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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Jan 29. 2021

슬프고 차가운 웃음을 지어 보며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예술의전당에서 '중국 현대미술 4대천왕' 중 한 명, 그리고 '중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유에민쥔(岳敏君 | Yue Minjun)의 개인전이 진행중이다.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격변기 상황 속에서 성장하며, 자국인 중국에, 그리고 중국을 넘어서서 현대사회에 차가운 웃음을 선보인 유에민쥔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웃음의 의미


유에민쥔은 중국 전위예술(아방가르드)의 중요한 한 축인 '냉소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냉소적 사실주의'가 무엇인가에 관하여서는, 유에민쥔의 한 작품을 접하게 되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유에민쥔 - <처형>


바로 <처형>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유에민쥔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에 낙찰되며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를 갱신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본 작품은 이번 전시에 원화로는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꼭 짚어 보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옷도 입지 않은 채로 환하게 웃으며 나란히 서 있는 좌측의 네 인물이다. 다음은 총을 쥔 자세로 서 있는 우측의 네 인물이다. 마지막은 감상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입을 쫙 벌린 채로 그저 웃고 있는 한 인물이다. 이들은 무엇을 하는 것이며, 작가는 무엇을 전달하려 했던 것일까?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유에민쥔이 성장했던 시대적 배경과, 유에민쥔이 패러디했던 원작,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에민쥔은 1962년생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되었다는 점을 떠올리자면, 그의 유년시절이 얼마나 혼돈 속의 상황이었을지는 설명이 더 필요 없을 듯하다. 더욱이 1989년에는 천안문사태가 발생했고, 이후 중국은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체계로부터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체계로 전향하게 된다.


 문화대혁명은 처첨한 결과를 가져왔고, 중국 대중들의 민주주의에의 열망이었던 천안문에서의 민주화 운동 역시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는 이상을 좇는 것만 같았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역시 실패했고, 유에민쥔은 돈과 권력에 무너질수 밖에 없었던 중국 사회에 낙담한다. 아니 '해탈했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이제 고야의 작품을 살펴보자.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점령하고 죄 없는 양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던 장면을 포착한 것이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공포에 차있고, 어떤 이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죽어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상기시킨다.


 반면 유에민쥔의 <처형>은 조금 많이 다르다. 작품의 구도와 인물들의 자세 등을 고려하자면, 이 작품이 고야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고야의 작품 속 인물들과는 달리, 유에민쥔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다.


 정치적 이념, 사회적 정의, 종교적 신앙 등을 비롯한 모든 사상의 자유가 금기시되었던 시대에,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짓밟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며 그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인물들을 그림으로써 유에민쥔은 "무지하고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인 군중"의 모습을 그렸다.


 웃고 있는 좌측의 인물 그룹은 그러한 대중을 대표한다. 총을 쥔 자세를 하는 이들은 자본과 권력일 것이다. 그저 웃고 있는 한 사람은, 이러한 상황을 방관만 하고 있는 또다른 대중을 의미할 것이다.


 한 가지더, 유에민쥔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예상했을 수 있겠지만, 이 인물의 얼굴은 유에민쥔 작가 본인의 초상이다. 유에민쥔은 앞서 이야기한 "무지하고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인 군중"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의 자화상"이라고 칭한다. 유에민쥔은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대중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냉소를 날리는 것이다.


유에민쥔 - <사막>


 유에민쥔의 작품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 등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앞에서 유에민쥔은 그저 환하게 웃고있다. 위의 작품만 하여도 그렇다. 레닌과 마르크스 그리고 엥겔스로 보이는 듯한 인물들의 동상이 사막에 세워져 있다. 건조한 이 땅에서 그들은 이상을 외쳤겠지만, 유에민쥔의 답변은 실없는 웃음 뿐이다.


유에민쥔 - <잔디에서 뒹굴다>, <외딴 섬>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유에민쥔 - <방관자>, <AD 3009>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내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웃음과 죽음


 유에민쥔의 그림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죽음'이다. 노골적인 해골을 그리며, 관객들 앞에 죽음을 떠밀어준다.


