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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ppysizedelephant Jul 16. 2019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영화 <롱 샷>을 보고 아쉬운 점에 대하여

1. 왜 맨날 이 사람들끼리 영화를 만들까


  배우 세스 로건, 제임스 프랭코와 감독 조나단 리바인과 저드 아파타우는 '아파타우 군단'으로 불리는 영화인들이다. 이들 집단의 이름이 아파타우인 이유는 세스 로건과 제임스 프랭코를 비롯한 지금은 저명한 영화인들이 저드 아파타우 연출의 90년대 틴 드라마 <프릭스 앤 긱스>로 데뷔했기 때문이다. 90년대 당시에는 드라마의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시즌1에 캔슬이 되어버렸지만, 드라마에 출연한 사람들(거의 남성)의 대부분이 지금은 승승장구하며 미국 영화계를 이끄는 사람들이 되었다.

캐나다 출신 세스 로건은 <프릭스 앤 긱스>로 배우로서 데뷔를 했고, 고등학생때 친구와 쓴 각본으로 만든 <슈퍼배드>로 연출 데뷔를 했다.


<50/50>, <더 나이트 비포>, <롱 샷> 감독 조나단 리바인과는 실제로 절친이다.

  '백인 남자-대마 코미디' 정도로 장르 구분이 가능한 영화를 만드는 저드 아파타우 군단을 이루는 이들은 주로 백인 유대인 남성이고, <사고 친 후에>, <마흔 살까지 못해본 남자>, <잭과 미리 포르노 만들기>, <소시지 파티> 등 B급 섹스 코미디를 많이 만들어왔다. 사실 이제는 이 영화들을 B급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여기에 주연을 맡은 사람들이 이제는 에미Emmy Award나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수상자인 A급 배우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티브 카렐 같은 배우는 최근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B급이라고 보기 힘들다. 할리우드 특급 배우들이 우리나라에 비해서 도전정신이 강한 편이긴 한 것 같지만 (영화 제작 환경도 할리우드가 더 다양하다) 저드 아파타우 군단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유대인 영화계 인맥을 이용하여) A급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2000년대 이후 미국 영화계를 다양화하고 차별화해준다. 아파타우 군단 소속 감독이나 배우가 <50/50>, <우리도 사랑일까>, <웜 바디스> 등의 정극을 찍는 사실도 그 다양성을 방증한다. <프릭스 앤 긱스> 출신이지만 동기들과는 조금 다른 행적을 걷고 있는 존 프란시스 데일리의 경우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연출 및 시나리오를 맡기도 했다. 

존 프란시스 데일리.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생김...

  <슈퍼배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디스 이즈 더 엔드>, <인터뷰>, <나쁜 이웃들>, <더 나이트 비포> 등 같은 영화도 '실험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이너하면서도 보편적인 취향을 공략하여 대마초 흡연pothead들의 호응을 많이 얻었다.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대마가 합법이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마초라는 소재는 미국에서 희미하게나마 반항적 이미지를 가졌다. 거기다 제작진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마이너리티 서사를 구축하여 2000년대 초중반부터 북미 백인 진보 남성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2. 우아한 여자 대통령, 더러운 남자 저널리스트

폭죽이 많이 나와서 당연히 7월 4일에 개봉할 줄 알았는데 북미에서는 5월에 개봉했다. 


