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라는 남편 vs
버리지 못하는 아내

정리이몽

남편과 내가 부딪히는 첫 번째 이슈는 정리정돈이다. 언젠가 치우기는 하는데 남편의 눈에 거슬리기 전에 정리하지 못해 화를 버럭 내게 만든다. 이전보다 정리습관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남편 눈에는 부족한 듯하다. 예를 들어 물건이 선반 위에 무질서하게 놓여 있거나 버려야 될 것들이 보이면 -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 순간 남편은 다른 사람이 된다. 소통불가한 헐크가 되어버린다.


"내가 정리하고 버릴 거야"

"하지 마 내가 할게"

"나오라고!"


남편이 화가 나면 정리할 때 퍽! 퍽! 소리가 난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 종류에 따라 분리하길 원하는 나는 남편의 정리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은 한 곳에 던져버리면 끝이지만, 그걸 분리해서 정리한 후 분리수거장에 갖다 버리는 일은 내 몫이다.


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은 화가 날 때 일단 방에 들어가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하겠다고 하는데도 왜 놔두지 못하고 씩씩대며 물건을 내던지는 걸까. 남편은 물건을 버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화가 나 분노를 표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남편이 화를 내기 전에 미리 정리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언젠가 쓸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사건의 발단은 베란다 안에 쌓아 놓은 상자로부터였다. 나에게는 한쪽에 얌전히 상자 세 개를 겹쳐놓은 것이었지만 남편에게는 버리지 않은 물건으로 보인듯했다. 재활용품을 담는 용도로 가만히 놔두었던 건데 남편 눈에는 정리가 안 된 것으로 보였는지 눈에 갑자기 불이 붙기 시작했다.


화를 내는 남편을 보며 꼭 그렇게 화를 내야 하냐고 물었다. "같이 정리할까? 네가 버리기 힘들면 내가 할까?"라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좋은 말로 할 때 말 안 듣잖아, 낮에는 뭐 하는데?"이다. 이에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난감하다. 화가 더 커지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린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왜 그래, 내가 정리할게"뿐이다.


'정리가 안되어 있어서 화가 났어?'와 같이 화가 난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은 더 화를 돋우게 될 것 같아 속으로 집어넣고야 만다. 남편이 화가 나 욕을 할 때면 그걸 지켜보는 딸들이,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행동으로 부적절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봐, 욕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힘을 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딸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결혼생활을 할 때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했다. 당연하지 않다고 느껴야 하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다.


"사소한 것으로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라고 말하면, 이에 남편은 "사소한 건데 왜 못하는 거야!"라고 반박한다. 지저분해 보이면 왜 이렇게 했냐고 화를 내지 않고, 직장에서 일을 하듯이 차분히 상자나 봉투에 담으면 될 일인데 대역죄라도 지은 듯이 화를 내고야 마는 것인지 이해해 보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원가족 안에서의 영향일 거라고 판단할 뿐이다. 평온한 집안에 마치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인 것처럼 갑작스럽다. 잠잠하다 싶었는데 다시 화를 내는 주기가 돌아온 걸까 싶어 그동안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버리라는 남편과 버리지 못하는 아내인 나는 늘 같은 상황에서 부딪히고야 만다. 제자리가 아닌 물건이 놓여 있을 때 그걸 언제 치우나 지켜보는 남편은, 차츰 분노게이지가 매일 조금씩 쌓이는 것인지 그것이 자신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폭포수처럼 화를 쏟아내고야 만다.


제자리는 본래 있던 자리, 위치의 변화가 없는 같은 자리,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단어처럼 우리의 위치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남편 자신도 모르게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네가 못하면 내가 일 그만두고 할 거니까 네가 나가서 돈 벌어와."라고 말하는 남편이다. 나는 남편에게 왜 이리 중간이 없어,라고 할 뿐 그 어떤 대꾸도 할 수가 없다. 정말 돈 번다고 나가버릴까?라고 생각해 보지만 다음날이면 남편은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를 한다.


남편이 화를 낼 때면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지만, 화를 내는 것 자체만으로 남편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부부가 마음 맞춰 사는 것이 결혼생활이고, 서로의 노력이 있어야 함을 알기 때문에 남편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버려야 될 것이 눈에 보이면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바로 쓰레기 봉지에 넣는다거나 버릴 옷들을 과감히 봉투에 담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장롱 속 안 쓰는 이불도 남편에게 표적대상이었다. 겉이불이 없이 솜만 있어 새 커버를 씌어 놓으면 가족들이 왔을 때 쓸 수 있을 것 같아 장롱 속에 가만히 두었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더 이상 남편의 지적을 듣고 싶지 않아 대형 쓰레기봉투에 담아 바로 갖다 버렸다. 버리고 나면 버리는 일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하며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직접 하지 않고 버릴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남편이 저렇게 화를 낼 정도로 싫어하는데 버리지 뭐'라고 생각하곤 한다.



