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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섭 감독 인터뷰

by puppysizedelephant

* 아래 글은 2019년 봄 매거진 르데뷰 42호에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강렬한 색감, 찰떡같은 편집, 라이밍(rhyming)에 가까운 재치있는 대사. 단 몇분의 관람만에 이옥섭 감독의 영화임을 알아챌 수 있다. 오랜 협업자 구교환과 함께 숱한 독립영화제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이옥섭은 컬트적 팔로윙을 거느리고 있는 몇 안되는 젊은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장편 데뷔작 <메기>는 주인공 윤영(이주영)이 일하는 병원에서 성관계를 하는 엑스레이 사진이 발견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메기>가 최초 공개된 작년 10월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12월에 열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상상마당 씨네아이콘 영화제에서도 예매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시민평론가상, KBS독립영화상, 올해의 배우상 총 4관왕에 오르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옥섭 마니아로서는 섭섭하지만, 이젠 그녀를 보다 너른 물에 놓아줄 시간이다.


87년생이고, 이름은 이옥섭입니다. 저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살면서 겪었던 혼란, 항상 제가 저에 대한 궁금함을 영화로 풀었었거든요. 근데 그게 대답이 됐든 해결이 됐든, 안됐든 상관없이 그걸 찍고 나면 그거에 대한 의문이 좀 사라졌어요. 그런 것처럼 <메기>라는 영화도 제가 궁금했던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사람들의 무엇을 어떻게 믿고 살지?’에 대한 궁금함을 담은 영화예요.


<4학년 보경이>경우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라면, <메기>는 내가 누군가를 믿고 있는데 그 믿음이 맞는가, 아니면 아닌가. 그것에 대한 불안을 담았던 것 같아요. ‘나’에서 ‘너’로 옮겨가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근데 결국 그 주체도 ‘나’니까 다 내 안에서 시작된 거긴 한데, <4학년 보경이>에서는 나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신뢰를 못 주는 것에 대한 고통이었다면, <메기>는 내가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비슷한가요? ‘내가 누군가를 믿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불안?


‘우리, 지금 얘기를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쉽게 접근했던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너무 어려워지니까. 일부러 자신도 속이는 거예요, 안 어려운 척. (웃음) 어렵지는 않았고 그냥 그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거여서, 의지를 강하게 갖고 ‘이 얘기를 써야지’ 했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때 그런 고민이 너무 괴로웠어서 이 작업을 하면서 풀어보면 좋겠다, 하면서 접근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 안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여러 명이 있잖아요. 제가 가진 고민이 분산적으로 캐릭터한테 나뉘어 있어서 쓸 때 되게 재밌었어요. 해소가 되는 느낌이 쓰면서 계속 들었어요. 마음이 가는 대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려면 우선 재밌어야 하잖아요. (웃음) 재밌게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그 다음에 싱크홀, 주거 문제, 구직문제, 불법 촬영 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면 좀 좋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쓰는 정도고,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어’라는 생각은 죽어도 못하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그런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었던 것도, 영화를 보시고 얘기해주시잖아요. 기자님들이나 GV에서나 얘기할 때 알게 된 거예요. ‘내가 그런 문제들을 건드렸구나’라는 거를 되게 뒤늦게 알았어요. 그때 느끼고 있는 것들을 쓰니까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보였던 거지, ‘그 문제를 가져와야지. 내가 이 고통을 겪고 있으니까 주거 문제 가져와야지’ 이런 식으로는 못했었던 것 같아요. 다시 짚어주시니까 ‘아 그랬네, 근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게 맞았네’ 이렇게.


관객과의 대화(GV)에서는 ‘본인 이야기에요?’라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영화가 좋은 이유는 제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만약 제 이야기라고 한들 극이라는 방패막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안에서 더 자유롭게 얘기도 할 수 있는 거고. 제가 약간 드러날 듯하면서도 숨을 수 있는 게 영화의 좋은 점이라 생각하거든요. 항상 제 이야기냐고 물어보실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애매한 거예요. ‘50대 50이요’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그런 질문들을 받으면서 ‘내가 나를 많이 들여다보고 사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브라이트 퓨처 부문에서 상영됐을 때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어요. 왜 당신의 영화는 홍상수 영화 같지 않냐는 거에요. (웃음) 해외에서 보시기에 한국영화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가 익숙했었나 봐요. 처음에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평론가분께서 (영화를) 소개해주실 때도 한국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는 다른 영화라고 소개해주시고. 그때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기자분을 만났는데 왜 홍상수 영화와 다른지를 물어보셔서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라고 잠깐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런 거 물어봤어요. 한국이 지금 이렇냐고요. (웃음) 한국이 이러면 너무 끔찍하다, 도망가고 싶다, 이런 얘기도 해주시고. 우리나라 독립영화제나 국제영화제에서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보러 오시더라고요. 접근성 자체가 다른가, 이런 생각도 들었고. 젊은 분들이 되게 좋아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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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진 보는 걸 좋아해요. 아니면 배우의 의상이나 미술. 어떤 이야기가 막혔을 때 막 사진을 봐요, 그냥. 저의 상태에 따라 어떤 사진이 눈에 들어올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느 이야기가 안 풀릴 때 어느 사진에 더 눈길이 가는 거예요. 다 그 당시에 봤던 이미지들이 이야기에 투입, 아니면 연결이 되는 것 같거든요.


