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쓴 글이 아침에 쓴 글이 되어 버렸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썼던 글이 사라져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살려 내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마우스를 눌러보았지만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운함에 고개 숙였던 어린아이를 흘려보냈듯이.
속상한 마음 뒤로 한편으로는 잘 됐다 생각했다. 나의 솔직했던 감정이 드러난 이 글을 엄마가 나중에 보게 되셨을 때 속상하실 수도 있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써 쓴 글이 자식 같은 마음이었지만 마음속 어린아이를 흘려 보냈 듯이 담담히 다시 써내려 가볼까 한다.
나는 엄마의 주근깨를 쏙 빼닮았다. 주근깨의 위치 까지도. 한때는 주근깨를 가리려 진한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그 위에 컨실러, 파우더까지 발라 두꺼운 화장을 완성했다. 그것도 매일매일. 주근깨를 빼기 위해 피부과에 상담을 받으러 다녀 봤지만 끝이 나지 않을 시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가장 진한 색의 주근깨를 점을 빼듯이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처음엔 옅어지는가 싶더니 더 진해졌다.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잘됐다, 생각했다. 주근깨를 가릴 수 있어서. 문제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였다. 아이들 유치원 친구들 엄마들과 만나면서 커피를 마셔야 했고 그때마다 마스크를 내려야 했다. 화장을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아이들 케어하며 화장을 하는 건 사치였고 화장을 하면 마스크에 묻어 불편했다. 화장을 하고 어디 갈 일도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비비도 바르지 않았다. 선크림이 최선이었다.
부끄럽지만 나의 주근깨를 내보여야 했다. 일이 아닌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때는 두꺼운 화장이 어울리지 않았다. 얇게 화장을 한다 해도 주근깨는 가려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기에 차라리 당당히 내보이자 생각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나였기에 부정하려 할 수 없었다. 주근깨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나의 일부로 인정해야 했다.
엄마도 내게 그런 존재였다. 엄마가 가끔 미울 때도 있었지만 그런 엄마의 모습도 인정해야 했다. 사진 속 젊은 엄마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빨간 니트를 입고 긴 생머리를 하고 자주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는 참 예뻤다. 지금은 선크림도 잘 바르시 지도 않는다. 그때의 모습도 지금의 모습도 엄마였다. 엄마는 엄마였다. 내겐 미워할 권리도 없었는데 내가 앞으로 나아가다 돌부리에 걸리면 그건 다 엄마 때문이라 생각했다. 마음속 깊숙이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불쑥불쑥 틔어 나왔다.
나는 내 이름 석자를 당당히 밝히고 싶다. 예명을 쓰는 작가분들이 많으신데 이 글에서 만큼은 나를 당당히 말하고 싶다. 아빠는 내게 말했다. 그렇게 살면 된다고.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면 된다고. 나 자신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내 나이 서른여섯. 아직도 외부 활동을 좋아하는 젊고 어린 나인데. 겨우 삼십 대 중반이 된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 하나 꼭 손에 쥐어드리고 싶다. 아빠 내 이름이 이경진이에요. 그리고 엄마 이젠 내 자랑도 하고 다녀요. 나 작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