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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r 04. 2022

캠핑 휴식기 프로젝트 2 (반지하 아지트)

+ 페인팅하다 갇힌 썰

캠핑을 쉬는 동절기 동안 '가만히 있지 못하는 ' 걸린 나는 "감성 옥상 시즌2 꾸미기" 완성되어가자 슬슬  다른 것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만의 공간 만들기!


2년째 재택근무와 아이의 온라인 수업으로 세 식구가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가끔은 좀 지치기도 했다. 이전엔 주로 밖에서 생활하니 귀가 후 집에서 만나는 식구들이 반가웠다면, 이젠 세 끼를 다 챙겨야 하고 항상 북적북적하니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고 해야 할까?


잠시 운동을 하러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을 다녔지만, 마스크 쓰고 하는 운동은 갑갑했고 무엇보다 9시 제한으로 바뀌며 더 높아진 밀집도에 센터에서 운동하는 것도 포기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주택의 반지하 세입자가 계약 만료 후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바로 집을 내놓았으나 이 동네 원룸 공실이 남아도는 상태에서 반지하는 아예 보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근처에 큰 대학 세 개가 모여 있는 동네라 동네 원룸들은 늘 인기가 많았는데..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 등으로 점점 공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오피스텔을 선호하니 지하는 인기가 없다.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엄마의 시름이 깊어지던 어느 날..



그렇다면, 내가 써보면 어떨까?

집이 작아 매트 펴놓고 운동할 공간이 없는 게 늘 아쉬웠었다.

지하 공간을 예쁘게 꾸며놓고 나만의 홈짐 & 늘어가는 캠핑 짐 보관 목적으로 쓰면 딱 좋겠다.

매달 월세가 나간다면 달마다 계속 유지할지 고민이 될 것 같아 쿨하게 엄마에게 1년 치 월세를 입금하고 올해 말까지 내가 쓰기로 했다. (그러나 왠지 계속 연장할 것 같다.)


내 기억 속 반지하 원룸은 2년 전 전체 리모델링하여 깔끔한 모습이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살던 집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보였다.


* 도배지는 뜯어진 곳이 없으나 환기를 잘 안 했는지 구석에 곰팡이가 살짝 보인다. >> 곰팡이 제거 + 페인팅

* 반지하는 환기가 중요한데.. 욕실 또한 샤워 후 문을 닫아놓았는지 안쪽 경첩이 다 녹이 슬었다. >> 교체

* 방문 고리가 떨어져 있다. 문을 닫으면 안에서 열리지 않는다 >> 교체

* 화장실 휴지 걸이가 녹이 슬었다. >> 교체

* 아저씨 냄새가 난다. >> 환기 + 디퓨저 + 공기청정기

* 네모난 전등은 너무 환하고 못생겼다. >> 예쁜 전구 등으로 교체

* 그 외 자잘한 수리


반지하 아지트 만들기 프로젝트 시작!




힘들지만 큰 보람, 페인팅

벽이 네모반듯하고 도배 상태가 괜찮아서 곰팡이 지운 얼룩만 무시한다면 쓸만하긴 했다.

하지만, 여긴 특수 목적을 가진 곳이니 평소 해보고 싶었던 진한 벽으로 칠해보기로 한다.


전체 다 칠하면 어두울 테니 들어와서 바로 보이는 두 면만 그레이+네이비 계열로 칠하고 나머지 면은 천장을 빼고 약간 노란빛이 도는 흰색을 칠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드디어 페인팅 날,

친구들과 연말 점심 약속이 있었고, 1년 동안 모임을 한 번도 못 하여 그대로 쌓인 회비로 근사하게 호텔에서 샴페인 잔을 부딪혔다. 더 있고 싶었지만 페인팅도 해야 하고 마침 집에 일도 있어 서둘러 와 우아한 코트와 옷은 벗어두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내려갔다.


휴대폰에 페인트가 묻을까 봐, 페인팅하면서 음악 들을 스피커와 휴대폰은 주방에 두고 방에 들어가 문 뒤부터 바르기 위해 문을 닫자.. 급 떠오르는 불안감!


"아! 문 고장 났지.."


물 한 모금 없는 상태로 빈 방에 페인트와 나만 남았다. 탈출은 우선 페인팅하면서 고민하기로 하고 쓱쓱 칠하는데 평소 불시에 잘 들이닥치시던 엄마도 그날따라 소식이 없다.


지하에 혼자 있다 누군가 갑자기 번호키를 누르면 놀라기도 하고 여긴 엄연한(비용 지불하고 쓰는) 내 공간이니 집주인께서는 불시에 방문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지 하루 지난 시점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알고리즘이 들려주는 노래는 계속 귀에 거슬리고, 답답함과 불안함이 엄습해 온다.

잠시 쉴 때마다 창문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려보았으나, 그날따라 최강 한파라 사람도 없다. 우리 강아지 이름을 크게 불러 본다. 골목에서 들리는 내 발소리에도 반응하는 우리 강아지가 내 목소리를 듣고 짖기 시작하면 엄마가 현관문을 열 것이고, 문 소리가 들리면 나는 엄마! 를 크게 외치는 게 탈출 계획이었다.