  '유대인-대마초'가 표방하는 진보성을 가장 정치적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화가 이번에 개봉한 <롱 샷>이다. 이 영화는 뉴욕에서 독립 뉴스지에서 기자로 일하는 유대인 남성 세스 로건이(*이 영화에서 세스 로건은 세스 로건을 연기하고, 샤를리스 테론은 샤를리스 테론을 연기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배우 이름을 쓰기로 했다) 나치 집회에 언더커버로 조사를 나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시작한다. 죽을 뻔하면서 건진 기사를 들고 회사를 찾아가자 회사가 대형 언론 회사에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그 자리에서 퇴사 선언을 한다. 예상치 못하게 하루 만에 백수가 된 주인공은 부자 흑인 친구 회사에 들러 우울하니 좀 놀아달라고 부탁한다. 친구는 기꺼이 응하고 세스 로건을 부자/정치인 파티에 데려간다. 거기서 세스 로건이 십 대 시절 좋아하던 옆집 누나, 지금은 국가 비서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인 샤를리스 테론과 마주친다. 그가 예전에는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실직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안 샤를리스 테론은 그에게 자신의 선거 캠페인에 참여해 연설문을 써달라고 요청한다. 세스 로건이 그녀의 캠페인 활동을 좇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결국 자존심 세던 기자 출신 남자가 여자 대통령 옆에서 조신하게 내조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포스트 트럼프/미투 시대에 나올 수밖에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며, 이전의 아파타우 군단이 제작하던 '남초' 영화들에 대해 제작진 스스로 반성했거나 적어도 현재 기류의 눈치를 보았다고 느껴진다. 영화도 이전의 세스 로건이 나오는 코미디를 좋아했다면 충분히 재밌다. 적당히 뿌려져 있는 저질 섹스 조크가 세스 로건 영화 팬덤의 주를 이루는 백인 남성들에게 위협적이게 만들지 않는다. 여성 관객인 나 또한 세스 로건의 팬으로서 깔깔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지점들이 표면적 플롯의 메시지에 배반한다고 생각한다. 재치 있는 남자가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배우고 권력 있는 여성을 전적으로 서포트한다는 전체적 내용과는 달리, 이 영화는 끝까지 백인 남성 권력을 포기하지 못한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릭 앤 모티>에서 한 외계인 캐릭터가 지구에서는 '고추penis 얘기를 하면 다 웃더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파타우 군단의 영화에서는 여자가 주연을 하든 말든 웃음 포인트의 중심은 남근phallus이다. 그러니까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 스스로가 드러내고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는 반면,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은폐하는 구조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샤를리스 테론 같은 권위 있는 여성이 섹스 중에 엉덩이를 때리고 목을 졸라 달라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세스 로건이 자위하다가 정액이 얼굴에 튀는 것만큼 적극적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이는 제작진들이 남성이라서 함부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한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너가 뭘 알아'라는 식의 백래시를 인터넷상으로 자주 받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표면적 플롯만 바뀌었지, 바뀌지 않은 농담 방식의 기저에는 언제든지 사회 기류가 바뀌면 이들도 플롯만 바꿔 같은 농담을 해댈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주특기인 고추 농담은 똑같은데 여자가 주연으로 나오고 대통령까지 만드는 영화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 됐지?'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세스 로건과 조나단 리바인을 비롯해서 제작진들이 이전 자신의 코미디를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많이 들였다고는 생각한다. 남초였던 아파타우 군단 전체적으로도 서서히 바뀌는듯하다. 14살 소녀가 주인공인 <에이스 그레이드>를 연출한 보 번햄도 이쪽 사람들과 작업을 많이 했고,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도 이들의 연출작에 자주 출연했다. 이런 노력은 관객과 평단이 적극적으로 환대해줄 필요는 있지만, 관객은 단순히 여자가 주연으로 나왔다고 섣불리 만족해서는 안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여성 캐릭터가 너무 부족했고 여성 제작진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주연 역할을 여자가 꿰차는 영화는 더욱 만들어져야 하며 제대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영화의 정확한 진단 없이 그것만이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사회 기류가 조금이라도 바뀌는 순간 여성 영화는 사라질 것이고, 페미니스트들의 투쟁 또한 이전처럼 폄하될 것이다. 아파타우 군단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굳건한 할리우드 유대인 남성 연대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들이 알아서 혁명을 불러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관객, 더 정확하게는 페미니스트 관객이 앞장서서 영화계에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좀 더 욕심을 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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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샷> (2019, 조나단 리바인) 

7월 9일 관람. 7월 16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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