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 제법 어둑해진 저녁 남편과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나선 길이었다. 길 양옆으로 마른 나뭇가지들이 뒤엉켜 있었고, 어둠 속 등불에 비쳐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때를 틈타 남편 손을 꼭 잡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손을 절대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속 울림이 전해져 왔다. 좁게만 느껴지는 그 길이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길인 듯, 그 길을 지나가기만 하면 우리의 사이가 더욱 단단해질 거라고 믿었다.
자주 지나다니던 동네 골목 어귀에 난 길이었다. 보이지 않았던 그 길을 우연처럼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그 길을 남편이 함께였기에 걸을 수 있었다. 우리가 딱 한 가지 맞는 것이 있다면, 바로 걷는 것이었다. 남편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장난스레 손을 내칠 땐 그래도 잡을 거야, 하며 손을 잡았다. 추운 날씨에는 남편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맞잡았다. 서로의 온기는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기에 충분했다. 남편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길을 걸었다.
내 마음은 오로지 남편을 향해 있었다. 마음의 중심에 남편과 내가 있었고, 함께 꾸려가는 가정이야말로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환경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제대로 잘 살아보자, 죽을 듯이 사랑하며 살아보자, 미워도 이해하고 감싸며 살아보자라고 마음먹었다. 때로는 서운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 남편이지,라고 생각하며 사랑하기로. 죽음 이후에도 가야 하는 길이 있다면 그 손 놓지 않고 같이 가보자고. 혼자라면 너무 외롭고 무서울 테지만, 함께라면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 마음의 변화를 작은 기적이라 말하고 싶다. 오로지 꿈만이 중요했던 내게 남편은 작은 섬이자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이 되었다. 가정은 시간이 지나도 세대가 바뀌어도 개개인의 마음속에 소망이자 꿈으로 존재하고,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확신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고, 그때 내 마음은 편안하고 평온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함께 하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빠랑 닮은 사람이 있네. 아빠인가?"
둘째 아이의 수영강습을 위해 찾은 수영장에서, 창을 통해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와있을 리가 없는데. 시계는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밖은 아직 대낮이었다. 셋째가 자기도 수영장에 들어가 수영하겠다며 떼를 쓰는 통에 진땀을 빼고 있다 남편이 이곳에 있다 생각하니 이리도 반가울 수가. 문 앞에서 누군가 전화를 받고 있는데 긴가민가하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진짜 남편이었다. 외근으로 밖에 나와있다 일찍 일을 끝내고 수영장을 찾은 것이었다. 수업 첫날이기에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수영을 배우고 있을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수영장 창 밖에는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중에 우리 부부가 있었다. 아이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여 오게 된 이 자리에 부모로 함께 서있는 우리가 신기하고 뿌듯했다. 부모로 살아온 지 13년 차가 되었어도 부부로서 마주하는 감정들이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둘에서 셋으로 넷으로 다섯으로 가족의 수가 늘어가는 만큼 사랑하는 마음도 더 커져갔다. 둘에서 다섯이 될 때까지 우리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극복한 결과로 다섯이 되었으니, 익숙함과는 다른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여 내 안에 뭉쳐 있었다.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를 다시 이 자리에 있게 했다. 사랑으로 더욱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로서 함께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부부로서 하나 되도록 이끌었다.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도 충분히 가치 있지만, 부부로서 존재할 때 더욱 완전해지고 안정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이름 석자를 찾기 위한 여정이 이제야 목적지를 만난 듯 삶의 방향이 가정 안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가정 안에서 희생과 인내를 배우며 성장해 간다. 가정은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훈련의 장이자, 감사를 배우는 학교이다. 아내이자 엄마로서도 온전할 수 있음을 느끼는 날들이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고 감사할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왔고, 기적이 되었다.
'일이랑 뭐가 달라?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다툴 일도 없고. 오히려 예의를 갖추려고 더 노력하잖아. 집에서는 왜 남보다도 못하게 말을 하고 행동하는 거야?'
