난로를 끄고 베스티블로 옮겨 전기장판과 라디에이터에 의지해서 자는 것인데 아무리 돌로 스커트를 눌러놨어도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추운 베스티블에선 못 잘 것 같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믿고 오늘은 난로가 있는 쉘터에서 자기로 한다.


자는 동안 4번 정도 깼다.

1. 자는데 덥다. 정말 너무 더워서 깼다. 불을 어떻게 줄이는지 모르겠다. 추운 것보다 낫지 하며 그냥 잔다.

2. 경보기가 울린다. 놀라서 가운데 창을 살짝 열고 다시 잠이 든다.

3. 두 번째 경보기가 울린다. 또 놀라서 창을 더 열고 다시 잠이 든다.

4. 세 번째 경보기가 울린다. 창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한다.


처음에 준비한 경보기는 로켓 배송으로 받을 수 있는 저렴한 제품(못생김)이었는데, 왠지 싼 게 비지떡이 아닐까? 하며 불안함에 좀 더 가격이 있는 제품으로 추가 구매하여(게다가 예쁨) 두 개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밤새 열 일 한 것은 처음에 산 못생긴 저렴한 제품이었다. 흠.. 비싸고 예쁜게 다가 아니다.



자고 일어나니 한겨울

자고 일어나면 성별이 바뀌어있다거나, 환경이 바뀌었다거나 하는 영화처럼 그날 아침이 그랬다.

가을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겨울이 되었다 해야할까?

전날 밤 춥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침의 텐트 밖은 정말 한겨울이었다. 빨리 정리하고 출발하려면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나갈 수가 없다. 차와 밖에 꺼내놓은 짐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있다.


10월의 고드름

그래도 용기를 내어 화로대부터 씻으려 나갔는데 고맙게도 물이 얼어 씻을 수가 없다.

짜파게티를 끓여 아이랑 아침을 먹고(사실 잘 못 끓여서 다 불었는데 양념이 다했다. 고마운 양념) 속도를 내 정리를 시작했다.


이제 얼추 정리가 끝나 텐트 문을 열자 건너편 텐트의 아주머니가 구경 오신다.

"어쩜 이렇게 일을 잘해요. 혼자 왔다 갔다 일사천리야. 이런데 많이 다녀봤나 봐요?"

"아뇨. 이제 겨우 5번째예요"

"장비도 어쩜 이렇게 다 있어~"

"제가 욕심이 많아서요. ^^;;"


늘 허둥지둥해서 가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정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구나. 아주머니의 칭찬에 가속도가 붙어 1등으로 캠핑장 탈출.


열심히 일하는 칭찬받은 고래와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작품들


"안녕~ 화천~"




이렇게 5번째 캠핑을 무사히 다녀왔다.


아이에게 이번 캠핑 많이 멀고 힘들지 않았냐 하니 추웠지만 풍경이 예뻐서 좋았다고 한다.

아이가 노을을 보고 감탄하고, 넓은 강물을 한없이 바라보던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사실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그래도 세상엔 유튜브보다 더 아름답고 재밌는 게 많다는 것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고 싶다. 더불어 늘 바쁘게 사는 나에게도 쉬어가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주에 또 간다. 간식을 사서 아이가 좋아하는 강아지가 있는 주유소도 다시 들를 계획이다.


동계캠핑 맛 본 후기

생각지도 못한 겨울 날씨에 아침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미리 동계캠핑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난로 덕에 따뜻하게 잤지만 경보기가 울리는 걸 보니 난로 옆에서 자는 건 피해야겠다. 새로 구입한 쉘터는 잠시 넣어두고 집에 모셔두고 있는 무시동 히터와 도킹 텐트 + 난로 조합으로 12월까지는 다녀볼 생각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 찾아보고 알았다. 베스티블은 '현관'의 용도인 것을.. 하마터면 멀쩡한 방 두고 현관에서 잘 뻔했다. 거기서 잤으면 들이치는 바람에 우리는 백 퍼센트 감기에 걸렸을 거다. 아이는 뒹굴어다니다 데크 위로 굴러가 잤을 거다.

또 한 가지, 이너텐트용 라디에이터는 하나도 안 따뜻했다. 정말 작은 이너텐트에서 사용한 게 아니라 그런 건지 앞으로도 쓸 일 없을 것 같아 또 당근행 해야 하나 싶지만 겨울에 옥탑이 얼 때도 있으니 옥탑에서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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