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고독 | 사랑
2014년 1월 24일
불을 켜자 희부윰한 빛의 끄트머리에 똬리를 튼듯한 투투가 눈을 떴다. 앙상해진 작은 꼬리를 흔들며 비치적비치적 걸어오는 녀석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댄 후 물었다.
혼자 뭐 했어
목덜미를 살짝 끌어당겨 손가락을 파묻었다. 주름진 피부가 조금 뜨거웠다. 처음 하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무화씨는 모종의 설렘을 느낌과 동시에 긴장했다. 주사기를 앰플에 꽂으며 알코올솜을 더듬었다. 바늘을 꽂는 그 행위는 고요했고 성가신 것이기도 했다. 녀석의 작은 몸은 익숙하게 의식을 받아들였다. 사료를 붓고 물도 새로 담아주었다. 물을 핥는 녀석의 까슬까슬한 혀를 살짝 만졌다.
우리 투투 심심했지
한 참을 놀아준다 생각했지만 실은 잠깐이었을 그 시간 동안, 무화씨는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킁ㅡ하고 코침을 쏘는 녀석의 작은 두개골을 한 번 더 손바닥으로 훑고 딸깍 스위치를 내렸다. 녀석은 무위無爲의 암전속에서 홀로 지냈고 하루가 지난 저녁 무화씨는 전화를 받았다.
언니야, 투투 이상하다 피똥이 여기저기다 일단 응급실가께
여행을 다녀온 사이 급작스레 위태로워진 녀석을 병원에 데려다 놓고 동생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어쩔 줄 모름에는 후회와 당혹과 슬픔과 체념과 화, 그리고 약간의 후련함이 먼지 쌓인 장난감처럼 뒤섞여있었다. 다음 날 아침 동생은 꺼칠한 목소리로 무화씨를 깨웠다.
새벽에 전화 왔는데, 뇌출혈이라네
손톱 끝을 비비며 대기실 모서리에서 우두망찰 기다린 무화씨는 작은 상자를 두 팔로 받쳐 들었다. 처음 마주한 주검이 너무나 따뜻해 놀랐다. 그리곤 송아지처럼 엉엉 울었다.
어린 시절 무화씨는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눈을 감고 죽음 그 이후의 아득한 상태를 떠올릴 때마다 진공상태의 우주 속에 떠 있는 느낌이 들어 부르르 몸을 떨곤 했다. 감각할 수 없는 '점'. 이를테면 먼지 같은 점이 되었다가 無의 상태가 되는 일. 있음의 상태에 머무르는 자가 인지할 수 없는 '없음'의 상태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어 두려워했다. 죽음은, 두려워할 필요 없는 완료의 상태라는 것을 어린 무화씨는 몰랐다. 고독. 절대 고독만이 죽음의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분투한다는 것을.
이제 무화씨는 일련의 사건들. 말하자면 아버지의 죽음과 그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몇 번의 경험으로 삶이란
탄생 ㅡ 죽음. 그 사이에 그어진 선 같은 것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믿음을 가지건 간에 삶은 죽음과 동일한 연속체를 이루고 있으며 서로 분리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의학 따위가 개입해도 죽음은 늘 승리자라는걸 아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죽음 앞의 절대 고독은 설명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 즉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안다.
기실 죽음은 죽어버리니 죽음이 아니라 죽음 앞의 '죽음의 과정' , 그 절대 고독 속 인간을 보라는 톨스토이의 문장들을 읽으며 무화씨의 속눈썹이 떨렸다. 뜨거운 것이 목덜미께까지 올라왔다가 사그라들 즈음 명치에 가라앉은 단어 하나를 감각했다. 목구멍까지 끌어올려 문장을 만들었다. 무망하다 할지라도 오직 할 수 있는 것 하나. 내 어깨 위에 당신의 다리를 올려 주는 행위.
사랑
사랑해야 한다.
2021년 8월 12일
무화씨는 심드렁하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무참하게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또한 자각했다. 그러나 곧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