남편과 나 사이에 오가는 말들에 왜 더 조심할 수 없는가, 배려할 수 없는가,라는 의문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회사에서도 그렇게 말해?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당신은?"라고 반문하기 바빴다. 열 가지 잘해도 한 가지 말로 삐끗하는 우리였다. 몹시도 싸우고 버티며, 그럼에도 사랑하며 지나왔던 시간이었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 짓고,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선을 그어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랑이었다. 서로를 위해 한 발짝 물러서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보듬어야 하는 사이가 부부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조금도 상처를 남기지 않고 흘려보내고 싶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었다.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숨기고 누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만이 우리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일수록 차분히 앉아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했다. 바삐 움직여 비우고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분리하고 통을 비워냈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을 꺼내었다. 비워진 서랍 속에 아이 옷을 정리하여 넣으니 훨씬 더 깔끔했고 여유로워 보였다. 아이가 꺼내 입고 정리하는데 불편함이 줄어들었다.
생각 또한 그러했다. 정리하고 비워야만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상대에 대한 나의 생각이 아닌 온전한 나에 대한 생각으로 바꾸어 나갔다. 생각을 버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리하여 배출해 내는 작업을 힘들더라도 해내야만 했다. 미워하기보다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일들에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결코 나를 부정하는 것도 낮아지게 하는 것도 아님을 알았기에 더욱 이해하고 싶었다. 그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며 나를 위한 일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자 내 인생 설계도에 대한 방향임을 자각하며 지금에 머물지 않으려 애썼다.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생각도 감정도 글을 쓰며 흘려보냈다. 다만 기록으로 남겨두었을 뿐이다.
지난 기록들은 쌓이고 쌓여 글탑이 되었고 마음에 갈등을 겪는 분들에게 참고서와 같은 책이 되길 바랐다. 지금의 자신을 우연처럼 발견하고 '내 마음도 혹시 이런가?'라고 되짚어 보거나 '나도 정리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마저도 나에게 작은 기적일 것이다.
감사하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불현듯 마음속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올라온다.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조금 더 친절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남편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좀비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도망 다니며 까르르 웃어댔다. 한마디로 초딩남편이 되었다. 한때 좀비에 빠져 하루 종일 좀비놀이를 하던 둘째는 좀비딸이라는 영화를 보고 좀비가 되어버린 아빠에게 먹히고 말았다. 매일 저녁 아빠는 좀비가 되어 아이들의 팔을 물며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에 신이 난 아이들은 더 큰 좀비가 되었고 셋째는 무섭다며 내 품에 달려들었다. 첫째 아이는 아빠좀비에게 물린 후 울다 잠이 들었다. 사춘기의 탈을 쓰고 시크해져 버린 딸은 아빠에게 눈을 흘기었고 이에 삐쳐버린 남편은 아이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그리곤 또다시 좀비가 되어 아이들을 공격했다.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이 되었다.
좀비가 일으킨 기적이었다. 이제는 감사하는 좀비가 되어주기를. 그래도 나를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 남편이다.
작가님들께 ⸜❤︎⸝
오늘 드디어 셋째가 유치원에 등원했습니다. 입학식 후 처음으로 맞는 유치원 생활입니다.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 전날까지도 제 몸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녔습니다. 심지어 화장실도 따라가 옆에 있으니 난감할 정도였습니다. 나가있으라는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안아주었습니다. 내일이면 해방이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아이와 잘 지내보자, 이런 날도 금방 지나갈 테니,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었습니다. 아이가 사랑스러운 건 또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아파트 앞에서 유치원 버스를 첫 타임에 타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내던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앞당겨져 시간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바로 목욕용품을 챙겨 사우나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쓰고 있던 글을 마무리하고자 컴퓨터를 켰습니다. 어느 정도 글이 채워지고 재빠르게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버스는 운이 좋게도 바로 왔고 예상한 시간에 맞춰 사우나에 도착했습니다.
사우나 한편에 마련된 소금방에 들어가니 어떤 목소리와 들려왔습니다.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는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과 운동은 다른 거예요. 운동을 거르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달라요."
저는 이 말을 글쓰기에 대입해 보았습니다.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다르다고요. 조금씩이라도 메모를 하며 글쓰기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지났을 때 글쓰기 역량에 차이가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하면 근력이 증가하듯이 글쓰기도 글력이 늘어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도 알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감각인 듯합니다.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올해 작가님들은 어떤 소망을 품고 이루기를 바라고 계신가요?
저는 제 삶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붉은 말의 해가 될 것입니다.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진짜 내 얘기를 하며 변화를 위한 밑거름을 만들고 초석을 단단하게 다지겠습니다. 작가님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작가님들께 행복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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