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내향형인 '나' 설명서

책'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으로 본 변화를 위한 과제

옷과 속옷을 들고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녔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꿈에서 늘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니니. 벌거벗은 나는 벌거벗은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내 옷가지들을 들고 엘리베이터며 여러 빈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바로 입으면 될 것 같은데, 사람들이 오는 소리만 들리면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사람들이 오는 소리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꿈에서 깨고 나서도 꿈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불편하면 피하고 보는 습성이 있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내 이야기가 들리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더 이상 나에 대한 이해를 바라지 않게 된다. 그게 누구든. 그래서 난 포기가 빠르다. 어떤 틀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이렇게 해보라고 말하면 그 순간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다. 어떤 집단 속에 속하면 당연히 그 집단 속의 룰을 지켜야 되는 게 맞지만 그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더 이상 창조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그들의 언어를 써야만 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감명받을 수 있도록 긍정의 언어만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성장과 성찰의 기준은 무엇일까. 심리검사처럼 정해진 항목에 예 아니요, 혹은 점수로 체크를 해서 합산한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성찰과 성장을 객관적인 무엇으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은 어떠한 집단 속에 속해있지만, 그 집단에서 버림받지 않고 계속 함께 하기 위해서 진짜 내밀한 자신의 속마음은 숨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론 집단 속 사람들의 마음이 진짜일까 의심하기도 한다. 나 조차도 그들 속에서 진짜 내 마음을 말하지 못하는데 그들이라고 진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한 관심이 많고 생각의 흐름이 내면으로 향하는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편이다. 내 마음을 말했다가 그들이 실망할까 봐 혹은 오해할까 봐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본다. 그럼 내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하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아무래도 나는 내 생각이 강해서인지 집단 속에서는 내 이야기에 오해를 하거나 왜 저렇게 이야기하지? 하며 판단을 할지도 모른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에너지가 바깥으로 흐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더 많이 보고 신경을 쓸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상대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향인인 내겐 집단 속에 있는 것이 도전과도 같은 일이다. 1대 1의 만남은 좋아하지만 여럿이 있는 만남은 잘 선호하지 않는다. 성격이 비슷하다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구성원 사이에서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면 그것 또한 내겐 감정노동과도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가 뭉치고 아파온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1대 1 상담에서나 할 법한 것들로 여겨져 어느 순간 말을 멈추고 만다. 실수를 하게 되면 멘털이 나가버린다.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되어 버려 말할 기운을 잃어버린다. 내가 기운이 빠져버리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마냥 내가 피곤해서 그런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할 말을 잃어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마치 나는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면 그들에 대한 나의 관심도 자연스레 멀어져 버린다. 그래서 MBTI란 도구가 있는 걸까. 외향인은 내향인을 이해하기 어렵고 내향인도 외향인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오해하지 않을 테니. 힘들어도 내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면 노력해야지 별 수 있나. 불편한 것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개선해야 할 점을 알고 노력해 볼 수 있으니.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는 결국이다. 결국. 원치는 않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원치 않는 것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참아내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안달복달하는 것보단 조금은 힘들어도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낫다. 나 좀 봐 달라고 흔들어 깨우고 소리쳐도 상대가 움직일 마음이 없으면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 오히려 내 마음을 내려놓고 돌보는 편이 낫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테지만 내향형인 나는 억지로 좋은 척도 밝은 척도 못한다. 여러 사람 사이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방전되어 버리니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외성'을 개발해야 한다.


인간관계에 관심이 덜한 내향인에게 사회생활이란 일종의 정신노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인간은 남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생활이라는 게 과업 생산성(일을 얼마나 잘하는가)뿐만 아니라 관계적 생산성(조직, 집단에 얼마나 잘 융화되는가) 또한 중요하니까요. 비록 관계 맺기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사회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서라면 내 성격이 어떻든지 간에 남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최재훈,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


단순히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직접 만나 소통도 하길 원하는 나이기 때문에, 성격적인 면으로 나를 제자리에 놔둘 수만은 없다. 성격이 원래 이렇기 때문에 이해받아야 한다는 건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내향이지만 외성을 가진 나로 변화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내향과 외향은 관심사가 내면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의 차이일 뿐 내향이라고 해서, 인간관계에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억지로 외성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외향'의 모습을 노력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마인드 컬트롤을 통해 각각의 페르소나를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향인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에 호기심을 갖고 파고들기 때문에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나만의 세계관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게 됨으로써 인간관계에서의 문제들을 일방적인 소통으로 마무리 짓게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과 적절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눠봐야 한다. 다시 말해 내 생각만으로 마침표를 찍는 습관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향인의 깊은 생각이 독이 되지 않으려면 관계에서 내 머릿속 생각만으로 마침표를 찍는 습관과 이별해야 해요. 내 생각은 그저 내 생각일 뿐입니다. 내 머릿속에서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쉼표'를 찍고, 상대방과 직접 이야기 나누면서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 과정을 연습해나가야 합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직접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면, 내향인에게 유리한 소통 방식인 글쓰기를 활용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에요. 메일이나 손 편지, 문자, 카톡, SNS 등으로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거죠.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항상 상호작용인데, 이는 분명 쌍방향이 익숙하지 않은 내향인들에게 불리한 환경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의지와 용기를 발휘해서 내 마음의 소리를 꺼내놓고 상대방의 마음속 이야기를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내향인들의 속은 뭐든지 끝없이 담을 수 있는 요술 주머니가 아닙니다. 어떤 생각이든 매번 속으로 담아놓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펑'하고 터져버리게 돼요. 내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소통해서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오해와 의심들을 건져내는 과정, 즉 내 머릿속 쉼표를 거쳐 상대방과의 소통 속에서 마침표를 찍는 일이 필요하죠. 이 과정이 내향인 여러분의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조금 더 편안하게 이끌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최재훈,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


생각을 속으로 담아 놓기만 한다면 언젠가 '펑' 하고 터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와닿는다. 생각을 공유하기보다 내 머릿속에 담아 놓는 일이 많다 보니 밖으로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때가 있다. 그럴 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소통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의 늪에서 함께 허우적 댈 뿐이다. 나 또한 그런 관계를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통한 소통은 내향인에게 있어 가장 좋은 소통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떠오른다.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나면서,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혼자서도 괜찮고 혼자서 노는 것도 재미있으니 혼자서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고 함께 일상과 생각들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공유하고픈 욕구가 컸을 때는 어떻게든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상대가 나에게 깊이 관심이 있지 않으면 나는 그 관계가 불만족스러웠다. 더는 커피 한잔 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도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다. 구독자 수가 늘지 않고 좋아요 수도 늘지 않으니 내 이야기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인지 관심이 있긴 한 건지 잘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쓴 글의 개수가 100개 이상 되면서 알게 됐다. 내 글에 대한 관심을 얻기 위해선 먼저 다른 사람들의 글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에 하트를 누르게 되면서 점차 구독자 수가 늘어갔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를 향하던 글쓰기에서 상대를 위한 글쓰기를 고민하게 됐다.


내향인의 가장 큰 장점이 다양항 생각과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 나 또한 그 장점을 살려 나에게 집중해 꾸준히 글을 쓰게 됐다. 억지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해 좋은 글과 콘텐츠를 만들어 내면 될 것 같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다양한 생각들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소통의 방법을 알려주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 함께 나누는 것으로 공감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처럼 관계 혹은 소통에 고민이 있는 내향인이 있다면 글쓰기를 적극 추천해 줄 것이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