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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Feb 10. 2021

이토록 차가운 이타주의

『효율적 이타주의자』 by 피터 싱어

『효율적 이타주의자』를 읽게 된 것은,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것이었다. 최근 들어 동물권 및 생명권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동물권'을 공부해보고자 한다면 가장 처음 접할 수 있는 책은 아마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일 것이다.


 혹시 밀리에 서재에 있을까 하는 기대로, 검색창에 '피터 싱어'를 입력했다. 아쉽게도 『동물해방』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의 이목을 끄는 제목이 하나 들어왔다. 바로 『효율적 이타주의자』였다.


효율적 이타주의자 피터 싱어


 처음에는 공감되는 문구가 많이 등장하였다. 그러고서는 '어, 나도 효율적 이타주의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에게도, 오랜만에 만난 '내가 평상시에 생각하는 것들을 잘 정리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혼자 고민하고 있었지만, 답은 찾지 못할 것 같던 부분들에 관해서도 시원하게 정답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효율적 이타주의인가? 싶었다.


 그러나 책을 계속해서 읽고 나가다 보니, '어...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싶은 부분이 없지 않았다. 나에게 이타주의는 따뜻함이다. 관용이며, 존중이고 사려 깊음이다. 하지만 싱어는 내가 이타주의를 '따뜻함'이라고 생각했다는 것부터 '틀렸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애초에 이 책은 '이타'를 '감정'적 측면에서 생각하는 거의 모든 논거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온전히 '감정적 이타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완전한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될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는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의 사례와 효율적 이타주의를 설명하는 가상 실험이 많이 등장한다. 효율적 이타주의의 사례에는 이런 것이 있다.


 사회복지사 자리와 거대 금융권 둘 모두에 취업할 기회를 얻은 한 경제학 엘리트가 있다. 그는 효율적 이타주의자다. 그렇다면 그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빈민을 직접적으로 돕기보다는 거대 금융 기업에 취업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낫다. 심지어 그러한 거대기업이 빈부 격차를 벌리는 데에 일조한다고 해도 말이다.


 거대 금융권에 취업하여, 심지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그 후 많은 돈을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는 '효율적 이타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금융권에 취업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1순위였던 그가 아닌 다른 2순위의 사람이 그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전체 인구 중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비율은 아주 낮기 때문에, 2순위의 사람은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2순위의 그는 많은 돈을 벌어서 오직 그 자신만을 위해 소비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경제학 엘리트인 그가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면 벌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이타심' 하나만으로 '사회복지사'를 선택한다면, 엄청난 양의 자본, 즉 세상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거대한 기회가 세상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복지사를 선택하는 것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냉철한 계산의 과정을 거친 이후 사회복지재단이 아닌, 거대 금융권으로 취업하는 것이 좋다. 이는 실제 사례이다.


 책에서 소개한 극단적인 가상 실험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생화학 무기 실험이 금지된 상태가 아닌 배경에서) 만약 한 화학 엘리트에게 대량 살생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직 제안이 왔다고 하자. 그가 효율적 이타주의자라면 그는 그 제안을 수락해야 한다. 수락한 후 발각되지는 않을 정도로 게으르게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역시도 위의 사례와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이다. 만약 그가 이 자리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로의 제안은 2순위의 누군가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2순위의 그 누군가는 1순위의 효율적 이타주의자인 화학 엘리트보다 무기 개발에 열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는 대량살생무기를 '열심히' 개발할 것이고, 이는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과 가상 실험은 나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여태껏 이타주의와 관용을 주창해 왔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타주의는 내가 생각해온 것과는 확실히 결을 달리했다. 오랜만에 가치관에 혼란이 오는 경험을 했고, 그만큼 새로 배운 것도 많았다. 생각해야 할 거리가 늘었다. 좋든 나쁘든 이는 감사한 점인 듯하다.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 싱어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나머지 다른 분야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싱어는 아마 자신이 객관적인 분석을 기반으로 한 수치를 매겨 계산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의 분석은 충분히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말처럼 "사실은 언제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특히 예술의 효용성에 관한 한, 예술의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해주지 못한 듯하다. 숨어서 작용하는 예술의 힘은 엄청난데, 싱어는 가시적인 예술의 효과만을 고려한다. 예술은 가시적인 효용만을 고려하는 반면, 빈민과 동물을 위한 기부에 대한 효용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까지 포함하여 계산한다.


 물론 이는 내가 이후 예술계에 종사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는 전제를 고려해야 하긴 할 것이다. 나에게 예술은 최대의 선가치이기 때문에 예술을 다루는 한, 나는 편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타주의'와 '효율성'사이의 연관성과, '효율적인 판단'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나에게는 '종차별' 개념을 다룬 첫 텍스트이기도 했다. 그리고 21세기 현재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기후 위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효율적 이타주의의 논리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은 어찌되었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많은 걸 접하면 접할수록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정 지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또 많은 주장된 '진리'를 접하게 될수록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유일한 진리는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 말 역시 싱어가 들으면 '틀렸다'고 짚어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한 체념적 회의주의는 아니다. 나에게 진리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그 외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희망을 품고 계속해서 진리를 탐구하고 싶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들.


『효율적 이타주의자』 by 피터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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