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글쓰기로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마무리되지 않는 글들이 '작가의 서랍'속에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떠오르는 제목을 쓰고 내용을 쓰지 못하거나, 쓰다만 글들이 생겨난다. 마음으론 완성된 글을 발행하여, 발행한 글의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나 있기를 바라지만 이상하게도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 복잡한 내 마음 때문일까. 해결되지 않고 내 안에 떡하니 자리 잡은 남편과의 불완전한 소통으로 나의 글에 확신이 서지를 않는다. 내용이 이어지지가 않고 자꾸만 끊어진다.
사명선언문을 만들었다. 심리학과 관련된 자격증 수업에서의 과제였던 사명선언문을 완성했다.
나는 '엄마의 글쓰기'크리에이터로써
글쓰기와 심리학 이론을 접목한 콘텐츠로
부모 마음의 회복과 성장을 돕는다.
마음이 아무리 복잡해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글쓰기를 주제로 한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오늘의 내 마음을 기록해야 했다. 나의 사명의 핵심은 '솔직함'이기 때문이다. 솔직함이 없이는 나의 사명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글쓰기는 곧 나와의 만남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또한 나 역시도 글쓰기로 세상에 발을 디디려고 준비 중이기 때문에, 나의 콘텐츠를 접하는 많은 부모들이 글쓰기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선 내가 먼저 글쓰기로 변화해야만 한다.
글쓰기에 대한 지식이 많거나 콘텐츠의 틀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 '엄마의 글쓰기'라는 콘텐츠의 시작이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지금의 마음도 솔직하게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헤매는 엄마이지만 변화와 성장을 갈망하는 엄마라고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의 저자는 나를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인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방식이면서도, 좀 더 많은 자기 통제와 수련이 필요합니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루에 한 줄 씩이라도 내 안의 것들을 그저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에 익숙해지고 탄력이 붙으면 분석가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의식의 흐름이 자유로워지고 의식보다 나의 글이 앞서서 써 내려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중략)
굳이 책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언어로 나를 표현하거나 문자로 나를 표현하고 써 내려가는 작업은 끊임없는 기표를 남기며 자신을 발화하는 행위이지요. 그것은 '현존'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고 고치고 또 쓰고를 반복하다 보면, 그 글은 또 하나의 내가 되어 말을 걸어옵니다. 글을 수정하는 일은 글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의 과정이지요.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글을 쓰는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정화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박우란,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6장 엄마를 넘어 한 인간으로 사는 법 중에서
나는 지금 글쓰기로 수련 중이다. 변화와 성장을 꿈꾸는, 하지만 헤매고 있는 엄마로서 말이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나를 기록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많은 엄마들, 혹은 부모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문제를 해결해 줄 상담사와의 상담을 원한다. 불안과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다거나 남편 혹은 아이와의 갈등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부부상담을 원했다. 하지만 10회 이상 상담을 받아도 큰 변화가 없다거나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알아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지역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상담은 대기자가 많아서 언제가 될지 알 수도 없었다.
답답하고 때론 문제를 회피하는 나에게 글쓰기는 상담사 와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치료가 필요한 부분에선 치료상담을 받아야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담은 질문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비용을 지불하고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면 더 수월하게 진행이 될 수도 있겠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운 나에겐 글쓰기만큼 훌륭한 상담사도 없다. 결국엔 내 안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결정'의 저자 피터비에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감정과 바람은 그 정체를 밝히고 표현하며 다른 감정이나 바람과 차별화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전보다 확실히 더 명확하고 뚜렷한 윤곽선을 띠게 된다는 뜻입니다. 언어로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혼란스러운 느낌들은 감정적 확신으로 변화합니다.
(중략)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내적 구조까지 변경하는 이러한 과정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자기표현 과정을 통해 개인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것을 언어로 나타냄으로써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것도 이 작업의 하나지요.
어떤 경험에 대한 새로운 서술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해서, 이제 그 감정이 어떤 사람에게 느끼는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포함된 것임을 밝혀낸다면 나의 인식은 새로운 국면에 도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걸어온 족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가진 미움의 감정이 과거의 사건,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무시당했다거나 모멸감을 느꼈던 사건에 연유했다는 것을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억지로 밀어내 땅속 깊은 곳에 묻어놓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감정일 수 있지요.
가정에서 출발한 이 인식은 이제 그 인과적 힘을 펼쳐서 우리로 하여금 내적 검열의 선을 부수고 부정 돼왔던 감정을 더없이 명확하고도 제약 없이 느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인식된 경험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되지 못한 것을 의식화하는 것, 이 두 가지 방법은 우리가 언어적 발현을 통해 우리의 감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 결정의 적용 범위를 내면으로 확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표현은 언어로 나타냄으로써 의식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드러냄으로써 내가 느끼는 감정의 출처를,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 또한 글쓰기로 자기표현을 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을 발견해내어 엄마를 넘어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이 인생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인 것이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가족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개개인 모두가 독립된 인격체로서 건강한 삶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엄마나 아내로서의 페르소나가 자신을 온전히 설명해줄 수 없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엄마를 넘어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함으로써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