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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Jan 18. 2021

손을 기억하며

<손의 기억> @ 세화미술관

 세화미술관에서 <손의 기억>을 개최하였다. 현대미술의 흐름이 가시적인 창작으로부터 비가시적인 '관념'과 '개념'들로 향하다보니, 전통적인 예술 창작 행위의 주체였던 '손'이 도외시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어 왔다. 세화미술관은 전통적 예술의 주체인 '손'의 중요성을 되새기고자 이번 전시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본 전시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의 작업에는 '손'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각자의 예술성을 구현해내는 방식은 상이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모두 수공예로 구현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감상자들은 그들의 작품과 행위에 교감하며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치유의 시간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본 전시의 소개글은 전시장의 작품해설을 기반으로 하여 필자의 의견을 섞어 작성한 것입니다.


조소희



 조소희 작가는 거대한 그물코를 뜬다. 그물코는 실재하는 동시에 비어있다. 작가의 작품 해설을 언급하자면 그물코를 뜨는 행위는 곧 '공백을 짜는 일'이다.



 그물코를 짠다. 그런데 그물코를 짜는 것은, 그물을 만들기 위함일까 혹은 공백을 만들기 위함일까? 공백은 경계를 만들고 경계는 다시 그물을 만든다. 낮이 있어야 밤이 있고, 밤이 있어야 낮이 있듯이, 공백과 경계는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실은 가볍고 유연하다. 작가는 이러한 실의 특성을 살려서 작품을 창작하였다고 한다.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의 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짜는 행위의 핵심은 무목적성에 있다. 이것이 드러내는 것은 단지 시간이라는 비가시적 실재가 최소한의 형태로 물질화되는 것이다.


 실은 그것의 연속성으로 인하여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시간의 표상을 나타내는 실의 또다른 특성인 '유연함'과 '가벼움'에 집중하여, 비가시적 개념인 시간을 가시적인 사물인 '그물코'로 구현한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 자신에게 시간과 일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암시한다. 작품의 제목은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인데, 벽면에 쓰인 글은 중국 작가 린위탕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진성탄이 쓴 '행복한 한 때에 관한 33절' 문구를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글은 띄어쓰기가 없이 쓰여 있는데, 작가는 띄어쓰기가 필요한 부분에 핀을 박고 실을 걸어두었다.





최수정



 최수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달빛이 비추는 땅'이라는 주제로 <초상 풍경> 시리즈를 주요 작업으로서 선보인다. '초상'은 보통 근경을 이야기하고, '풍경'은 보통 원경을 이야기한다. 대조되는 개념인 '초상'과 '풍경'을 한 작품 속에서 선보이고자 한 작가는 늘 회화의 평면 안에서 공존하는 대조적인 것들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한다.



 <초상 풍경> 시리즈의 각각의 작품들은 동굴의 표피 이미지이다.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는 싸이키델릭한 색상과 함께 캔버스에 박혀 있는 실의 흔적이 인상적이었다.



 그림들은 천장에 실로 매달려 있었는데, 이러한 설치 작업은 감상자로 하여금 그림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입체감 있는 동굴의 모습을 감상자의 머릿속에 구상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달빛이 비추는 땅'이라는 주제와 어울리게, 작품의 조명 역시 중요한 요소로써 작용하였다. 조명은 각 캔버스마다 하나씩, 그림에 달빛이 비추어지는 것처럼 설치되었다.





정문열



 정문열 작가는 과학자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적 지식과 인문학적 감수성을 융합하여 작품을 창작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은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 '소리의 나무'이었다.



 하나의 작품은 수많은 광섬유 다발들을 포함한다. 광섬유 하나하나가 발현하는 빛의 색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작품은 감상자가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여 감상자에게 황홀한 분위기를 경험하게끔 한다. 통로의 천장에 광섬유가 매달려 있는 형식으로 작품을 구현하였는데, 통로의 양측 벽에 거울을 설치함으로써 끝없는 공간감을 선사한다.



 본 작품은,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이 신성시하는 '소리의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였다고 한다. 영화 "아바타"를 감상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리의 나무'라는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무엇을 구현해내려 했는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이 작품을 접하게 되면 첫눈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작품을 체험하며, 잠깐이나마 환상 속을 거니는 착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김순임



 필자에게 김순임 작가의 작품은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작품이었다. 김순임 작가는 자신을 공간과 공간, 공간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지역, 사람과 사람 등을 연결하는 '직조자'로 상정한다.



 그의 작품은 자연 섬유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데, 섬유 소재를 이리 저리 구겨 제작한 '코튼 드로잉'에서는 저자의 노고가 저릿하게 전달되었다. 천이 구겨져 얼굴의 모습으로 자리잡아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작가의 장인정신은 코튼 드로잉을 넘어서서, '코튼 조각'이자 설치미술 작품이었던 <비둘기 소년>에서 가장 돋보이는 듯하였다.



 작가가 사용하는 소재가 광목천, 펠트, 솜, 실과 같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소재라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직조자로서 단순히 서로 다른 두 객체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서서, 따뜻함 부여한다.




최성임



 마지막으로 최성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최성임 작가는 "시간을 재료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하고 약한 것들을 모아 부피를 만들고 거친 표피를 감싸거나 공간의 일부를 점유하는 등의 설치 작업"을 주로 해왔다고 한다.



 전시장에 있는 많은 기둥들은 각각이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전체가 식물과도 같은 하나로 작용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달'이라는 부분이었는데. 총 여섯 개의 서로 다른 '달' 기둥이 있었다. 하나의 '달'은 작품의 상단에는 스테인레스 원판이, 작품의 하단에는 황동 원판이 자리잡고 있고 그 사이는 우레탄 비닐들이 연결하고 있다.



 우레탄 비닐의 색상 구성은 작품별로 상이했다. 어떤 것은 투명했고, 어떤 것은 형광색이었으며, 어떤 것은 투명하지만 조금 어두운 색상이었다.



 필자는 이 작품이 달과 달의 형상을 나타낸 것만 같다고 생각하였다. 바닥에 있는 황동 원판은 실제 달이다. 우레탄 비닐 중 형광색은 달빛이다. 위의 스테인레스 원판에는 모든 부분이 금빛이 나지 않고, 형광색의 우레탄 비닐이 있는 부분 안쪽만이 금빛이 난다. 달은 언제나 동그랗지만, 빛이 반사되어 지구에서 보이는 부분이 달라짐에 따라 달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듯이 말이다.



 설치미술 작품 외에도 작가의 드로잉도 두 점 걸려 있었다.



 전시실을 나오고 기념품샵에도 작가의 다른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사소한' 것들로 부피를 만들어나가는 최성임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흥미로웠다. 작품을 감상하다가도, 재료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게 되고, 그 재료로 작가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또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반복해서 가질 수 있었다.





<손의 기억>
*위치: 세화미술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관람료 없음
*예약 불필요, 전시장 내 인원 제한
*전시기간: 2020. 09. 16. - 2021. 02. 28.
*사진촬영: 가능, 단 플래쉬, 동영상 불가능
*물품보관함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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