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잠재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책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로 본 나의 '살지 못한 삶'에 대하여

무엇이 이토록 나를 이곳으로 이끄는가?


꿈을 꾸었다. 나는 계속해서 무엇을 찾고 있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면서 앞으로 내가 아이들과 지내야 할 곳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곳이었고, 숙소엔 꽤 빈 곳이 많았다. 숙소를 벗어나 아이들과 어디를 가려고 하는데 나는 아이들과 나의 외투까지 챙겨야 했다. 부피 있는 옷들을 나 혼자 다 들고 가려니 걱정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셋째가 찻길로 걸어 나가려고 했고 다행히 아이를 붙잡을 수 있었다. 나는 큰 아이에게 아이를 잘 봐야지 뭐 하는 거냐며 잔소리를 했다.


꿈속의 외투는 겉옷 위에 걸치는 옷으로서 명예, 독립, 빈부, 귀천, 직장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나의 자리를 찾고 싶었던 걸까. 꿈속에서 유난히도 숙소의 빈 곳을 바라보는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겉으로 보기엔 넓어 보이지 않았는데 속으로 들어가 보니 숙소는 꽤 깊고 넓었다. 그 넓은 곳에서도 군데군데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맡아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현실 속에서도 명확한 나의 자리를 갖고 싶어 하루하루 버티는던 중 나의 미래가 조금 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꿈으로 투영된 것 같다.


나는 또 상상하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 자리와, 그것을 찾고 활발히 활동하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머리는 단정하고 예쁜 단발이고, 날씬하여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 얼굴도 피부정돈을 하여 깨끗한 모습이다. 나는 잘 나가는 저자이며 강사이고, 나만의 분야에서 튼튼히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다. 사무실도 개소하였다. 강의 문의는 쉴새 없이 들어오고 남편은 나의 스케줄 정리로 바쁘다. 나는 '엄마의 심리학 글쓰기' 저자이며 강사이다. 사무실 이름도 '엄마의 심리학 글쓰기 연구소'라 지었다. 이 이름에 걸맞게 나는 대학원 과정을 밟고있다. 상상 중 불현듯 떠오른 '엄마의 심리학 글쓰기', 그리고 연구소까지, 나는 살아보지 못한 현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구체적인 전략으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살지 못한 삶‘을 탐색함으로써 우리는 두려움과 후회와 실망을 극복하고, 일상적인 자각 너머로 시야를 확장하며, 자기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 T. S. 앨리엇의 시처럼 “시작하였던 곳에 도착하여 비로소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인지하는 삶과 보이지 않는 힘이 조화를 이루면 '옳다'는 느낌, 여행 중에도 집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내면에만 있던 잠재력을 겉으로 드러낼 알맞은 기회를 만나 우선순위와 생활 방식을 재조정하게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천직을 찾아낸다든지 일이나 관계에서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는 식으로 말이다. '살지 못한 삶‘을 살펴봄으로써 사실은 기존의 방식에 흥미를 잃었고 한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향한 욕구도 넘어섰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당신의 발목을 잡는 성가시고 부정적인 생각과 습관적인 행동을 밀어낼 힘이 생길 것이다. '살지 못한 삶'이 무엇인지 알아봄으로써, 당신은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확신을 얻을 것이다.

-로버트 존슨 ․ 제리 룰,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1장 억눌려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그림자, 중에서


언제부턴가 연말 시상식을 보지 않게 되었다. 재작년에는 아이를 겨울에 낳고 신생아를 돌보느라 시상식을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작년 초엔 드라마 '그 해 우리는'과 '기상청 사람들'에 푹 빠져 아이들을 재우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벌써 1월 초가 되었으니 지난 12월은 작년이 되었다. 작년엔 연말시상식을 아예 보지 않았다. 자격증 수업의 과제를 해야 했고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TV와는 멀어졌다. 아이들 재우고 보았던 TV가 생각나질 않았다. 오로지 글을 쓰는 데 집중을 하였다. 참 신기하다. 연말 시상식을 보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다는 것이.


