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반딧불이 축제에 왔다. 아무런 정보 없이 왔지만 걱정은 없다. 요즘 지자체의 축제는 어느 정도 표준화되었기에. 과거 축제 현장을 상상하며 자신만만하게 주차했다. 나는 분명 세련된 공연과 푸드트럭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축제 현장은 나의 예상과 달랐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트로트를 부르고. 떡메에서는 인절미 향이 구수하게 흘러넘친다. 풍선으로 꽃을 만들어주는 할아버지, 달고나를 구워주는 할머니. 어떤 아저씨가 보여주는 조금은 조잡한 마술쇼. 그러니까 내가 아주 오래전 보았던 시골 마을잔치 풍경이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기대는 벗어났으나 기분은 괜찮았다. 이런 시골의 정취를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잠시 눈을 감고 추억을 떠올리려는데, 딸의 외침이 들린다. “아빠. 저기 손톱에 뭘 그려주는데 나도 하고 싶어!” 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어느 할머니가 아이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있었다. 딸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곳으로 달려가 자리에 앉는다. 딸의 양손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고. 왼쪽 손톱에는 빨간색, 오른쪽 손톱에는 파란색이 칠해진다. 딸은 이제 공주기사로 변신했다. 아빠는 못된 악당. 공주가 악당에게 양손을 뻗으며 소리친다. “불 파워” “얼음 파워”. 그러자 실체가 없는 에너지빔이 나에게 날아온다. 아빠 괴물은 전혀 아프지 않지만, 에너지빔 두 방을 맞고 쓰러진다. 아이는 좋아서 자지러진다.
갑자기 엄마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사라진 딸. 잠시 후 세상을 다 가진듯한 미소를 지은 채 한 손에는 꽃 모양의 풍선을, 다른 손에는 달고나를 들고 나타난다. 그 해사한 모습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울적했다. 내가 어렸을 적엔 이런 잔치를 자주 보았었는데, 이제는 보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무언가 쇠락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다. 역사의 현장에 널브러진 어느 돌덩이를 보며 우리가 과거의 제국을 상상하듯이. 나는 시골 마을잔치를 보며 옛정을 떠올린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무언가가 점차 줄어간다는 사실. 그 행복의 기억마저 흐릿해진다는 진실. 아쉬움 가득한 생각은 하면 할수록 꼬리를 물고. 해가 지는 능선을 따라 사라져 간다.
어느덧 해가 졌다. 버스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간 후 하차한다. 인솔하시는 분이 우리에게 말한다. 반딧불이는 빛으로 소통하기에 휴대전화 액정의 빛이나 카메라 플래시. 랜턴을 켜면 안 된다고. 오직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서 걸어야 한단다. 우리 가족은 근육이 놀라지 않게 인솔자의 구령에 맞춰 발목 돌리기와 허리 돌리기를 한다. 자 출발이다. 침묵이 내려앉은 밤. 딸과 나는 손을 잡고 산길을 걷는 중이다. 시골이라 그런지 하늘의 별이 유난히 가깝게 보인다. 먹빛 하늘에 한 움큼 소금이라도 뿌려진 것 같다. 딸과 나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의 리듬에 맞춰 올라가고 내려가길 반복하며 몸에서 풍기는 짠 내음을 맡는다. 하늘의 소금이 내 몸 위로 내려앉았나 보다.
저 멀리 차가운 빛의 명멸(明滅)이 눈동자에 달라붙는다. 마치 자연과 소통하는 핫라인이 연결된 듯. 녹색 신호가 깜박이고, 내 마음에도 그린라이트가 켜진다. 무엇이든 털어놓아도 모두 품어줄 것 같은 분위기. 밤은 커튼이므로. 조용히 고해할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다. 이런 연결을 마지막으로 경험해 본 게 언제였더라. 상념은 딸에 의해 깨진다. 졸린 듯 눈을 비비는 딸. 나를 보며 말없이 양손을 내민다. 비포장도로에 내리막길이라서 나는 잠깐 무릎을 굽히고. 딸이 양팔로 내 목을 두를 수 있도록 고개를 살짝 숙인다.
내 품에 안겨 천사처럼 잠든 딸. 나는 딸이 불편할까 조심스럽게 걷는다. 오르락내리락. 땀이 쏟아진다. 앞섶에는 딸이 곤하게 자고 있으므로, 나는 땀을 등으로 쏟아낸다. 내 몸에서 풍기는 짠 내가 더욱 심해진다. 먹빛 하늘에는 별빛 소금뿐만 아니라 초록빛 소금까지 더해지고. 거기에 내 몸에서 배출되는 소금까지 더해지니 주변이 온통 짠 내로 뒤덮였다. 이곳은 바다일까.
나는 그렇게 꿈꾸는 반딧불이를 품에 안고 어느 이름 모를 해변에 서 있다. 딸은 반딧불이의 꿈을 꾸는 중이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딸은 꿈속에서 반딧불이가 되고, 반딧불이는 꿈속에서 딸이 된다. 둘은 아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깜빡깜빡. 녹색 신호를 보낸다. 문자도 아니고 언어도 아닌. 빛으로 보내는 메시지. 그건 일종의 편지다. 실체가 없는 연결. 전파방해를 받지 않는, 시공을 초월한 기적과도 같은 연결. 과거 시골 마을잔치와 현재, 잠든 딸과 아빠. 맑은 자연과 도시를 이어주는 그런 연결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온라인’ 아닐까. 오직 반딧불이가 전심전력으로 피워내는 ‘그린라이트’만이 가능한 어떤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