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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r 16. 2022

#09. 5성급 호텔 안 부러운 캠핑

2022 캠핑 시작!

날씨가 풀려가자, 4개월간의 휴식기를 끝내고 슬슬 캠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 친한 친구 가족이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고, 소식을 전해 들으면 나도 당장이라도 짐 싸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이제 다시 캠핑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우선, 딸에게 올해도 캠핑을 다닐지 의사를 물어보니 격한 긍정은 아니어도 같이 간다고 하며, 이왕이면 바닷가 보이는 곳이 좋겠다 한다.


작년 경험을 떠올려보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은 예약하기 정말 힘들다. 그러다 정말 가보고 싶은 멋진 바다전망의 캠핑장을 발견하였고, 큰 기대 없이 바다 앞 1~4번 중 자리가 있는지 문의했다. 운 좋게도 동절기에 문 닫았다가 최근 다시 열었으며 모두 예약이 가능하였다.  우선 내 자리부터 예약 후, 친구에게 이 귀한 소식을 전했다. 이제 캠핑을 시작한 친구에게도 솔깃한 소식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같은 날 나란히 캠핑을 할 수 있었다.




즐거운 캠핑 준비(지름)

작년에 캠핑용품을 충분히 많이 샀고, 그것들은 지하에 전용 공간까지 만들어가며 전시되어 있는 상황에 또 살게 있을까? 아니다. 살 게 있었다.

우선, 올해는 차박보다는 텐트로 방향을 정했고 텐트를 바꾸고 싶었다. 화천 캠핑에서 쉘터 베스티블의 불편함을 겪으며 바로 앞 데크의 면텐트가 참 부러웠었다. 그러나,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은 큰 덩치와 무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꽂히면 해야 하는 성격인 나는, 고민 끝에 결국 면텐트를 지르고 말았다. 유튜브로 피칭 영상을 보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겁겠지만 오토캠핑만 다니면 된다며 스스로를 설득해버렸다.


그리고, 택배가 도착했다. 폴대 박스를 보고 순간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너무 길고 무겁다.

본체 또한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겁다. 그러나 면텐트의 뽀송함과 단단한 느낌에 포기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써보자 싶어 끙끙거리며 모두 다 차로 옮겼다.


SUV 중에 꽤 큰 덩치를 자랑하는 트래버스라도 면텐트 세트를 모두 넣으니 비좁다. 대충 던져놔도 테트리스까진 필요 없었는데, 이젠 나도 테트리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옳은 선택이었을까?


게다가 이미 겨울에 그동안 찜해놨던 키친테이블마저 사놓은 상태였다. 주방용품을 캠핑 박스에 넣으니 캠핑 박스, 그리들, 버너까지 모두 다 따로 가지고 다니는 게 불편하여 테이블과 키친용품이 합체된 제품으로 구매했었다. 그것 또한 크고 무겁다.


또 있다. 가을에 구입했던 난로는 너무 뜨겁고 잠자리에 적합하지 않아 팬히터를 새로 구매하여 차에 실었더니 차가 꽉 차 버렸다. 모르겠다. 그냥 맥시멀 캠퍼 하련다.




5성급 캠핑

토요일 오전, 태안의 "쉼이 있는 자유" 캠핑장으로 출발! 태안이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 아침 일찍 출발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있는 집은 알잖아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


그래도 아이와 이런저런 얘기하며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하다. 집에 있으면 눈에 보이는 일거리에 아이에게 오로지 집중을 못하지만, 차에 있으면 확실히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


멀리 온 보람이 있다.


우와! 도착하자마자 그저 탄성만 나온다. 정말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바로 해변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호텔 프라이빗 비치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아이가 바다 구경과 그네를 타는 사이, 새 텐트를 펼쳐 피칭하려던 참에 친구 가족도 도착했다.

역시, 친구 또한 경치에 감탄한다.


분위기를 즐기긴 잠깐, 우리는 얼른 집을 짓고 세팅해야 한다.

아이들이 노는 새에, 친구네 텐트도 완성되고 친구 남편의 도움을 받아 내 텐트도 완성이 되었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쁘게 정리할 틈도 없이 식사하고 분주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함께 했던 그 순간이 참 소중했다.

