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솔이 필요한 곳

목표를 달성하는 건 중요하지만, 사람은 더욱 중요합니다

by 고유동

"좋은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인생이 쓰는 거예요. 그냥 한마디 툭 던지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인생 전체가 다 들어 있어요."

-이성복,『무한화서』



태양마저 갈색 땀을 흘리는 날. 오늘은 훈련병들이 수류탄을 던지는 날이다. 교육은 이틀에 나눠서 진행하는데, 보통 첫날은 연습용 수류탄을 던지고, 두 번째 날에 실물 수류탄을 던진다. 연습용 수류탄을 던진다고 방심은 금물. 수류탄 훈련은 연습이든 실제든. 안전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관과 조교는, 그 어떤 훈련보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예행연습을 한다.


우리 부대의 수류탄 훈련장은 인적이 없는 산 중턱에 있다. 그러니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갈 수밖에. 교관과 조교. 훈련병 수백 명은 비라도 맞은 듯. 온몸이 젖는다. 하필이면 그늘은 길에서 조금씩 비켜나 있다. 누구 하나 휘청이며 쓰러지기 직전. 교관이 훈련병들에게 철모를 벗어 옆구리에 끼고 가라고 지시한다. 훈련병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것은 똑같으나. 그들의 마음은 경쾌하다. 교관의 마음이 은밀하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도착한 목적지. 눈앞에 참호 세 개와 인공 호수가 보인다. 참호는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고. 교관과 훈련병을 적절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공학적으로 설계돼 있다. 인공호수는 깊이 5m로 만들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수조로. 물이 4m쯤 채워져 있다. 물 위에는 부표로 만들어진 커다란 동그라미 세 개가 있는데. 이건 목표물이다. 훈련병은 투척 호에서 동그라미를 향해 수류탄을 던져야 한다.


훈련 시작 전, 교관과 조교는 훈련병에게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나는 훈련장 입구부터 안전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소가 있는지 꼼꼼하게 둘러본다. 오늘은 특별히 더운 날이므로. 훈련장에 커다란 그늘막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오케이. 우리가 사전에 논의한 대로. 훈련병들이 이동하는 장소마다 견고하게 설치되어 있다. 훈련병들이 마실 시원한 물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여분의 생수 또한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긴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은 통신망을 확인해야 한다. 무전기. 확성기. 수류탄은 중대장이 통제탑에 위치하여 전체통제를 하므로. 방송 장비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된다. 다행히 잘 작동한다. 일사병이나 열사병 같은 온열 질환에 대비하기 위해 구급차로 향한다. 응급구조사가 관련 물품을 꼼꼼하게 준비해 뒀다. 강당에서 교관과 조교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걸어 올라오는 동안 다친 사람이 있는지. 기분이 뒤숭숭하다거나 몸 상태가 나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나는 잠자코 듣다가 모두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투척호로 향한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모양의 투척호. 안을 들여다보면 밑바닥에 동그란 구멍이 있다. 혹시라도 수류탄을 놓쳤을 때, 얼른 이 구멍으로 수류탄을 차 넣으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멍. 그러니 막혀있으면 안 된다. 투척호의 외관도 확인한다. 무너진 곳은 없는지. 바닥상태는 괜찮은지 같은. 그리고 자연스럽게 교관들의 얼굴을 본다. 아직 훈련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그들의 얼굴에 땀이 배어 나온다. 날씨가 걱정이다. 교관이 위치한 이곳은 한없이 땡볕이지만 그늘막을 칠 수 없다. 수류탄이 던져지는 최초 위치이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최고입니다”라고 외치는 그들. 그러나 왜 모를까. 훈련병은 딱 한 번만 던지면 되지만, 그들은 수십 명의 투척을 지도해줘야 하고, 우발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그 심적 부담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오늘은 무척 더운 날. 신체적인 부담까지 더해진다. 무얼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내 마음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선글라스 꼭 끼고. 선크림 조금 더 바르고. 토시 꼭 하라는. 중간에 몸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보고하라는. 한심할 정도로 실체 없는 말만 반복한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무언가 튀어나오려는 순간 나는 고개를 돌린다. 오늘도 잘해보자는 말만 남기고.


차를 타고 훈련장 초입으로 이동한다. 산속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 여기에는 무전기를 든 조교 두 명이 위치하여 사람과 차량 이동을 통제한다. 도로에는 이미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고. 통행에는 대대장도 예외가 없다. 조교는 무전기로 통제탑에 위치한 중대장에게 내가 왔음을 알린다. 무거운 방탄복을 착용하고. 철모를 착용한 조교들. 나를 보고 활짝 웃는 그들에게 묻는다. “괜찮니?” 그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상 없다고 말한다. 이상이 없을 리가. 그늘마저 무더위를 피해 달아나버린 도로 위. 철모에 방탄복을 입고 바리케이드 옆에 덩그러니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멍청한 질문을 던진 거다. 그렇게 물어볼 것이 아니라. “날씨가 무척 더운데 필요한 것은 없니?”라고 물었어야 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아니다. 아예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 필요한 것을 알아서 조치해줘야 했다.


이 순간 내가 조교의 입장이라면 필요한 건 뭘까. 일단 몸이 너무 무겁다. 철모와 방탄복을 입는 이유. 그건 혹시라도 수류탄의 파편이 날아올 때 몸을 보호해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곳에서 적어도 수 킬로미터는 떨어진 훈련장에서. 그것도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여기까지 파편이 날아올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러니까 이들은 챙 달린 모자만 있으면 된다. 조교들이 여기 있는 이유는 출입통제이므로. 안전 문제가 없다면 방탄복도 과하다. 또 필요한 건 뭘까. 그늘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햇살을 오랫동안 맞으면 신체에 무리가 간다. 그늘을 어떻게 만들어줘야 하지. 생각해 보니 부대에 행사용으로 준비해 둔 플라스틱 테이블과 중앙에 꽂아서 사용하는 접이식 파라솔이 있다. 그래 이거면 그늘 없는 이곳에서도 꽤 쓸만하겠다. 시원한 물은 있나. 둘러보니 도로 위에 덩그러니 놓인 생수병이 있다. 이미 미지근해지다 못해 달궈지고 있는 물병. 조그만 아이스박스가 있으면 좋겠다. 공간이 되면 음료수라도 더 넣어두고. 나는 이 모든 게 준비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주 좋다. 출입통제라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앞에 웃고 있는 조교들에게 내 생각을 말해준다. 갑자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이들. 그러다 배꼽을 잡고 웃는다. 나도 따라 웃고. 부대에 남아있는 중대 행정보급관에게 파라솔과 테이블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방탄복은 이미 가져왔으니 벗어서 잘 정리해 두고. 철모는 챙 달린 조교 모자로 바꿔 쓰라고 말해준다. 파라솔은 순식간에 설치되고. 조교들은 내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 파라솔 아래 앉아 임무를 수행한다. 어느덧 수류탄 투척시간이 다 됐다. 활짝 웃으며 경례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수류탄 통제탑으로 이동한다. 파라솔이 더 필요한 곳이 어딘지 생각하면서.



그럼 오늘도 힘차게 우리의 글을 써봐요!

짧아도 괜찮고요, 투박해도 좋습니다.

제가 반드시 당신의 보석을 발견해 드릴게요.


*‘25.4.28(월) 백일장 글감: ‘사람’


*‘25.4.28(월) 자정이 지나기 전까지, 글감과 관련된 산문(일기, 수필, 에세이) 1편(공백 포함 300글자 이상 2,000글자 이내)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미라글모닝>에 공유하시면, 피드백을 달아드립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주관식 선택형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