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결심(feat. 육아휴직)

by 잉여로운 백구인생


벚꽃이 흩날리던 날, 나는 휴직을 했다


육아 휴직을 던지던 날, 집에 와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데 저녁 뉴스에서 육아 휴직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육아 휴직이 <대단한 결심>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도록 관련 제도를 손본다는 내용이었다. 육아 휴직자를 대체할 인력이 안정적으로 구해질 수 있도록 하고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를 할 경우 처벌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뉴스의 내용과는 반대로 나는,

1. 대단한 결심을 한 뒤 육아 휴직을 썼고

- 승진 누락, 커리어 단절, 돌아가면 다시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등...

2. 대체 인력이 바로 구해지기 힘든 상황이었고

- 어디서나 그럴 테지만 대체 인력이 바로바로 구해지기도 어렵고, 또 전임자만큼 일을 해낼 것에 대해 장담 못한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그래도 어쨌든 육아 휴직자는 욕을 먹는다.

3. 육아 휴직 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눈칫밥을 먹었다

- ‘아이고 누구 씨(동료직원) 이제 힘들겠다~ ’라는 말을 하루에 몇 번 하는지 세어봤는데, 무려 10번이 넘었다. ‘아휴 옆팀장(50대)이 나도 힘들면 애 하나 낳고 육아 휴직이나 해야겠어라고 하더라고 하하하...’를 시전 하며 내 표정을 살핀다.

..........

과장님, 육아휴직자에게 차별적인 대우(모욕적인 언행 포함)하면 벌금 낸대요... 왜 조심 안 하세요?


한동안의 시간을 위와 같은 일련의 시달림 및 내적 고뇌를 겪으며 버텼고, 비로소 나는 육아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가 7살이라 어느 정도 컸겠다, 올해 당장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아닌데 육아 휴직이라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휴직을 낸다고 했을 때 묘한 표정을 짓던 직장 동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던 그 몇 년 동안, 내가 얼마나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건지 잘 몰랐다. 매일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며, '내일 출장이라 열나면 안 되는데, 아프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주문처럼 달고 살았다.

직장에서 맡은 프로젝트를 '애엄마답지' 않게 잘 해내고 싶었고, 그때마다 아이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디서 들은 대로 '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이에게 최고의 공부다, 아이는 스스로 큰다' 등의 말들을 주변에 일부러 더 흘리면서 승승장구하는 워킹맘의 자아를 입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솔직히 나는 멋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을 하려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뾰족한 이유가 없었다. 며칠 잠을 못 잤더니 그런가, 넘어가 보려고 했는데 그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들은 공황장애 증상인 듯싶어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보니 내 증상이 중증으로 체크가 되었다. 아, 이러다 나 큰일 나겠구나. 미련하게 버티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고민을 했고 얼마 안 가서 해답을 찾았다.


'맞아, 나 육아 휴직 쓸 수 있잖아?'



<육아 휴직 : 육아를 목적으로 휴직을 함>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의 휴직 신청은 매우 불손해 보였을 것이다. 딱히 아이한테 손이 많이 가는 시기도 아닌데 육아 휴직이라고? 육아 휴직을 낸다니까, '혹시 육아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 ‘네, 맞아요. 일단 제가 살고 봐야겠어요’라고 대답했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육아 휴직에 들어가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필라테스를 끊었고, 심리 상담센터에 등록을 했다.



실은 남편은 내가 휴직을 던지기 한참 전부터

주말이면 방전되어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나를 보며 ‘쉬어야 되겠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잤느냐, 내가 주말 동안 낮잠 자며 꿨던 꿈 얘기를 남편한테 할라치면, ‘그 정도 잤으면, 그건 꿈이 아니라 사후세계일 거야 ‘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직장생활이 다 어렵지, 쉽기만 하면 누가 직장생활을 하나 싶기도 하고, 육아 휴직 냈더니만, 엄마도 회사 안 가는데 자기는 왜 유치원 가야 하냐고 떼쓰는 아이와 매일 아침 씨름하느라 괜히 휴직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재빠르게 ‘그래서 어쩌라고, 나 육아휴직 냈는데?’라고 스스로 되받아쳐준다.



마지막 출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날, 매캐한 안개 속을 걸어 나온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