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평

우리가 사라진다면

네오 소라, <happyend>

by 조연지

모든 것에 순서가 있을까? 점을 이어 무언가를 그려내는 도안처럼 출제자의 의도를 따른다면 점에도 순서가 필요할 것이다. 점과 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다음 지점이 어디인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점과 점을 잇기만 해도 하나의 선이 탄생한다. 시작점은 주어졌을지 몰라도 자신의 의지로 다음 점을 지정해 나아간 것이다. 하나의 나아감이 미래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하나의 선이 다음 점을 결정한다는 착각에 점 잇기를 아주 신중히 할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른다. 미래가 다가온다. 그러나 미래는 언제나 오지 않는 시간이기에 미래라고 부른다. 다가오고 있거나 다가오지 않음을 결정하는 것은 나아갈 것인지 머무를 것인지 택하는 문제가 된다.

어쨌거나 하나의 선은 분명 다음 점에 영향을 준다. <happyend>에는 많은 점들을 헤쳐나가는 청년들이 등장한다. 저마다의 도안을 가지고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아갈 길을 정한다. ‘우리’는 흩어져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영원히 함께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점점 과거의 일부가 되는 것을 바라봐야 한다. 코우는 나아가는 방식으로, 유타는 머무르는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며 갈등을 겪는다. 코우는 미래를 긍정의 모습으로 기대하고 유타는 미래를 부정의 모습으로 외면한다.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


유타와 친구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에 방문한다.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으로 중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출입문을 지키고 서 있다. 중국인 아버지를 둔 밍이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클럽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중국어로 부탁한다. 이에 실패하자 미국에서 온 톰이 영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는 사이 유타와 코우는 뒷문을 발견하고 신분을 위장해 몰래 클럽 안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DJ의 음악에 심취해 경찰의 해산요청에도 음악을 들으며 끝까지 무대 앞을 지킨다.

일본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언어, 피부색과 눈동자, 머리카락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인 일본이 영화의 배경이다. 유타, 코우, 아타, 밍, 톰 중에서 유타와 아타만이 일본에서 인정한 ‘진정한’ 일본인이며 재일한국인 코우는 경찰을 마주칠 때마다 특별영주권을 보여줄 것을 요청받는다. 소지의 의무가 없다고 말해도 경찰은 계속해서 그를 압박한다. 영화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는 부연을 달지만 현존하는 사회문제, 혐오정치를 야기한다.

밍과 아타, 톰이 기계를 조작해 정전이 되고 유타와 코우가 경찰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서둘러 뛰며 그들은 학교로 돌아간다. 끝까지 무대를 지킨 유타와 코우에게 DJ가 건네준 음악파일을 들어야 한다. 이들은 퇴근하는 교장과 그를 떠받드는 선생님, 순찰을 도는 경비의 눈을 피해 그들만의 음악동아리방으로 향한다. 동아리방에 도착한 이들은 스탠드를 켜놓고 능숙하게 음악기기를 조작한다. 밤새 함께 음악의 리듬을 느낀다. 이들에게 음악동아리방은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곳이자 감시와 추격이 없는 공간이다.

안전을 명목으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위협이 된다. ‘안전’은 보호받아야 할 무언가가 있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개 재산에 해당되고 재산이 없는 이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자들로 분류된다. 위협하는 자들로 낙인찍힌 이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죄다 외국인이네’라는 경찰의 말에는 그들을 일컬어 낮잡아보는 태도가 담겨 있다.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외부 세계에서 유타, 코우, 아타, 밍, 톰은 서로를 안전한 곳으로 구출한다. 이들에 해당하는 다섯 점을 이어 그릴 때 음악동아리방이 완성된다. 서로를 보호하는 이 방은 온기와 소리. 빛으로 생기를 갖춘다.


키토총리는 사회의 안전을 외치며 총선에 박차를 가한다. 그가 외치는 안전은 압력을 받고 있는 재외국민 혹은 영주권을 취득했어도 자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한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키토의 발언 도중 지진경보가 울리고 지진과 함께 그는 누군가 던진 도시락을 맞는다. 누군가 ‘저 귀한 밥을…’ 말하지만 도시락을 던진 이에게는 분노를 표시하는 것이 밥 한 끼보다 중요한 것이다. 키토가 얼굴에 붙은 김을 떼어내는 장면만 나올 뿐 도시락을 던진 이가 누구인지 어떻게 되었는지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이 사건의 다양한 측면을 비춘다. 중심축인 정치적 갈래에 결말은 없다. 존재하는 방식에 정답 없음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수직과 수평의 공간



영화는 각기 다른 지점에 위치한 붉은 점이 꺼졌다 켜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의 녹화 불빛처럼 보이는 인공의 빛은 곧이어 건물과 크레인의 불빛임이 밝혀진다. 앵글은 높은 빌딩들을 비추다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진다. 이 영화는 빌딩 아래의 이야기다. 단속과 감시가 요구되는 클럽 앞에 서있는 인물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때 디제잉 기계 앞에 나란히 서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수평적 공간에 서 있다.