이래서 힘들어도 캠핑을 오는 거겠지. 5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다음 날 오전에 철수하는 것이 아쉬운 친구가 비용을 지불하고 좀 늦게 철수가 가능한지 문의했고, 운 좋게도 다음 날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취소되어 오후 4시까지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


아이들도 어른들도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지나고 보니 친구와 따로 이런저런 얘기할 시간이 없긴 했지만 그냥 함께 있던 그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다음 날 마저 아름다운..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면텐트의 뽀송함에 감동했다.

내 힘으로 기둥을 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 텐트는 오늘이 마지막이려니 했지만 아침에 마음이 바뀌었다. 비가 왔는데도 습하지 않고 파쇄석의 꿉꿉한 냄새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래서 다들 무겁고 관리가 힘들어도 면텐트를 쓰는 거구나!


오후 4시 퇴실이라 여유롭다.

아침을 먹고 나와 딸은 갯벌에 나가 조개잡이를 했다. 친구네 아이들도 같이 가면 좋았을 테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이미 바다에 여러 번 나가 가져온 옷을 다 버린 상태였다. 아쉽지만 아이랑 나와 둘만 나섰다.


넓은 갯벌에 우리만 있다. 이 시국에 이렇게 넓은 곳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한데, 아이가 정말 좋아해서 더 기뻤다. 재밌다. 재밌다. 이 말을 계속 들었다. 그럴 때 엄마가 얼마나 뿌듯한지 알까?

다행히도 눈먼 조개들이 몇 마리 잡혔고, 귀여운 게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프라이빗 갯벌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 매서운 바람

4시 퇴실이긴 하지만, 점심을 해 먹고 철수하면 4시가 넘을 것 같다.

점심은 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철수하려는데 아름다운 바다와 달리 바다 바람이 너무 매섭다.


친구 남편이 꼼꼼하게 박아준 팩들을 하나하나 빼고 텐트를 접는데, 아직 공기가 덜 빠진 육중한 텐트가 바람에 날아갈 뻔했고, 나는 그것을 잡고 있다 마치 도로시처럼 텐트와 내가 같이 날아가는 상상을 했다.


큰 덩치에 바람이 덜 빠진 텐트는 상당히 위협적이었고, 그걸 접는 것은 체력과 무모함이 가득 찬 나에게도 무리였다. 면텐트의 쾌적함을 포기할 순간이다.


정리를 끝낸 친구네 부부와 내 모습은 과히 봐줄 수가 없다. 다들 활발히 사회생활하고 나름의 멋쟁이들인데 그 순간은 거지꼴이 딱 맞는 표현 같다.


지친 모습으로 근처에서 칼국수를 먹은 뒤 헤어졌다. 몸이 천근만근 힘들다.

쥐포와 에너지 드링크로 잠을 쫓으며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 아이의 저녁을 해결하려 들린 휴게소에서 조개 잡느라 겉옷을 버린 아이에게 내 옷을 입혀주고 음식을 사러 갔었다. 추운 날씨에 엄마가 추울까 봐 걱정하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밖에 나오면 이렇게 아이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이 드러날 때가 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겠지.


헤어지기 전 친구네 부부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마 내 상태와 비슷했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캠핑을 즐겁게 계획한다. 힘들지만 오로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휴대폰에서 울리는 새 소식이 궁금하지 않은 시간.. 바쁘게 사는 우리에겐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름답다




아름다웠지만 체력적으로는 매우 힘들었던 캠핑을 끝내고, 다음 날 일하는데 입술이 다 부르튼 걸 발견했다. 그런데 그 기억을 떠올리면 슬그머니 미소가 난다. 그리고, 다음 캠핑이 또 가고 싶어 진다.


아이도 외롭지 않게 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꽤 긍정적이다. 매번 친구네와 함께 할 순 없겠지만 서로 부담스럽지 않게 조절하며 앞으로도 자주 같이 다니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면 텐트는 중고 장터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나 혼자 가능하다면야 무거워도 들고 다니겠지만, 매번 친구네 도움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전에 갖고 있던 쉘터를 다시 한번 써보기로 했다. 그것도 인기 있는 제품인데 그냥 면텐트가 갖고 싶었었다고 고백한다.


오늘 차에 있던 면텐트를 다시 꺼내 곱게 접고 집으로 옮겨두었다. 그리고 원래 쓰던 쉘터를 차로 옮겨두었는데.. 웬걸. 새털 같다. ㅠ 그래, 이제 장비 욕심은 내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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