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부부관계는 건강한 나로부터 시작된다.

책 '융, 중년을 말하다'로 본 나와 남편의 현실과 변화에 대한 가능성

"나는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가족이 세상의 전부예요. 나는 그들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대릴 샤프 / 융, 중년을 말하다(소설로 읽는 융 심리학)


소설 속 내담자인 노만이 예약도 없이 분석가를 찾아와 한 말이다. 나는 이 대사를 보자마자 남편과 나의 관계가 떠올랐다. 남편과 나, 각자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함께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부모가 되었지만 우린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완벽한 행복이란 없을 테지만 우린 완벽하게 행복하지 못해 서로를 힘들게 한 건 아니었을까. 행복을 서로에게 기대했다 자신과 맞지 않는 점들을 발견하고 싸움으로 번지니 실망하게 된 걸까.


실망했다 해서 헤어질 필요는 없다. 물론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별을 택한다는 건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남녀 간의 콩닥콩닥 거리는 사랑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에, 사랑을 넘어선 의리로 함께 오랫동안 살아내기 위해 맞춰나가야 하는 것 밖에는 정답이 없어 보인다. 나 또한 남편에게 맞춰 보려 노력했고, 남편도 힘들지만 참아내려 하는데, 그럼에도 왜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일까.


'그는 신비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언제나 상투적이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의 마음은 풍요로웠다. 그의 마음속은 새로운 계획과 아이디어들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그의 예감은 항상 맞았다. 나는 오감에 제한되어 있는 반면 그는 육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관점은 세속적이었다. 내가 사람이나 물건을 보는 곳에서 아놀드는 영혼을 보았다.'


소설 속 화자가 자신의 파트너이자 친구인 아놀드와 자신의 다른 점을 나열한 구절이다. 늘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화자와 항상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을 추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가진 아놀드는 마치 남편과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정해진 대로, 계획적으로 움직이길 바라는 남편과 늘 변화와 새로움을 원하는 나는 소설 속의 두 인물처럼 항상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아주 자유롭고 무계획 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남편처럼 철저한 계획형, 원칙형도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내면의 원칙들이 있어도 상대를 위해 참거나 상대의 말로 인해 계획이나 원칙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고해서 나만의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맞추는 것일 뿐이다.


남편은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순응했던 적이 별로 없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자신의 욕구를 참아내야만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내가 어떤 욕구를 표출했을 때 이기적이라고 표현을 한다. 자신과는 다르게 덜 계획적이고 덜 꼼꼼한 것을 나의 성격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기 때문에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편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탐탁해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를 할 때마다 문제상황들이 벌어지곤 한다. 나는 남편의 반대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 고집을 부리다 결국엔 남편이 폭발해 버리곤 했기에 나는 헤어질 것처럼 집을 나와 버리곤 한다. 남편도 자신이 아이들을 홀로 책임질 것처럼 그래 나가라 하지만 결국엔 내게 다시 돌아올 것을 요청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이면서 '모르고 있던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누군가에게 투사를 한다. 그런데 투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상대 혹은 세상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일 뿐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상대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는 나에게는 없는,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그림자인 동시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관심 밖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이 나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상엔 나보다도 욕심 많고 늘 새로운 것을 꿈꾸며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독 나만을 이기적이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남편은 자신과는 다른 나를, 자신이 해보지 못하고 살아보지 못한 삶이라 생각해, 자기 자신이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이라 규정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에게 나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합리화해야 자신이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걸까. 결혼 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오다 결혼을 통해 살아보지 못한 삶인 상대방을 만나, 자신이 살아 보지 못했고 현실로 이뤄내지 못했던 모습을 상대에게 발견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자신을 탓할 수 없어 상대에게 투사하는 것일까.


