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굴레

부모, 부부, 직장이 왜 상처의 근원이 되었나

by puree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가장 깊고 오래가는 상처를 받습니다.

나를 세상에 내보낸 부모, 평생을 약속한 배우자,

매일 얼굴을 맞대며 일하는 동료들.

이들은 본래 위로와 쉼의 자리가 되어야 할 이들인데,

현실에선 종종 감정의 전쟁터가 되곤 합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서로를 ‘상대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기보다, 뾰족한 ‘나 중심’의 칼날을

휘두르며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을 단순히 내 성격적 결함에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굴레를 살펴보면,

첫 번째 굴레는 ‘소유권의 환상’에서 비롯합니다.

기득권 구조는 교육과 사회 시스템을 통해,

부모에게 끝없는 압박을 주입해왔습니다.

“네 아이의 성공이 곧 너의 성적표다.”

이 말 한마디가 부모로 하여금 자녀를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불안과 체면을

걸어두는 대상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너를 위해 그런 거야”라는 말에 담긴 속마음 역시,

실상은 “내가 불안하지 않으려고”,

“내가 실패자처럼 보이기 싫어서”라는

자기중심적 욕망의 변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견뎌내야 할 ‘어려운 사랑’의 자리를 ‘훈육’이라는

편리한 권위가 슬그머니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굴레는 ‘생존경쟁’이라는 독.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라는 렌즈를 씌웁니다.

“남보다 잘 살아야 해,”라는 결핍의 공포가,

가장 가까운 파트너마저 경쟁자이거나

내 욕망을 채워줄 ‘수단’으로 전락시키곤 했습니다.

상대의 아픔을 그의 자리에서 느끼려 애쓰기보다,

내 요구를 채워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부터 내뱉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는 늘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려,

사랑하기보다 먼저 방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세 번째 굴레는,

직장과 사회에 더없이 견고하게 박혀 있는

‘수직적 지배 구조’입니다.

기득권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을

‘부품’으로 바라보고, 상사는 부하를

자신의 실적을 위한 도구로, 동료는 내 출세길을

위한 디딤돌쯤으로 인식하도록 시스템을 짰습니다.

이 안에서 ‘상대 중심적 주고받음’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런 구조 안에선,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는 법보다는

속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득권이 설계한 이 시스템은 우리에게서

‘사랑할 여유’마저 빼앗아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할수록,

기득권의 지배는 더더욱 견고해집니다.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제 상처에 골몰해 싸우는 동안

그들은 그 갈등 위에서 조용히 권력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배우자에게,

동료에게 주었던 상처들 역시

이 거대한 세뇌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진짜 이유를 알게 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설계된 불신의 올가미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공격하며 살아가야 하지?”

상처의 근원을 이해하는 목적은, 결코 비난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사랑에 쉽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무지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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