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전 대표이사는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임원들은 대표 이사 앞에서의 발표에서 깨지지 않기 위해 발표 자료에 온갖 정성을 들였고, 회의 중에 나올 수 있는 돌발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을 대기시켜 놓기도 했다. 임원들에게 있어 성공적인 발표란 대표이사에게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자리에서 많이 깨지다 보면 다음 임원인사에서 잘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분 앞에서는 예상과 다른 좋지 않은 결과를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불똥이 튀기 때문이었다. 대표 이사 앞에서의 임원 발표가 끝나고 나면 부서 내 부장들은 발표 결과가 어땠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 자리에서 임원이 많이 깨지고 오면 그 여파가 도미노처럼 자신들에게도 미치기 때문이었다. 대표이사 회의에서 회사의 발전에 대한 건전한 토론이나 의견 교환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감히 어느 누구도 그분 앞에서 안된다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 대표이사의 기술력은 회사 내에서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회사를 리드하는 위치에 걸맞은 리더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언젠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무섭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A 간호사와 민주적이며 소통을 강조하는 B간호사 밑에 있는 간호사들 간, 업무 중에 발생한 실수율을 비교해 본 것이었다. 결과는 A 간호사 밑의 간호사들의 실수가 훨씬 낮았다. 그런데, 대답을 한 간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자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났다. 무서운 A 간호사 밑의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혼날 것이 두려워 실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B 간호사 밑의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드러내는 데에 크게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번에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취했다.
무섭고 혼을 많이 내는 상사 밑에서는 혼나지 않으려고 긴장한다. 혼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얼핏 보면면 더 긴장하며 업무에 임하게 되어 실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러나, 실수들은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곪아버릴 확률도 높다. 또한 도전적인 일을 시도하기도 어렵다. 상사에게 혼나지 않는 것이 부서원들의 목표가 되다 보니 굳이 도전적인 일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물론 강성(强性) 상사들의 장점도 있다. 그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카리스마 있게 다른 사람들을 잘 리드해서 일의 성과가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강성 상사들의 경우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그 사람이 있을 땐 제대로 돌아가는 듯해도 그가 사라지면 무너지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또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며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대신 한 사람의 의견에 좌우되는 일들이 많다 보니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불리해진다.
입사 10년쯤 되었을 때 Y라는 인상적인 임원을 만났다. Y 임원이 오기 전까지 회의 시간은 대부분 임원들의 호통과 잔소리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해외에서 영입된 Y 임원은 회의 시간 발표자들에게 격려하는 말을 자주 하셨다. "OO님, 나는 OO님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회의 시간에 처음 듣는 격려성 멘트에 처음엔 깜짝 놀랐다. 처음으로 그런 유형의 상사를 만나다 보니, "우리 회사 임원도 저럴 수 있구나" 싶어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진정성 없이 누구에게나 하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도 그 소리를 들어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 임원 밑에서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상사 밑에서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임원들에게는 혼날까 봐 무서워 꺼내지 못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Y 임원 앞에서는 솔직하게 얘기하며 논의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Y 임원은 회사 내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이해하는 임원이 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회사가 성장하면서 무섭고 호통치던 임원들은 많이 감소했고, 합리적이고 소통을 잘하는 임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무섭기로 유명하던 회사의 전 대표이사도 결국 뛰어난 기술력과 좋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통에 능한 다른 분으로 교체되었다. 윽박지르고 강요하는 상사보다 소통에 능한 상사들이 살아남는 건, 시대의 흐름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