유에민쥔 - <기사회생>, <눈빛>



 유에민쥔이 죽음을 다룬 이유는 아주 유명한 두 라틴어 문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메멘토 모리' 그리고, 그러니 '카르페 디엠'.


 삶과 죽음은 항상 함께 존재한다. 삶이 있다는 것은 죽음이 있다는 것이며, 죽음이 있다는 것은 삶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삶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죽음이 두렵다는 이유로 삶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일 테다. 그러므로 순간을 살자, 카르페 디엠!


유에민쥔 - <정물 시리즈 1>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작품 제목이 <정물 시리즈1>인데, 탁상 위에 올려진 세 '정물'은 수박과 머리 그리고 해골이다. 수박은 누가 보아도 '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해골 역시 '정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해골에 살점이 붙어 있는 것인 머리는 '정물'이라고 할 수 있나?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하였다.


유에민쥔 - <웃음은 위대하고 죽음은 영광이다>


 유에민쥔은, 냉소적 사실주의 작가이지만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키스 해링 못지 않게 강렬한 색채를 선보이는 팝아트 양식이다. 친근한 표현 방식으로 강렬한 소재를 드러냄에서 발현되는 느낌은 새로운 것이었다. 


유에민쥔 - <연인2>, <연인1>





3차원 냉소


 유에민쥔이 조각 작업까지 하고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된 사실이었다. 회화 작품들은 이전부터 꽤 많이 접했었는데, 조각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유에민쥔 - <웃음이 웃음이 아니다>


 조각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바는 그림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다만, 그림에서는 생생하지만은 못했던 작품의 질감이 조각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는 너무나도 실감나게 전달되었다.


유에민쥔 - <웃음이 웃음이 아니다>


 작가의 냉소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유에민쥔 - <짐승 같은 인간>


 <짐승 같은 인간>이라는, 12개의 조각상들이 하나의 그룹으로서 작품을 이루는 것도 있었다. 조각의 '전면'에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하지만 조각의 '후면'에는 코뿔소, 개, 사자, 고양이(?) 등의 동물의 얼굴이 있다. 그렇지만, 사람의 얼굴이 '전면'이라고 할 수 있나? 어떤 것이 그의 진정한 모습일까? 정말 '짐승 같은 인간'이다.


유에민쥔 - <짐승 같은 인간>, 파노라마이다.





새로운 이미지


유에민쥔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그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유에민쥔 - <부상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부상화>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을 패러디한 것이다. 작품 제목대로 인물의 얼굴에 부상화 꽃을 올려두고, 그의 표현 방식인 '함박웃음'을 부여한다. 원작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느낌을 내뿜는다.


유에민쥔 - <콜라주>


 또 이 작품과 같이, 다른 유명인들의 형상을 자신의 작품에 끌어오기도 했다. 이 작품은 마르크스의 초상에 자신의 얼굴을 집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유에민쥔 - <푸른 바다>


 그리고 이렇게 유명한 인물이나 캐릭터의 얼굴을 물 위에 띄어 놓은 것도 있었는데, 가장 좌측에는 피카소 화풍의 그림이 놓여 있다. 그 다음에는 레닌이, 그 다음에는 도라에몽이 놓여 있다. 그 다음 인물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가장 오른쪽에는 유에민쥔 본인이 놓여 있다.


유에민쥔 - <하늘 가득히 퍼지다>,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 <백합>


 뿐만 아니라 유에민쥔은 노장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점이 그림에서도 느껴졌다.


유에민쥔 - <중첩 시리즈 2>, <중첩 시리즈 7>, <총커유런 8>



 중첩된 모습의 인물들의 그림도 있었다.


 전시실 중간에 다큐멘터리 상영실이 있다. 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보았는데, 확실히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고 작품들을 다시 한 번 감상하면 새로운 감상을 얻을 수 있는 듯하다.


 본격적인 전시실을 지나 오면 특별 전시실을 마주할 수 있는데, 구매 가능한 판화, 세라믹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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