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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동 Jun 24. 2024

서늘함의 형식


눈(雪)의 결정을 본 적이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놀라운 기하학적 패턴. 눈의 씨앗이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의 예술작품이다. 거기에는 이름 모를 어떤 거장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있다. 기온과 습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독특한 화풍. 그래서 눈송이의 외형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으로 눈송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눈송이의 중심을 기준으로 가지들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형태는 다르지만 구조는 유사하다. 차가움에도 구조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매료시킨다.


구조는 일종의 그릇이다. 그것은 마치 세포막과 같다. 세포막은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의 역할을 한다. 경이로운 점은 이런 경계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흐릿했던 존재가 경계의 생성으로 인해 선명해진다. 그렇기에 존재가 세포막을 만들어내는 일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 일은 존재를 규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포막이 어떤 개체의 존재를 규정하듯, 구조 또한 어떤 개념의 존재를 규정한다.


구조는 일종의 소통 창구이기도 하다. 법률을 보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언어를 보라.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이해를 확보한다.


그러므로 구조란 나와 타자를 모순 없이 존재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나와 타자 사이의 소통을 돕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이 아무리 풍파가 많아도, 무너지지 않고 돌아가는 이유는 ‘구조’ 덕분이다. 구조는 세계를 유지한다. 구조 덕분에 세계는 존재를 승인받는다. 눈송이 또한 마찬가지다. 눈송이가 육각형의 프랙털 구조를 품고 있기에. 눈송이는 존재를 승인받는다. 구조 없이는 존재도 없다. 경계가 없어진 세포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눈송이가 차가움의 구조를 품고 있는 것처럼, 인간관계에는 서늘함의 형식이 존재한다. 구조는 물리적이고, 형식은 절차적이다. 차가움의 구조가 ‘눈송이’의 존재를 승인하듯, 서늘함의 형식이 ‘관계’의 존재를 승인한다. 개인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지 못한다. 어떤 존재에 기댈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승인된다. 기댄다는 것은 바로 경계에서의 접촉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계에는 서늘함이 존재한다. 경계는 투쟁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온화한 것이 전부 눈감은 대지.


서늘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애매함이다. 결빙처럼 움직임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기화처럼 움직임이 극대화되어 존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도 아닌 어중간함. 따라서 오직 서늘함만이 경계를 보존해 준다. 경계에서의 접촉은 최소한의 움직임이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조금씩 탐색해 가며 서로의 한계치를 확인하고 접점을 늘리는 과정. 관계의 진전은 빠름이 아닌 느림에서 온다. 그렇게 천천히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서늘함을 유지한 채로.


눈송이의 차가움이 프랙털 구조를 얼리듯. 관계의 서늘함이 나와 타자를 성립시킨다. 이름 없던 개인이 ‘인간’에서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 달리 말해 ‘서늘함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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