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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핑 정채리 인터뷰

by puppysizedelephant

* 아래 글은 2019년 봄 매거진 르데뷰 42호에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빨래 돌리고 말리는 게 그 담으로 제일 힘들어 나는 이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나는 벌써 지치고 힘들어 그냥 누워 쉬고만 싶은데 … 무기력하고 권태로운 가사. 그것과는 대조되는 힘찬 드럼 비트와 캐치한 멜로디. 오핑의 데뷔곡 ‘Birthday Harlem’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다음으로 등장한 자취생들의 앤섬anthem이라고 가히 부를 만하다. 취미로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올렸다 지웠다 하면서 시작한 그녀의 커리어는 작년 11월,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다녀온 후 첫 EP ‘Journey’를 발매하면서 새로운 변환점을 마주했다. 겨울의 끝자락, 봄의 문턱에서 변환점에 서 있는 그녀를 만났다.


오핑이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름을 계속 바꾸다가 마지막에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업물이 중요하겠지’라고 생각을 하고 구글에서 ‘아름다운 단어 리스트’를 쳤을 때 나오는 거로 추려서 그냥 친구랑 술 마시다가 무작위로 정한 이름이에요. 뜻은 ‘바다, 앞바다 깔린’ 그런 뜻이더라고요.


EP ‘Journey’의 타이틀곡 ‘검은 개’라는 제목에 거창한 상징은 없고, 글자 그대로 저희 집 근처에 항상 산책할 때 따라다니는 검정색 강아지가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은 그 강아지가 저희를 따라오라고 해서 걔네 집까지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겪었던 경험이 너무 특별해서 그걸 남기고 싶어서 만든 노래에요. 정말 단순하게 검은색 강아지와의 우정을 느끼고 만든 노래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가 많았었는데 제가 어느 데도 속하지 않는다는 외로움이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겉으로는 잘 어울리고 웃고 하는데 제 마음은 그게 아닌 거죠.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다가 'Ollie'라는 노래가 나온 것 같아요. 놀랐어요, 사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느껴준다는 사실이. (웃음)


저는 특이하게 주로 작사를 먼저 하는 편이에요. 그냥 메모장에 일기 쓰듯이 그때그때 떠오르는 걸 썼다가, 누워있다가 멜로디가 떠오른다 하면 그걸 입혀서 노래를 만드는 편이죠. 아니면 그냥 가사에 맞는 무드로 멜로디를 만들어내서…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 같아요. 아직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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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대학생 시절 친구 놀리려고 주제곡을 만들거나, 과제 하기 싫어서 노래를 만들거나 정말 재미로 하는 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근데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좀 받다 보니까 뭔가 출할 만한 창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두 곡씩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다 보니까 이렇게 곡이 (많아졌네요).


유튜버 허챠밍과는 대학교 친구입니다. 동기예요. 2010년부터 친해져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있습니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지웠다 올렸다 한 곡들이 되게 많은데 그나마 각 잡고 올린 게 ‘Stay’였나 ‘Circle’이었나… 둘 중 하나를 올렸는데, 다른 사람들은 여태까지 제가 항상 웃긴 노래만 만들었으니까 ‘오 좋네’ 이러고 말았는데, 허챠밍이 정말 진지하게 카톡으로 연락해서 ‘너 진짜 장난 아니고 계속 음악 하라고’ 너무 진지하게 서포트를 해줬어요. 심지어 제가 곡을 안 올리면 빨리 올리라고, 언제 올릴 거냐고. ‘신곡을 내놔라.’ 이런 식으로 적절하게 푸쉬를 해준 것 같아요. 그리고 (허챠밍의) 유튜브 영상 배경 음악으로도 많이 올려주고. 사실 저는 좀 두려웠거든요. 그렇게 구독자가 많은데 많은 사람이 제 노래를 들으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할까 봐. 근데 예상외로 좋은 댓글들이 많이 달리고 하니까 저도 용기를 얻은 거죠. 고맙죠.


사실은 취미에서 끝났을 수도 있는데 레이블에서 컨택 온 것도 큰 역할을 했어요. (웃음) 그리고 점점 사람들이 노래 좋다고 해주시니까 ‘본격적으로 해볼까’라는 바람이 들면서 ‘아예 모르는 수준으로 그냥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워보는 게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왕 배울 거면 록의 본고장으로 가자 해서 (웃음) 영국에 가게 되었어요. 사실 돈이 많이 깨지긴 했지만 재미있던 경험이었어요. 많은 걸 배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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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1부터 10까지 다 배웠다고 보시면 돼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래서 얼마나 제가 무지한 상태였는지 가서 되게 많이 깨달았거든요. 정말 기본적인 플러그인을 사용한다는 것조차 개념이 없었고 EQ, 콤프레서 이런 것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었는데 거기 있는 친구들은 이미 그런 툴 같은 것도 다 알고 있고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 아, 이게 바로 진짜로 이렇게 작업을 하는 단계구나’라는 걸 많이 배운 점이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거기서 배우고 나서는 배운 거를 많이 써먹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죠.


제가 알고 뭔가 했을 때랑 모르고 했을 때랑 달라진 점이 꽤 많은 것 같아요. ‘Birthday Harlem’이나 ‘Stay’, ‘Circle’을 만들어서 사운드클라우드 올렸을 때는 그냥 뭣도 모르고 누군가의 신경도 쓰지 않았고 했는데, 요즘에는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지 작업물의 퀄리티가 있는 것이구나’ 이런 개념이 생기고 나니까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좀 더 잘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곡을) 올릴 때 좀 더 조심스러워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qTrOtc9hz5Y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이 St. Vincent 라고 미국의 여성 뮤지션인데, 곡도 너무너무 정말 창의적이고 퍼포먼스도 대단하고 해서 그분을 제 롤모델로 삼고 있고요. Björk도 엄청 좋아하고 Cat Power도 좋아해요. 다들 나이를 많이 먹어도 꾸준히 자기 작업물, 자기 개성이 담긴 작업물을 만든다는데 엄청 동기부여가 되고요. 되게 멋있는 것 같아요.


이제 제가 감을 찾아서 저만의 느낌을 찾아가는 단계인 것 같아서 앞으로 작업을 많이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런 꿈이 있습니다. 엄청 큰 포부는 사실 없고요. 제가 꾸준히 할 수 있는 데까지 음악을 할 수 있는 게 꿈입니다.


‘여태까지 한 게 아까워서 다른 길로 쉽게 못 가겠어’라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웃음) 그래도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걸 찾으셨다면 거기로 과감히 도전하시는 게… 후회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요.


Editor 문재연

Photographer 민가을

Film 손채영
Hair & Makeup 정혜란

Editorial Design 심제희

Film Assistant 유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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