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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ive Lore Wild Apr 04. 2023

폭포인듯, 숲인듯 - 도심 추모공간

뉴욕 공공공간 산책 이야기 

그라운드 제로 (The World Trade Center site, Ground Zero)

Address: Greenwich St, New York, NY 10007, United States


현무암 바닥 위로 드리운 상수리나무 그림자

수변공원 프로젝트를 맡아 재료 선정을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며칠을 사무실 한 켠에 여러 종류의 프로젝트 샘플을 모아 질감과 톤의 조화를 맞춰 보았고, 특히 돌 조합을 잘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몇개의 안으로 추려지자 팀원들을 모아 놓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사실 경험 많은 회사의 기술 이사인 마틴에게 골라 놓은 재료에 대해서 배우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리의 화제가 초록빛 화강암인 로렌션 그린 그레나이트(Laurentian Green Granite)로 옮겨 갔다. 


마틴은 분명히 초록빛의 화강암 알갱이가 보이는 이 돌이 야외에서는 회색으로 보인다고 했다. 팀원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돌이 9/11 사태 추모 공원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의 바닥재로 쓰였고,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초록빛의 돌을 본적이 없지 않았냐며 반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본 바닥재와 같은 돌로 보이지 않아 그날 점심 당장 확인하러 갔다. 샘플을 바닥에 두고 보니 그라운드 제로의 바닥재는 로렌션 그린 그레나이트가 맞았다. 하지만 햇빛 아래에서는 더이상 초록의 채도를 뽐내지 않았고, 대신 서늘한 쿨톤이 공원 안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상수리나무 그림자가 내려앉은 돌바닥은 깔끔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9/11 사태가 일어난 후 10년이 지난 2011년 9월 12일에 그라운드 제로 추모공원이 문을 열었다. 전통적인 공원이나 추모공간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파격적인 공간은 어떤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공원인듯, 광장인듯, 폭포인듯, 숲인듯. 


쌍둥이 빌딩 자리 지하로 파인 분수 폭포



그라운드 제로는 일반적인 문이나 입구를 통해 들어가지 않는다. 길에서 상수리나무 숲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공원의 중심부로 다가가는 시퀀스를 가진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멀리서 거센 물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커지는 쪽으로 다가가면, 한동안은 세상에서 제일 높았던 쌍둥이 타워가 있었던 자리 지하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 분수가 보인다. 그 크기와 물소리는 말 그대로 그곳에 서있는 사람들의 시각과 청각을 압도한다. 그리고 분수 주위의 상수리나무는 추모 분수를 보호하는 듯, 늠름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넓고 평평한 돌바닥에 만들어진 숲은 ‘마을을 보호하는 숲’을 의미하는 비보림을 떠오르게 했다.  비보림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된 우리의 전통 숲이다. 인간의 생활터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자연재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져 왔다. 서양의 추모 공간이 동양의 풍수지리설을 따르지는 않았겠지만, 추모공원 전체를 뒤덮는 숲은 슬픈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덤덤하게 담는 듯 했다. 또한 서쪽의 허드슨 강에서 불어오는 강 바람도 막아주고, 화려한 고층건물로부터 추모객들의 시선을 억지스럽지 않게 분리한다. 


그라운드 제로의 숲은 일반 공원에서 보았던 피크닉 그로브와는 많이 다르다. 나무 그늘 밑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도 찾기 힘들고, 크게 떠드는 사람도 많지 않다. 다른 광장처럼 시위나 행진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문객들에게 슬픔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폭포 분수의 물소리와 웨스트 스트리트 대로의 자동차 소리가 BGM처럼 계속 이어질 뿐이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조용히 추모공원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폭포 분수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다가 떠난다. 추모공간의 나무가 점점 더 우거지면서, 초록빛의 숲의 기억이 상처 치유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https://goo.gl/maps/R3cxGW7NLRihbDj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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