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핸드폰으로 오래전 사진을 보았다. 8년 전 시댁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데 마음속에 무언가 움찔거렸다. 남편과 헤어지겠다고 떨어져 지낸 시간 후 다시 만난 시부모님과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그 사진을 화면에 띄어놓았던 걸까. 문득 떠오른 그날의 기억에 가족들 모두 알 수 없는 감정의 기류가 몇 초간 이어졌다.
"나는 왜 없어?"
셋째는 사진 속에 왜 자신이 없냐고 물었다.
"그때는 네가 생기지도 않았었어"
시어머니의 밝으면서도 차분한 음성이 내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갑자기 옆구리가 쿡 찔린 듯 깜짝 놀랐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진을 응시했다. 죄송함과 감사함이 뒤범벅되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2년간의 공백 후 시댁에 돌아왔을 때가 생각났다. 왜 그랬냐는 말 한마디 없이 받아주신 시어머니는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나를 보자마자 '왔으니 됐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남편의 생각을 존중한다고 하셨던 시부모님은 남편의 뜻대로 우리가 다시 함께 살기를 바라셨고, 어떤 원망도 하지 않으셨다.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들을 위해서 며느리를 탓하지 않는 엄마의 마음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시댁에서 남편이 나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남편에게 쓴소리를 하며 며느리 편을 들어주시지만 그것 또한 아들을 위한 엄마의 마음이라고.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를 볼 때 부족해 보이고 못나보여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며느리에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입장이자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결혼한 자식에게 바라는 건 돈도 명예도 아닌, 가정을 잘 지키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았을 때 며느리인 나는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건 자주 찾아뵙는 것이었다. 한 손에는 간식을 사들고 남편,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을 찾아간다. 딸이 엄마에게 말하듯 살갑지는 못하지만 할머니를 잘 따르는 아이들은 할머니 옆에 붙어 할머니를 기쁘게 한다. 가족이 함께 오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안심하고 계신 걸까? 모든 걸 용서하고 받아들인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왔다. 하지 못한 말들을 속으로 삼키며 애써왔던 부모님이셨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있었기게 가능했다고. 가족을 향한 엄마의 사랑과 지혜가 있었기에 가족이 함께일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렇게 가족이 회복되어 갔다.
"어머니, 저 임신했어요."
임신 테스트기에 빨간 두줄이 뜨고 이주 후 산부인과에서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다. 코로나 시기로 외출을 자주 하지 못하던 터라 전화로 임신 소식을 전했다. 임신계획을 세우고 3개월 만에 찾아온 셋째는 부모님께 걱정만 끼쳐드리던 우리가 해드린 최고의 효도선물이었다. 가족간의 간극과 틈을 메우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분위기를 돋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때는 네가 생기지도 않았었어'라는 어머니의 말속에 여러 감정과 하지 못한 말들이 숨겨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헤어지겠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너희는 아마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너에게 잘해주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연락 끊고 친정으로 가버리다니. 얼마나 괘씸하고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지. 네가 없던 2년 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썩어 들어갔는지 넌 알기나 하니?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했다. 네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했어. 그냥 다 받아들일 테니 돌아만 와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다. 그러다 셋째가 생겼다길래 하늘의 선물이라 생각했어. 이 아이가 너희를 다시는 헤어지지 못하도록 이어주려고 찾아왔구나, 싶었다. 그 아이가 내 옆에서 할머니라고 부르며 안기고 쫓아다니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2년의 공백 후 8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문 앞에서 나를 보자마자 잘 왔다고 안아주시던 시할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 일어나 나를 맞아주셨다. 어쩌면 뻔뻔하게 부모님 앞에 다시 나타난 며느리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며느리를 다시 받아들이기까지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지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다 알 것만 같다. 부부사이가 어땠건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건 잘못한 거니까, 부모님 앞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건 남편과 다시 만나 살면서 우리 사이에 일어났던 셀 수 없는 싸움들이 지나간 후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다시 합치고 여전히 내 마음은 유리와 같아서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연약함이 있었다. 어딘가에 내 마음을 의지해야만 하는 어린아이였다. 다시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남편과 트러블이 날 때마다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리도 마음이 괴로울 수 있는지 수많은 날들을 울며 지냈다.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부모님께 더 이상 우리 사이의 문제를 말씀드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떻게든 이 안에서 헤쳐나가 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다 남편의 외로운 마음이 들어왔고 우린 더욱 서로의 마음을 의지하게 되었다. 서로를 통해 위안받고 위로받았다.
남편과의 싸움이 잦아들고 아이들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각자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해야 하는 일들을 척척 해나갔다. 가정이 안정권에 접어든 지금 나의 글쓰기도 순항 중이다.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그 속엔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있었다. 우리 사이를 믿어주시는 만큼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사과가 먹고 싶다던 셋째의 말이 생각나 시장으로 향했다. 마침 달력을 보니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사과를 둘러보던 중 눈에 익숙한 메밀과자가 보인다. 친정부모님 집에 있던 새싹보리 과자와 메밀과자였다. 과일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과자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시부모님 밭에 가지고 가기 위해서였다. 일하시면서 출출하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가볍게 먹기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시장에서 산 딸기와 과자를 작업장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거 얼마야? 어디서 사 왔어? 지방에 여행 갔을 때 시장에서 사려고 보니 이만한 크기에 만원이나 하던데~ 유행이 빨라~"
어머니는 봉지를 뜯어 과자를 덜은 후 하나를 집어 맛을 보았다. "이건 뭐라고?"
"새싹보리예요 어머니. 그 옆에는 메밀, 그리고 늙은 호박 과자예요"
밭을 새로 이전한 후 시부모님이 사시는 동네와 멀어져 시장에 자주 가시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종종 간식을 사들고 간다. 항상 간식이 있던 이전 밭과는 달리 집에서 가져온 사과나 배 등의 과일만이 있어 스낵류나 빵을 산다. 내가 사 온 간식을 잘 드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갔을 때 다 드시고 없으면 내가 잘 사갔구나,라고 생각한다. 더 큰 봉지에 든 걸 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소소하지만 부모님을 향한 내 마음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간식을 사간 날이면 다음에 또 사 오라며 용돈을 쥐어주신다. 바라고 사가는 건 아니지만 쏠쏠한 맛이 있다. 부모님께 간식도 드리고 용돈도 받는 1석2조의 느낌이랄까?
우리 가족에게 부모님을 찾아가는 일은 어떤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다. 차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살고 있어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남편 차를 타고 간다. 아이들은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쫓아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밭 주변을 돈다. 파란 하늘과 날아다니는 새를 구경한다. 평소 밟지 못하는 흙을 밭에서 밟고 논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조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남편과 나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조금씩 마음을 넓히고 사랑해 간다.
작가님들께 ⸜❤︎⸝
가족이 그렇게 성장해 갑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과 익숙한 마음이 모여 사랑이 됩니다.
작가님들은 가족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작가님들께 행복 에너지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으며
나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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