<메기>에 나왔던 이미지는… 그 당시에 지진이 한국에 일어나고 있었고, 동기 언니랑 시나리오 쓰기 전에 이야기하면서 사진을 보여줬어요. 실제 일본 사진을. 일본에서 편의점이 있는데 이렇게 (테이블에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 구멍이 난 거예요. 그래서 이 편의점에 사람이 갇히게 된 거예요. 실제로는 이 뒷문으로 나갔대요. 근데 이렇게 편의점이 있고 싱크홀이 (주변에) 있으면 ‘여기에 못 나가서 고립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로 시작하면서 그 싱크홀이 수정을 거치면서 그런 형태로 남았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이거였어요. 계속 깎이고 더해지고 깎이고 이러면서. 저를 시나리오 쓸 때 자극했던 건 이미지, 사진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안 풀리는 스토리랑 연결되면서 뭐가 팍 풀리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에 되게 오래된, 지나온 시간을 찍은 게 아니라 지금 나, 지금 2017년의, 2018년의 나를 쓰고, 느끼고, 그리고. 이래서 아마 더 생생한 느낌이 있어서 더 컬러풀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떤 소설가님이 해주셨던 얘기였는데, 슬픈 거는 안 슬프게 쓰고, 안 슬픈 건 슬프게 쓰는 게 스킬이라는 거에요. 예전에 집회 같은 거 나갈 때 광화문 도로에서 기타치고, 사람들이 싸 온 주먹밥도 먹고, 같이 얘기하고. ‘집회가 이렇게 즐거울 수 있네’가 20대 초반 때 되게 충격이었거든요. 이 안에서 재미까진 아니더라도 가벼운 즐거움을 느끼는 게 저한테는 새로웠어요. 그래서 아마 <메기> 속 푸른 천막이 나오는 그 장면도 그렇게 그려졌던 것 같거든요. 제가 봤던 그 광화문의 밤은 깜깜했는데 빛이 막 예뻤던 거로 기억해서 푸른 천막도 그런 식으로 나왔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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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보경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구교환 선배를 캐스팅하게 됐어요. 그때 배우로 출연해주셨고 편집을 같이하게 됐어요. 캐스팅하면서도 저 사람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웰컴 투 마이 홈>(2013)이라는 짧은, 선배 혼자 출연하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를 보고 ‘저 사람은 나와 아직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나와 잘 맞을 거야’라는 예상이 맞았어요. 연출을 같이할 생각은 없었는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잖아요. <오늘영화>(2014)라는 영화에서 <연애다큐>를 같이 쓰게 됐어요. 사실은 각각 써서 지원하자 했는데 둘 다 안 쓴 거예요. 게을러서. 마지막 날에 같이 힘을 합쳐보자 해서 (웃음) 그때 연출을 처음 같이하게 됐고. 그때부터 계속하게 될 줄 몰랐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연애 영화는 별로 없는데, 아마 제가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쭉 연애를 쉬지 않고 하고 있어서 (웃음) 자연스러운… 내가 제일 많이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어서 그게 나왔던 것 같고, 제가 만약에 킬러로 활동하면 킬러로 썼을 수도 있어요. (웃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끼는 것들이 있어서 그랬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약에 은행원이었으면 그 안에서 그랬을 도 있고…


제가 학교를 늦게 갔는데 그때 견딜 수 있게 해줬었던 게 영화였었던 것 같아요. 시간을 보내야 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인 건 절대 아니었고요. 책도 되게 늦게 읽었어요. 다 20대 지나서 읽게 됐는데 스무 살 때 집에만 있었거든요. 그때 많이 책도 보고, 영화도 보게 됐었던 것 같아요.


제가 21살 때 ‘아그로 Agro’라는 서울 숙명여대에 있는 청소년영화동아리에서 영화를 한 3년 정도 찍었어요. 지금도 있거든요. 그러고 23살에 학교에 갔는데 그때 진짜 좋았어요. 그때 기억이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는데, 그때 저보다 나이 많은 오빠는 딱 한 명이었고 어떤 언니 있었고. 다 저보다 어린 중고등학생 친구들이었는데, 품앗이로 ‘내가 너 꺼 조연출 해주면 니가 내 꺼 다음에 스태프해줘’ 이런 식이었어요. 그때 도와주면서 쓰면서 찍으면서 어떤 게 너무 신비한 경험이었냐면, 거기에 있는 친구들이 어떤 실망감을 주는 행동을 해도 그게 밉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영화작업을 하면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작업했을 때가 너무 좋았고, 선생님이 너무 좋으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그때 선생님이 다음 영화를 찍을 때 꼭 하나씩 실험을 해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있는 게 그 실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고. 대학교 갔을 때보다 그때가 더 배운 게 많았고 그때가 더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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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제약이 없다면 저는 SF하고 싶어요. 근데 막 우주가 나오는 SF가 아니라 그냥 지금 한국 안에서, (웃음) 즉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내가 우주에 가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SF...


지금까지는 어떤 걸 쓰고 나면 해결되지 않아도 후련한 느낌들을 느꼈다고 했던 것처럼 개인의 치유였다면, 이제는 개인을 넘어서서 (웃음) ‘보시는 분들까지도 제가 느꼈던 것만큼 그 이상으로 좋은 기운을 받고 떠나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 계속해서 바뀌어요 마음이. 저번에 이야기 드릴 때는 한 88분 동안 내 이야기에 몰입해서 모든 걸 잊고 영화를 보시고 ‘재밌었다’ 하고 딱 나와서 생활을 약간 벗어나서 즐기는 걸 바랬다면,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왔어요.


옛날에 철학자분이 학교에 와서 수업을 해주셨는데, 그때 뱀 같은 영화를 찍으라고 하셨어요. 뱀 같은 영화가 뭐냐면,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뒤흔드는 영화래요. 뱀 같은 혀가 날름날름하는 유혹이 펼쳐지는 영화일 것 같은데, 그런 영화를 다시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런 영화가 조금 보고 나서 덜 허한 것 같더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4u-h65Z0gsA


Editor 문재연

Photographer 김윤우

Film 이성인

Hair & Makeup 이은서

Assistant 차은향

Editorial Design 류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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