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연구생활

사랑하고 싶은 마음

온전한 내가 되고 싶었다. 말에 상처받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나여서는 안 되는 걸까 생각했다. 내 생각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말을 하는 남편을 대할 때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내 마음을 인정받지 못할 때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가슴이 턱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감정을 이해받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부정하고 남편을 이해하고만 싶었다. 남편에게만 감정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AI가 되고 싶은데 될 수가 없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억지로 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참으려고 노력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속상함이 비집고 들어오니 도대체 이 마음이라는 존재는 뭘까,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소통이 되지 않을 때마다 싸움이 더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입도 귀도 막아야 했다. 그때마다 참는 것이 괴로워 마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이 멈추지 않듯이 감정도 막을 수 없었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음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사람을 존재케 하는 것으로.


그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은 오직 내 몫이기에 더욱 글쓰기에 몰입했다. 비난 어린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내 존재가 하찮게 느껴져 죽고만 싶었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터놓을 길은 글쓰기 밖에 없었다. 살아야 했기에. 글쓰기라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그제야 숨을 쉬었다.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남편과 대화를 할 때마다 올라오는 질문이었다. 내 감정을 알려고 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따지기만 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었지만 서운하고 답답한 감정이 올라와 고통스러웠다. 남편 앞에서는 말을 조리 있게 해야 한다거나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는 부담을 갖고 싶지 않았다. 두서없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 생각을 이해해 주길 바랐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말이나 쉽게 판단하는 말은 남편을 되려 화나게 했다. 가장 안전하고 편한 존재가 남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이상일 뿐이었다.


말을 가장 가려서 해야 하고 필요한 말이나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네가 그런 마음이었구나'라는 말은 절대 들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라는 말은 남편의 분노 버튼이 되기 일쑤였다.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이 이런 걸 어떡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며 내 마음을 구체화하고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차분해진 상태로 남편을 대할 수 있었다. 남편과의 소통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을 정리해 냄으로써 일상생활을 평소처럼 유지할 수 있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 하여 나에게 모진 말을 던진다 하여 무조건 미워하고 피할 수만은 없었다.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알려하지 않는 거지? 왜 자기 말만 들으라 하는 거지?라는 물음은 불평불만으로 느껴졌고, 내 마음의 변화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감사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내 마음이 짓밟히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나도 아내로서 엄마로서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지만 남편으로부터 여전히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듯했다.


남편과의 불통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원동력이 된 셈이다. 내 마음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였기 때문이다. 내 문제와 상황을 제일 잘 아는 사람 또한 나였다.



왜 상대의 마음을 보지 못하느냐는 말은 남편을 더욱 화나게 할 뿐이었다. '너는 내 마음을 알아?' 역으로 나에게 질문을 해왔고, 나는 입을 닫아 버렸다. 나 역시도 내 마음이 먼저였던 것이다. 남편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알고 이해는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받아줄 수는 없었다.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이해는 남편에 대한 억지사과로 이어졌다. 이 상황을 그만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래. 내가 미안해. 내가 화나게 했어.라고 말했다.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너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차분하게 내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고 화를 내어 미안하다.'라는 한마디였다. 그런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편에게 감사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감사할 수 있어? 너도 네 마음을 인정받고 싶잖아.'라는 말이 들려온다. 절대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감사하려는 이유는 남편과 나 사이에 더 이상 균열이 없길 바라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마음이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감사하고 싶었다.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시행착오를 수백 번 수만 번 겪어야 할 것이기에, 내가 받은 상처를 생각하기보다 곁에 든든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내 마음은 내가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탄하기보다 지금 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해결의 지혜는 나에게 있었고, 그걸 찾아야만 하는 사람도 나였다. 부족한 부부간의 의사소통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부부로서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남편과 나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남편 또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돌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까지 바위를 깎아내는 심정으로 인내해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는데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각자의 마음속 상처를 보듬고 화해하며 용서할 수 있기를. 내 마음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몸의 상처가 시간이 지나 아물듯이 마음 또한 스스로 회복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나는 남편과 내가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서로의 마음이 맞닿는 그날까지 품고 또 품는 내가 되고 싶다.




작가님들께 ⸜❤︎⸝‍


사랑할 수 있는 자리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가정을 정의 내려보니 이 두 가지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언제든 남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보다 내가 더 많이 주고 사랑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 위주로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이해하지 않는 것에 사로잡혀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사랑에 동의하시나요?


먼저 주는 사랑은 결코 망하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할 때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다는 이 당연한 사실이 어렵지만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이상적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이야말로 사랑의 훈련소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과 부부의 서로를 희생하는 사랑이 가정을 넘어 사회를 밝게 만든다는 울림이 옵니다. 그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어디든 내가 가는 곳이 평화와 행복으로 넘쳐날 것임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사랑이야기 들어주시겠어요?

오늘도 편안한 하루, 행복한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가님들께 행복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매거진의 이전글버리라는 남편  vs   버리지 못하는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