결혼은 독립된 '나'와 '너'의 만남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나'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욕구와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심리학 공부를 하기 전에는 '나'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은 나의 감정이나 욕구를 물어봐 주시거나, 나의 감정적 호소에 지지해 주신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언니와 나를 차별했던 감정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힘이 들수록 나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과 애정을 자꾸만 확인하려 했다. 남편과 트러블이 났을 때 오로지 남편과 내가 해결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꾸만 내편이 되어줄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한걸음에 달려오셨고 이로 인해 남편은 나와 부모님을 동일시하며 원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남편은 나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나와 친정부모님 탓을 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을 괴롭혔다며 마치 자신과 시부모님을 동일시하듯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을 가족과 가족과의 만남이라는 말을 한다. 아내와 남편만이 아닌 양가 가족끼리도 결혼을 하는 것이다. 오롯이 남편과 아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분가를 했을지라도 제대로 부모와 분리가 안 된 경우엔 집안 대 집안으로 싸움이 번져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다시 말해 결혼이라는 것은 독립된 개인과 개인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임에도 집단과 집단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꼴이 돼버린 것이다. 특히나 우리 부부 같은 경우엔 결혼을 하고 집과 살림살이를 장만할 때 부모님의 도움이 컸었고 서로의 부모님들께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가 잘 알지 못했던 경제적 현실이었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원룸에서 시작하길 원했지만 친정부모님은 그래도 평수가 작은 복도식 아파트에서라도 안정되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남편은 자신의 의견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시댁 근처에 살았던 우리는 거의 매일을 시댁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쌀과 반찬도 시댁에서 가져다 먹었다.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시댁에 해드리는 것도 없으면서 무조건 받기만 한다고 생각해 나를 나무랐다. 그때 나는 결혼에 대한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시부모님도 나의 부모님이라 생각해 무조건 받기만 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시부모님께 받을 때마다 남편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편과 시부모님이 한 가족이고 나는 가족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과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남편은 내 편이 아니라고 여겨 우리 사이의 이야기를 친정부모님께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또한 우리 사이가 안 좋을 때마다 시댁에 갔을 때 티를 냈고 시어머니는 남편과 나 사이에서 중재해주시려 애쓰셨다. 우리는 독립하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건강한 부부관계는 건강한 나로부터 시작된다


칼 융은 건강한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융이 말하는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중년기 혹은 그 이후에 나타난다. 이들은 이 시기를 겪으면서 성격 본성의 변화로부터 생겨나는 냉혹한 위기를 견디어 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무의식이 나타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이전에 억압되었던 본성의 측면을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건강한 사람 들은 높은 수준의 자각을 성취하게 된다.

즉 그들은 의식과 무의식 수준에서 모두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를 수용하는 것도 발달하게 된다. 자기의 장점과 약점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으며, 페르소나를 드러내고 있으나 자기와는 동일시하지 않는다.


건강한 '나'는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자기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부정적인 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페르소나를 나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 혹은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의 페르소나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행해야 할 역할일 뿐이다. 다시말해 페르소나는 나 자신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아내, 남편, 엄마, 아빠라는 페르소나로만 바라보면, 역할로서의 모습을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기대한 것을 하지 않으면 실망하게 된다. 사람은 역할을 떠나서 욕구와 감정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커서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기대대로 해주길 바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역할로서 당연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이나 욕구가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공부를 한다 했을 때, 콘서트를 간다 했을 때 꼭 지금 해야 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자신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와 다 가족들한테 쓰기 때문에 천 원 한 장도 아쉬운데 너는 어떻게 그 돈을 내고 공부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콘서트를 간다 했을 때도 아직 셋째가 어린 데 가서 코로나 걸려 오면 어떡하냐고 내년에 잠잠해지면 가라고 말했다.


남편은 나를 한 개인으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엄마로서 바라보기 때문에 나의 욕구를 지지해주거나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족하면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아껴야 하고 모은 돈은 살림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공부를 위해 매달 돈을 모았던 것이었고 살림을 하기 위한 돈과는 별개였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보다 늘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쓰면서 자신의 욕구를 참아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였을 수밖에 없다.


결혼은 독립된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다. 결혼을 해서도 서로를 고유한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 결혼생활을 건강하게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하나의 페르소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독립된 '너'와 '나'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욕구와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 함께 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 욕구를 짓누르는 순간 살지 못한 삶이 그림자가 되어 서로를 힘들게 할 것이다.


유퀴즈 온더 블록이란 프로그램에 진명스님이 출연하신 적이 있다. 진명스님은, 스님이 되겠다고 가족들 앞에서 선언했을 때 아버지가 반대를 심하게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버지께,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를 설득하셨다고 한다. 이 말이 나에게 참 와닿았다. 사람에겐 욕구와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부부관계에서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대를 하게 되면 갈등의 골만 깊어지게 될 뿐이다.


우리 부부에게도 이 부분이 과제로 남아질 것 같다. 앞으로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함께 나누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건강한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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