생존형 버리기 vs 조금 지저분해도 괜찮아! 노 프라블럼!


남편 : 버려야 산다. 살기 위해 청소한다.


나 : 어릴 적 청소와 살림은 엄마의 몫


남편에게 정리는 어떤 의미일까? 왜 이리도 화를 내는 걸까?

남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본다. 농사로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 청소를 해야 했을 남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깔려있었을 듯하다. 엄격하고 깔끔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집안을 정돈하는데 시간을 들여야 했을까? 나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혼내듯 하는데, 어쩌면 아버지가 남편이나 어머니를 대할 때 그러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왜 그러냐고, 화내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는 나의 말을 들으며, 부모님께 절대로 하지 못했을 말을 하는 것 같아 화가 났을까? 나는 혼이 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겨야 했을 어린아이를 떠올려본다. 남편이 화를 낼 때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하지만 남편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내 자리에 남편을 세워 놓고 보니, 외로웠던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냥 어린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내가 왜 혼이 나야 해? 잘 모르겠어. 무서워서 참고 있는 것뿐이야.'


남편의 입장에서 화를 내는 것이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남편이 경험했을 소통방식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게 된다. 상처되는 말에 눈물을 흘릴 때마다 '억울해?'라고 말을 하곤 했는데, 그 말속에 숨은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을 때 남편의 어린아이가 굉장히 억울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화를 낼 때 그런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화내지 않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화를 내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둥둥 떠다닌다. 남편은 멍해져 있는 나를 보며 '무슨 말이라도 해봐. 왜 말 못 해? 잘못했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당신도 화를 내는 아버지가 참 무서웠겠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울기만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운다고 더 혼이 났을까?'




정리할 생각을 못하다가 남편의 성화에 결국 버리고야 마는데, 나는 왜 말하기 전에 버리지 못할까?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깨끗하고 정돈이 되어있는 편이었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는 등 엄마를 도와드렸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랬던 내가 결혼하고 직접 살림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청소해야 하고 정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도 있었는데, 청소나 정리는 엄마의 몫일뿐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직접 해야 한다거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살림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되었다. 마음 안에는 못다 이룬 꿈이 가득했고, 이상과 현실을 오가며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해결되지 않은 꿈은 내 마음을 헤집고 다니기 일쑤였다. 살림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결혼하고 나서 뭘 배우는 거야? 결혼하기 전에 다 하고 왔어야지"

빠듯한 형편에 돈도 벌지 않는 내가 돈을 들여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를 배울 때 남편이 하는 단골멘트였다.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허공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하고 싶은 걸 어떡해. 얼른 배워서 사회로 나가고 싶어' 하지 못하는 말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밖을 나가야 하는 일은 엄마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않는 거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곤 했다. 만약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면 어땠을까? 나를 무조건 지지해 주었을까?


엄마로서 아내로서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우연처럼 찾아온 글쓰기였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글자들은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동시에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나는 종일 글쓰기를 생각하고 매달렸다. 아이들을 돌보며 해야 하는 일들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집안일에 세심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 남편이 오죽 답답했을까, 이제야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남편의 '화'에 집중하던 때와 다르게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요즘이다. 나는 깔끔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왔지만 모든 것을 엄마가 해주셨기에 청소나 정리가 습관이 되어있지 않았다.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행복만이 머릿속에 있었기에 살림에 대한 남편의 잔소리는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나에게 화를 내는 것 그 자체가 무서워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차츰 마음에 변화를 주다 보니 조금씩 살림과 꿈에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평불만을 하기보다 지금의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다 보니 좀 더 집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집안일을 우선으로 두었다. 이전에도 그렇게 해왔었지만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의 변화였다. 시선이 가지 않았던 곳을 조금 더 살피게 되었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비워낸 곳에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정리가 되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남편이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왔다.




작가님들께 ⸜❤︎⸝‍


부부공감에세이라는 매거진을 통해 부부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것들을 자세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모든 행동이나 말에는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제 자신또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이야기를 읽으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