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번아웃과 <미드 90>

<미드 90> 이야기 별로 없음 주의

by puppysizedelephant

* 아래 글은 디지털 문학 플랫폼 던전에 '요즘 인디' 시리즈의 번외편으로서 2021년 1월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던전에 '인디/작가주의'라는 주제로 열편의 글을 썼습니다. 사실 영화 이야기를 같은 주제로 (느슨한 경계이긴 합니다만) 이렇게까지 긴 시간에 걸쳐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소설이든 시든 산문이든 연재하면서 글로 먹고 사는 모든 분들이 더욱 존경스러워질 따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느냐… 영화 비평이라는 무색한 카테고리 안에서 (아직까지는) 유일하게 이 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올해 초에 영화에 남아있는 정이 똑 떨어진 것입니다. 지난 5년간 새해를 맞이하면서 보는 첫 영화가 매우 중요했는데, 이번 새해 첫날에는 영화를 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작년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완만한 그래프를 그리면서 하락하긴 했습니다. 코로나19 덕분에 집에 나가지 않아 옷이나 화장품을 새로 사고 싶은 욕망이 줄어든 것처럼, 새로운 영화를 보고 영화 유행을 따라가고 그 유행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지 알아보려는 호기심이 창피할 정도로 사그라들었습니다. 스스로 옷과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보고 역시 탈코르셋의 논리가 맞구나 싶었는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나 흠칫 제 자신에게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제에서 아는 척하고 남들 앞에서 으쓱대고 싶어서 그렇게 영화를 봐왔나 싶은 것입니다.


지난해 새로운 옷과 화장품에 예전보다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했는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밖에 나가지 않게 되니 남들 눈치를 덜 보게 되고, 그래서 더 제멋대로 꾸미게 된 것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이걸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본 게 많았다면, 올해에는 훨씬 제멋대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새로 나오는 영화를 챙겨보느라 보지 못했던 좋아하는 감독이 만든 드라마 시리즈,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정말 끔찍한 영화, 열 번 백 번 넘게 본 영화…


새로운 영역의 탐험이나 도전을 했다고는 어려운 한 해였지만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게 만드는 중력이 작용하는 지점을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그 지점은 유별난 지점은 아닙니다. 어떻게 만든 어떤 형태의 이야기가 되었든, 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시공간의 냄새와 바람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뒷마당에 해변이 있는 괴상한 LA의 저택들이 등장하는 <빅 리틀 라이즈>, 다 보고 나면 코에 흙이 잔뜩 들어간 느낌의 <체리향기>, 가짜 나무 장판이 맨발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 드는 김애란의 단편소설들, 그리고 바퀴가 시멘트에 갈리며 내는 진동과 땀이 바람에 시원하게 식는 게 느껴지는 <미드 90>…


새해를 맞이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3년 가까이 진행하던 영화 팟캐스트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듣는 분들은 한줌에 가까운 숫자로 많지 않았지만, 공부와 대화라는 목표만큼은 성실하게 달성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칭 영화 팟캐스트라는 것을 마치는 날 지난해 동안 쌓였던 영화에 대한 실망과 무관심을 가장한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20대 초반의 전부를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5년간 영화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던 것 같은데, 팟캐스트와 학교 모두 졸업할 때가 되어서 보니 저나 영화나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영화에 해준 것도, 영화가 저에게 해준 것도 없다고 느꼈고 그것이 괘씸했습니다. 이렇게 볼품없을 거면 차라리 영화가 망해버렸으면 했습니다. 영화는 쓸모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는데 여기에 매달리고 있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한심하고 불쌍했습니다.


한편 이렇게 영화가 쓸모도 없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의미' 없는 것들이 좋아졌습니다. <미드 90>는 정말 전형적인 플롯과 캐릭터 다이나믹만을 갖추고 움직임에 집중하는 영화입니다. 느리게 움직이는 자동차 사이를 스케이트를 타며 여유롭게 가르는 아이들, 형들보다 키가 작아 스케이트를 모는데 발을 세 번 연속 구르는 주인공, 파티랍시고 가정집 부엌을 맴맴 도는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


예전에는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예술이 깊은 의미가 있고 매사가 혁명이길 기대하고 그런 것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혁명이 아니라면 화가 났습니다. 제가 느낀 실망과 분노도 여기에 기인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며 예술이며 진정 좋았던 것들이 그런 ‘깊은’ 의미가 있나요. 아니, 그런 깊은 의미 때문에 그것들이 진정 좋았던 건가요? 벌써 3-4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일이지만, 우피치 미술관에서 카라바조의 온갖 역동적인 그림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그림은 소년과 청년 사이에 있는 미남이 포도주가 찰랑찰랑 담긴 투명한 유리잔을 새끼 손끝을 올리며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넘칠락말락 하는 포도주가 만드는 미세한 물결과 그림의 주인공의 발그레한 얼굴이 좋았던 거지, 그 주인공이 바쿠스고 카라바조가 얼마나 다사다난한 삶을 산 사람인지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예술은 '무언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미드 90>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 배후에 있는 이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연기와 그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 그 유명한 <소셜 네크워크>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한 애티커스 로스와 트렌트 레즈너의 사운드트랙, ‘브로메디(bro+comedy=bromedy)’ 배우로부터 감독으로 자기계발을 한 조나 힐… 반짝반짝 빛나는 이들이 많은 영화인만큼 이야기할 거리도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해봤자 <미드 90>가 왜 좋은 영화인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자전거든 힐리스든 롤러브레이드든, 바퀴 달린 무언가를 타고 시멘트 바닥을 내달리는 것이 그 어떤 영화 기사보다 백배 낫습니다. 잠깐 밖에 나가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을 느끼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교통체증을 바라보는 것이 이 짧은 글보다 천만 배 낫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