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by 안휘경, 제시카 체라시
현대미술 애호가인 필자조차, 종종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예술 작품'을 마주하곤 한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작가의 의도 등을 이해하고 나면 작품을 새로이 마주할 수 있고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휘경과 제시카 테라시의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는 뛰어난 현대미술 입문서이다. 두 저자는 사람들이 현대미술 작품들을 접하며,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자주 던지는 26가지의 질문을 A부터 Z까지로 정리하였다.
문자그대로 현대미술 from A to Z의 도서이다. "Art, What For? What's all this about?"이라는 첫장의 질문부터, "Zoning Out Why bother?"의 마지막 질문까지 이어진다. 각 장은 독립적으로 서술되어있는 듯하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유기적인 연결이 만연하다.
서문에서 저자가 한 말에 격하게 동의할 수 있었다.
최신 과학기술이나 예술영화, 차기 국회의원 선거처럼 복잡한 주제에 대해서는 평소 친구들과 가볍게 얘기하면서 왜 현대미술에 대해서만은 유독 두려움이 앞서는 걸까?
물론 이 분야는 전문가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녁 모임에서 대화 주제로 삼아 편안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안휘경, 제시카 체라시,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서문 중
정말 그렇다. 사실 과학기술, 영화, 정치 등 모든 분야는 조금만 깊이 들어간다면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에 관한 대화를 줄곧 나눈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에 관하여서는? 저녁 식사를 할 때에 캠벨 수프를 뜯을지언정,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나열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정말 주옥같은 구절들이 많이 등장하여, 책을 읽는 내내 밑줄을 남발하였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책이고 어렵게 서술되어있지도 않아서 빠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현대미술을 관찰하는 데에 있어서 통찰력이 현저히 성장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왜 현대미술을 공부해야 할까?
사실 현대미술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현대미술을 영어로 쓰자면 Contemporary Art, 즉 동시대 예술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가 그려질 때에는, 라스코 동굴 벽화가 동시대 예술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다빈치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현대미술이었다.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만큼 파격적인 그림이 있었을까? 하지만 50년만 지나면 뒤샹의 '샘'이 등장한다. 뒤샹의 샘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전시실에서 퇴출당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 돌아볼 때 그것은 혁명적인 예술 작품이었음이 공공연해졌다.
사실 마네의 '사실주의' 회화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은 오늘날에도 의아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관심 없는 분야의,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행위에 드는 의아함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존 예술계는 그러한 전위예술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무시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필자는 이는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에 흥미를 돋구기는커녕 꺼져가는 불씨를 짓밟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우선 사람들의 '의아함'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러는 동시에 작품에 관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호소'하며, 난해한 것만 같은 현대미술 작품들은 사실 그저 사회상의 반영일 뿐이었음을 해설한다.
현대미술을 왜 공부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여기서 도출된다. 저자의 말마따나, "현대미술은 우리의 현재를 정확히 보여준다."
라스코 벽화의 그림은 선사시대의 생활상, 그들이 좇거나 숭배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네의 그림은 당시 기득권층의 위선과 부패를 고발했다. 뒤샹을 비롯한 다다이즘 작가들은 역사상 처음 등장했던 범지구적 전쟁을 경험하며 문화 자체에 대한 반발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를 제작하며 앞으로 도래할 디지털 시대를 예고하였다.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숨바꼭질과도 같다. 숨어 있는 것은 시대의 민낯이고 술래는 감상자이다. 꼭꼭 숨은 작품의 의미를 찾아보자. 어려울 것만 같았던 작품들도, 머리카락이 보일지는 모르는 법이다.
책에 언급된 곰브리치의 말과, 저자의 서술을 연결해 보며 마무리 짓고 싶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E. H. Gombrich 곰브리치
모든 시대의 예술가는 그 당시 시대와 문화의 산물이다.
-안휘경, 제시카 체라시,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 17쪽(전자책 기준)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다. 그러한 예술가는 사회의 산물이다.
현대미술과 소통해보고 싶은 모두에게 추천해보고 싶다. 이미 흥미가 있어왔다면,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읽힐 것이 분명하다. 현대미술에 회의적인 사람들에게도 눈 꼭 감고 한 번만 읽어봐 주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