한 때는 무작정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할지 잘 몰라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다. 글들이 매우 추상적이고 난해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오로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심리학 이론을 배우니 심리학 이론에 빗대어 나의 삶에 대한 글을 쓰면 될 것 같았다. 처음엔 그것도 막연한 생각이었다. 심리학을 제대로 대학원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어서 과연 이게 맞을까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하는 고민들이 있었다. 대학원을 가기 위한 계획도 세워 보았지만 그것도 영 미덥지 않았다. 대학원을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려 하는데 등록금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아직은 현실적인 계획이 아니었다. 비용이 들지 않고 나를 계발할 수 있는 도구는 글쓰기뿐이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찾고자 하는 많은 분들을 보니 글쓰기는 마음의 회복을 돕고, 현실을 파악하여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 분명했다. 글쓰기로 모두가 전업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책을 내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글쓰기로 자신의 직업을 찾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다.


글쓰기를 계속해서 써 나가다 보면 나의 욕구와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 공간에서는 모두가 작가라 칭하고 인정해 주기 때문에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서로의 글을 읽고 응원해 줌으로써 공감과 이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토닥여주고 인정해줌으로써 나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글을 쓰는 우리 모두가 다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좋아요를 누르고 관심가는 작가에게 구독을 눌러주면 상대는 힘을 얻어 더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다. 나 또한 작가님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내가 말하는 창조적 고통이란 적극적인 수용이다. '고통받다'는 원래 어감상 '허용하다, 받아들이다'를 뜻한다.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왕궁 조신이 "왕 앞에 아뢰길 허하노라"라고 말할 때의 의미다. 따라서 창조적 고통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삶과 싸우기를 멈추고 긍정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창조적 고통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래 맞아!"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은 치유와 자기 이해하는 보상으로 이어진다. 삶의 진실을 객관성과 지성을 갖춘 눈으로 바라보고 정직하게 가늠할 수 있다면, 거기서 도망치려고만 했던 심리가 약해지면서 깨달음이 한층 가까워진다. 어느 순간에든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말할 수 있다면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존슨 ․ 제리 룰,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9장 분리된 삶을 하나로 통합하라, 중에서


잠재력은 '적극적인 수용'에서 온다. 살지 못한 삶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창조물이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실 속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부족하다고 탓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지지하면, 어려운 현실이나 힘든 시기도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 될 것이라고 믿는다.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삶의 방향을 발전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흘려 버리지 못해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나는 그 감정을 탓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모두 글 속에 담아냈다. 이런 모습도 나의 모습이었다고 인정했다. 이런 마음들을 글을 통해 쏟아내니, 함께 안타까워해 주고 토닥여주는 작가님들의 댓글로 인해서 상처받은 마음들이 회복이 됐다. 이젠 내 마음에도 새 살이 돋고 있다.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서 불행하다고 느꼈던 과거를 글로 승화시키다 보니 새로운 창조물들이 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있는 질문을 남기고자 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작가로서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란다. 많은 작가님들에게 영감이 되기를.


우리는 사회가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성공할 자격을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권력을 휘두른다. 역설과 신비가 가득한 우주에서 확실한 것들을 갈망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길 피하고 자신의 추측을 진리로 여긴다. '나쁜' 것을 떼어내어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이건 바다 건너에 있는 누군가 건 이웃에게 덮어씌우기가 더 쉽고, 내면의 '다른 존재' 자체를 두려워하는 편이 더 쉽다.

이어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

1. 내 여정의 다음 단계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 새로운 길을 탐색해도 좋다고 스스로 허락할 수 있는가?
3. 두려움이 어떻게 나를 역행적 태도 안에 가두고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존재 방식에 묶어두는가?
4. 고인 물 같은 인격 속에서 사는 데 만족하는, 아니면 여기서 더 상장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낄 준비가 되었는가?
5.'살지 못한 삶'의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기운을 불러낼 수 있는가?

'살지 못한 삶'을 사는 일은 오늘, 나 자신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스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인 길버트 머레이의 문장은 사뭇 감동적이다.
"더 고결하고 더 오래가는 것을 섬기며 살라. 인생무상의 비극이 마침내 당신을 덮칠 때, 당신이 삶을 바쳐 섬긴 그것만큼 은 죽지 않음을 알 수 있도록."

-로버트 존슨 ․ 제리 룰,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10장 온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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