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행열차와 일반열차

콘서트가 끝이 나고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일반열차 다음에 급행열차가 온다고 한다. 일반열차가 들어오면서 급행을 타야 하나 고민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일반열차를 탔다.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다 타지 않았다. 일반열차 뒤에 올 급행열차를 타려던 것이었다. 열차가 출발하고 잠시 후회했다. 급행열차가 늦게 오는지 알고 일반열차를 탔는데 한 정거장 가니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고 출발한단다.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정거장 수만큼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도착하는 시간은 몇 분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멈추는 정거장 수가 적고 많고의 차이일 수도 있다. 멈추는 정거장 수가 적어 도착예정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해 뭔가 이득이 되는 기분일 것이다. 마치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사려던 것이 할인을 해서 예상했던 비용보다 적게 들어 득템 한 기분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 몇 천 원 차이 나지 않을 텐데 우리는 적은 차이여도 이득을 봤다고 생각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웬걸. 뒤에 급행열차가 오고 있단다. 나는 고민도 없이 뒤에 오는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다음 역에서 내렸다.


방금 전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몇 분 차이 안 날 거야. 조금 늦게 도착하면 어때'하며 괜찮다고 합리화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겠다고 내려버렸는지. 콘서트 장이 있는 역으로 가는 열차를 탔을 땐 급행열차를 타게 됐었고, 몇 정거장 서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에 정거장마다 서는 일반열차를 타니 엄청 느리게 느껴지긴 했다.


한국인의 특성상 나 또한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빠르던 느리던 가려던 곳에 잘 도착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일반열차를 운행하는 이유는 각 정거장에 내리는 승객들이 있기 때문이고 급행열차는 빨리 가길 원하는 승객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인생에서도 느리게 가는 것도 빨리 가야 하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어서 일 테니.


급행열차를 타고 환승해야 할 곳에 왔지만 내가 타야 할 열차는 정작 서는 역이 다른 열차들보다 한참 뒤에 있었다. 밤시간이라 더 빨리 가보려 급행열차를 탔어도 다시 환승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빨리 도착했다 해서 바로 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르고, 걷는 사람도 뛰는 사람도 있듯이 각자의 인생의 속도는 다른 것이다. 빨리 가고 싶다고 급하게 마음먹으면, 음식을 급하게 먹어 체하는 것처럼 원치 않던 장애물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충분히 알아보고 계획하여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듯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도 괜찮다. 걷다가 확신이 생기면 뛰어가도 된다. 걷거나 뛰다가도 잠시 멈추어서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가도 된다. 그러니 이제 곧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해서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마음만 앞선다면 잠시 멈춰 나를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아도 괜찮다. 빨리 가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을 만나 해결하지 못해 혼자 끙끙대다 포기해 버리는 것보단 천천히 가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길을 잘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


가야 할 곳에 가지 않는 열차들을 보내며 이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타야 할 열차가 왔다.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열차 안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앉을 곳이 많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젠 집으로 가는 열차를 탔으니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