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모순(2)

by puree

종교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차가운 힘으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남깁니다

누군가의 절망 속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건네주는 위로가 되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이름도 모르는 타인을 향해

칼을 들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이 ‘믿음’이라는 말이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알고,

왜 이 삶이 주어졌는지도 뚜렷하게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고통에도 어떤 까닭이 있길 바라고,

이 삶이 우연이 아니라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빈틈을 종교가 채웁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아주 짧은 이 한 문장이 큰 힘이 되어,

많은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종교는

오랫동안 사람 곁에서 삶의 위로가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깊어질수록,

때로는 질문 자체를 멈추게 만듭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편안하지만,

그만큼 위험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는 옳다’는 생각이

어느새 ‘저 사람들은 틀렸다’는 판단이 되고,

그 경계는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그 선이 하나의 벽이 되는 순간,

타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닌 배제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이미 역사가 여러 번 이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십자군 전쟁과 같은 사례만 봐도 신의 이름이

인간의 손에서 어떻게 무기가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념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일까.

처음에는 분명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신념은

점점 집단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게 하고,

그 밖의 사람들과는 경계를 짓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신념은 타인을 향한 말이 아니라, 점점 ‘우리만의 규칙‘으로 굳어져 갔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신념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불안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확고한 답을 붙잡고 싶어 합니다.


혹시 그 답이 틀릴 수 있다는 불안보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편이 훨씬 덜 두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자신의 평안만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이 순간, 신념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신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먼저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믿음이 정말 누군가를 살리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질문 앞에서 신념은 다시

온전히 평화의 길로 가까워집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신념을 가지는 개념을 넘어

그 신념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는지에 있을 것입니다.

의심 없는 맹목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묻고 성찰하는 믿음.

내 확신이 혹시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려는 태도.

바로 이 조용한 질문이 사라지지 않을 때,

신념은 더 이상 마음을 갉히고,

꾹꾹 찔러대는 무서운 흉기가 아닌,

사람을 향한 서로에게 따뜻한 길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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