교장은 감시와 처벌을 위한 시스템 ‘파놉티’를 교내에 도입한다.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교도소 판옵티콘 모형을 가져온 설정으로 학생들은 감시자의 모습은 볼 수 없으나 자신들의 모든 것을 감시당한다. 곳곳에 설치되는 카메라는 학생들의 머리 위에 설치된다. 교칙 위반 시 즉시 벌점이 부과되며 건물 외벽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벌점과 사유가 공개된다.

교장의 이러한 시스템 도입은 자신의 자동차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우뚝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명브랜드 차는 교장의 재산, 권력과 일치한다. 그는 자동차 애호가다. 유타의 발상으로 코우와 유타는 네 바퀴가 땅에 닿아 있어야 할 차를 일으켜 세워 수직의 모습으로 서게 만든다. 이들이 교장의 차를 내려다보는 옥상 또한 수직적 측면에서 두 사람이 교장을 대상으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상하관계는 엎치락뒤치락한다.

교장은 용의자를 찾기 위해 사건 현장을 그대로 두지만 곧이어 지진이 발생하고 교장의 차가 뒤집힌다. 책상 아래에서 몸을 일으킨 학생들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전복적 상황에 희열을 표한다. 교장은 자신이 당한 굴욕을 피의자를 찾아내며 해소하려 한다.


불균하게 반짝이는 붉은 점이나 공중에 떠있는 원형의 붉은 문자, ‘파놉티’는 수직적 위계질서와 기계의 눈, 감시를 암시한다. 반면 코우와 유타, 아타와 밍, 톰이 누워 잠든 모습은 수평의 모습이며 이들이 모여 하는 젠가는 쌓아 올린 것을 빼고 무너뜨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수평과 수직은 서로 대립하고 두 선분의 충돌이 갈등을 만든다. 다섯 명의 꿈이 담긴 ‘클럽’에 내진설계아파트 건축이 예정되며 음악장비가 ‘클럽’ 바깥으로 추방된다. 내진설계란 ‘안전’을 더욱더 공고히 하는 건축이다. 무너짐을 향하는 젠가와 반대의 속성이다.


화재의 위험이 있다며 음악동아리방의 기기들을 회수당한 다섯 사람은 기기들을 훔쳐 ‘클럽’으로 빼돌리지만 서브우퍼는 기기실에서 가지고 나오지 못한다. 음악동아리방은 빛과 소리를 잃는다. 다섯이 가진 도안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기회를 노려 유타는 코우와 함께 서브우퍼를 가지고 나온다. 두 사람은 무거운 스피커를 함께 들고 길을 오르내리며 ‘클럽’까지 운반하려 한다. 수직의 길과 수평의 길을 함께하는 건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함께였던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코우는 세상일엔 관심 없고 음악만 생각하는 유타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유타는 소리친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화의 중심축인 정치적 서사가 이들의 갈등을 촉발한다. 말다툼 이후에도 이들은 서브우퍼를 함께 옮기지만 순찰 중이던 경찰을 만나 코우는 집으로 향한다. 경찰이 그에게 특별영주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서브우퍼를 혼자 밀어 옮기는 유타의 상반신을 가까이서 보여준다. 운반차를 미는 그의 살이 진동한다. 영화는 지진뿐 아니라 인물의 내면에서 이는 흔들림에 집중한다. ‘클럽’에 도착한 그는 이제 화면의 중앙에 자리한다. 아파트 공사 시작을 알리는 부착물에 비해 왜소한 유타가 서 있다. 한쪽에는 친구들과 함께 옮겨놓은 기기들이 제멋대로 놓여있다.

유타는 혼자서 ‘클럽’을 상실한다. 그는 버려진 기기들을 처음으로 발견한 이다. 꿈의 공간이 폐기되었다. 유타는 현실과 가장 유리된 인물이었다. 졸업과 이별을 어렴풋이 가정해 오던 유타는 상실을 경험함과 동시에 현실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최선과 차선



키토총리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린다. 친구들과 카페에 있던 코우는 같은 반 후미를 발견한다. 그는 아타가 ‘경찰이나 될까? 어느 시대든 쟤들(유타와 코우)처럼 말썽인 사람은 있을 테니까’라고 농담할 때 큰 목소리로 ‘경찰은 국가에 복종하는 개’라고 말한 인물이다. 이후 코우는 후미와 가까워지고 함께 집회에도 참여한다. 지진으로 인해 경찰이 폭력 진압을 하고 후미와 코우, 오카다 선생님이 집회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교장실로 불려 간다. 후미와 코우는 자진하여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하지만 오카다 선생님은 자신이 선동했다고 주장하며 해임을 맞이한다. 오카다는 두 개의 미래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다음 점을 결정했다. 새 담임교사는 오카다와 달리 수업 시작 전 지침에 따라 기립과 경례, 착석의 절차를 거친다.


