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뭘 바랄까
상처받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리는 곳,
그곳이 바로 종교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온갖 배신의 상처를 겪고도
마지막으로, 신의 사랑에 기대서라도
희망을 찾고 싶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이들은 오히려 종교 안에서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사랑을 진심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절대 신이라는 권위 뒤에 숨는
기술만 자기 변명만 익히고 있는 건 아닐까?
가장 비극적인 위선은 피해자가 느낄 상처를
외면한 채, 신 앞에서만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받으려는 모습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아픔을 줬다면,
그 사람에게 직접 다가가 용서를 구하고,
상대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참 어려운 것도 압니다.
결국 종교의 역할은 양심을 찾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신께 회개했으니 헌금 했으니
죄 사함을 받았다는 식은
너무도 간편한 면죄부가 됩니다.
애써 지키며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공정함과 무기력감을 안겨 줍니다.
고통받는 상대의 눈물은 애써 외면하고,
신과 나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거래 속에서
모든 죄를 덮어버릴 수 있다면
종교는 사랑이 아니라, 영혼의 도피처가 될 뿐입니다.
신의 권위를 내세워 누군가의
양심까지 지배하는 행동들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양심에 점점 무심해지는 건 아닌가?
종교가 상대 관점의 사랑보다,
“이것이 신의 뜻이다”라는
강압적 명분을 앞세워 타인을 통제하려 든다면
종교의 역할은 무의미해집니다.
부모는 자식을, 목회자는 신도를
자신의 기준에 가두고 복종만 강요한다면
그 과정에서 개인의 양심과 고유한 성장의
원동력은 점차 사라집니다.
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신이 가장 사랑하는 눈앞의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선택은
그 사랑을 외면하는 것은
종교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