목이 터져라 엄마와 딸, 강아지를 불렀으나 조용하다.

야속하다. 내가 몇 시간째 소식도 없는데 (심지어 저녁 식사 시간도 지났다) 궁금하지도 않은 것인가?


혹시라도 시리가 반응할까 시리야! 를 외쳐보지만.. 귀찮다며 꺼놓은 게 생각이 난다.


두 번의 탈출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배송 오신 쿠팡 기사님!

"지금 배송된 집이 저희 집인데요. 여기 문이 잠겼는데 010-xxxx-xxxx(엄마 번호)로 전화 한 통만 해주시겠어요?"


지하 방범창에 페인트 묻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상태라 수상해 보일 수 있다. 최대한 정상인으로 보이기 위해 말도 또박또박했다. 그러나,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이상한 번호라 받지 않으셨다고 한다.)


꽤 시간이 흐른 후 강아지 산책시키던 한 아주머니께 부탁하여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막 웃으시면서 엄마와 통화하던 게 생각이 난다.

"따님이 지하에 갇혔다네요. 얼른 오셔서 문 열어주셔야겠어요."



덕분에 세 시간 만에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그저 웃겨 죽겠다는 엄마와 딸이 조금 얄밉다.

눈물 나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멋진 벽이 완성되었다.




바꿔, 바꿔, 다 바꿔

처음엔 벽만 칠하고 깔끔하게 거울과 조명 정도만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 과하게 많은 것들을 바꾸게 되었다. 고장 나거나 녹이 슨 것은 바꿀 이유가 충분히 되었지만, 2년 된 깔끔한 냉장고를 단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당근 마켓에 팔고 새 예쁜 냉장고를 산 건 양심에 찔리기도 한다.


시간내고 돈들여 바꾸고 고치고 했던 이유는 내 공간을 갖고 싶었던 게 가장 컸지만, 생각해보니 퇴근 후 집중할만한 것도 필요했던 것 같다. 지나고보니 그 시간이 참 재밌었다.


날 골탕 먹인 문고리 교체 (하얀 페인트는 탈출 시도 흔적)

 

녹슨 경첩, 휴지걸이 등 욕실용품 교체


공간이 예뻐질수록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던 예전 냉장고와 예쁜 새 냉장고


이제 채워볼까?

운동 & 캠핑 짐 수납 딱 두 가지 목적으로만 공간을 꾸며보기로 한다.

큰 매트와 있어 보이는 필라테스 기구(안 쓴다ㅠ)와 전신 거울 등 운동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문에서 안 보이는 벽에는 렉을 설치하여 캠핑 짐을 몽땅 수납했다.


짜잔~  원래 있던 블라인드가 못내 마음에 걸려 좋아하는 우드 블라인드로 교체 후 완성!


꾸미고 나니.. 운동만 하기엔 아깝다.

쉼도 더해본다. 1인 테이블과 의자를 많이 검색했는데 공간이 여유롭지 않아 컨셉을 캠핑으로 잡고 미니 테이블과 작은 캠핑의자까지 두었더니 (내 눈에) 완벽하다.


그러나, 채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운동하고 나서, 또는 혼자 있고 싶을 때 함께 할 와인과 커피는 필수

마침, 세븐일레븐에서 좋아하는 와인을 할인하여 엄청 사재기?(죄송합니다ㅠ) 하던 때라 부지런히 사다가 지하로 날랐더랬다. 지금도 와인은 꾸준히 빠지고(마시고) 들어오고(사고) 있다.




반지트, 고마워

나의 반지하 아지트에게 '반지트'라는 이름도 붙여 주었다. 반지트를 꾸미면서 꽤 재밌었고 공간에 일반 살림이 없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우리 모녀 삼대는 맥시멀 리스트(못 버리는 엄마, 계속 만들어내는 딸, 계속 사는 나)로 구성되어 있어 집이 늘 복잡 복잡한데.. 작지만 눈에 거슬리는 게 없는 이 공간이 참 좋다.


게다가 이 시국에 마스크 벗고 실컷 운동할 수 있고, 잠시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도 보고 와인도 한 잔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짐이 문제인지 사는 사람이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캠핑 짐 또한 한쪽 벽에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굳이 단점이라면, 소비가 엄청 늘었다? 정도.

어쩌다 보니 본가와 반지트, 그리고 캠핑 살림까지 세 집 살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확실히 저축은 줄고 소비는 늘었지만, 이 정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라면 투자할 만하다.

펜데믹 시대, 아직도 참 적응 안 되지만.. 이렇게라도 숨 쉴 공간 만들며 버텨야지 싶다.


아.. 아무리 좋아도 혼자만의 시간을 너무 오래 갖는 것은 금물이다!

아직은 딸이 삐질 나이이다. 적당히 시간 보내고 저녁은 가족과 함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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