코우와 후미가 가까워지면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유타와 코우는 거리가 멀어진다. 두 사람의 갈등은 ‘클럽’에서 조짐을 보였다. 여자 친구가 생긴 걸 축하한다는 유타에게 코우는 걱정의 말을 던진다. 이때 밍과 아타가 2층에 설치 중인 전등을 놓치고 유타와 코우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옥상에서 하나의 담뱃대를 번갈아 피우던 두 사람이 어느새 하나의 담뱃갑에서 두 개비를 꺼내 따로 피운다. 집회에 참여한 후로 책상이 흔들릴 만큼 다리를 떠는 코우를 보며 유타는 다른 학생에게 자신과 자리를 바꾸자고 말한다.


교실에 자위대가 들어와 수업을 진행하는 날 ‘진정한’ 일본인이 아닌 학생들은 번호가 불린다. 이들은 수업을 받을 자격을 박탈당한다. 이때 코우는 번호가 불리나 밍과 톰은 번호 불리지 않는다. 각각 한국, 중국, 미국을 암시하는 인물이며 일본이 이 나라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여기는지 드러난다. 담임은 나가지 않으면 벌점을 부과하겠다고 하나 복도로 나간 이들은 ‘파놉티’에 의해 수업불참으로 벌점이 부여된다. 시스템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파놉티’의 오류는 야구부 주장이 담배를 피우는 유타와 코우에게 훈계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주장은 떨어진 꽁초를 주웠을 뿐인데 교내흡연으로 벌점이 부과되고 깜짝 놀라 바닥에 내려놓는 모습 또한 쓰레기 투기로 벌점이 또 한 번 부과된다.

사회의 축소판인 교내에서 후미와 코우를 비롯한 학생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체제를 바꿔야 함을 느낀다. 오류가 있다면 수정해야 한다. 이들은 ‘파놉티’ 해제를 걸고 교장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인다. 지원금으로 수업을 받고 있는 코우는 동참하지 않는다. 일전의 차량사건 당시 교장은 그에게 대학등록추천서를 빌미로 협박을 하기도 했다.

교장은 자신의 수발을 드는 선생에게 연락해 창문으로 도시락을 받는다. 문이 아닌 곳으로 드나드는 행위는 정당하지 않은 길임을 의미한다. 학생들의 몫까지 초밥이 잔뜩 들어있는 보자기를 열며 교장은 같이 먹을 것을 권한다. 교장이 권하는 밥을 받아먹는다면 요구의 엄격성이 흐려진다. 결연했던 이들 중 점차 포기를 선언하는 이들이 등장할 때 누군가 복도 쪽으로 난 문을 두드린다. 헬멧을 쓴 코우가 파티에서 남은 음식들을 싸 왔다. 학생들은 김밥을 나눠 먹으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이때 코우와 후미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오카다 선생님이 부르던 노래로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의 노래 <쿠소쿠라에> 1절이다. 이 노래는 각 절마다 학생, 노동자, 노인, 예술가 등 사회에서 비껴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사회정치를 폭로하는 가사다.

초밥과 김밥이 대조를 보이고 처음부터 자리를 지킨 후미와 차선을 택한 코우의 연대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오카바야시 노부야스 <쿠소쿠라에>


끝과 시작


교장은 이듬해 ‘파놉티’를 해제할 것을 발표하면서 조건을 건다. 자신의 차를 세워둔 범인이 누구인지 자백하라는 것이다. 코우가 갈등하는 사이 ‘파놉티’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시스템 존속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일어선다. 영화는 학생들 모두 같은 뜻을 가지지 않는 점을 비추며 이것이 정치적임을 한 번 더 시사한다. 이때 유타가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전부 제가 혼자서 재미로 한 것입니다.’ 유타는 더 이상 거짓말로 빠져나가거나 꼼수를 쓰지 않는다. 코우가 겪어온 현실의 압력들에 유타 스스로, 혼자서 뛰어드는 장면이다. 그는 이제 미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목소리를 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학교를 졸업하며 코우는 유타에게 빚을 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우의 옆에서 그가 겪는 차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유타 또한 코우에게 많은 빚을 졌을 것이다. 유타는 퇴학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코우만 교복을 입고 있다. 두 사람은 늘 함께 하교하던 다리 끝에서 작별한다. 영화의 초반과 달리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져 있다. 가로등은 두 사람을 나누듯 가운데 서 있고 유타가 먼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코우에게 장난친다. 이 순간 비둘기가 날고 몇 분간 화면이 정지된다. 영원하지 않은 순간임을 유타는 알고 있다. 그는 인물들을 잇는 데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며 그러므로 상실의 미래만 지닌 인물이었다. 유타는 모두 함께인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반대 계단으로 내려간다. 서로 다른 지점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작별은 곧 나아감이다. 다음 점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한 번 접촉한 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선들은 그림 전체를 만들어 나간다. 영화는 다섯 인물이 펴내는 이야기를 통해 모두에게 다른 삶이 주어지고 출신이나 환경이 다르더라도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도안을 채점하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자세로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 서 있는지 따위를 평가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백점을 못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둥 국가의 말 잘 듣는 국민이 되기를 바라는 유서 깊은 지배 권력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미지의 그림을 그려 나는 것이 좋다. 평가자의 기준을 공고히 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선 혹은 차선을 택하며, 사랑하고 기대하며 나아가면 된다. 모두에게 고유한 현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도안을 평가하는 이들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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