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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Jul 26. 2021

이것은 시나리오가 아니다: 코수스의 의자 가게

조셉 코수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사막을 횡단하고 있던 한 행인은 오두막 하나를 발견한다. 오아시스라도 되는 것인가, 하는 기대와 함께 그곳에 다가가지만, 물웅덩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붓으로 대충 휘갈겨 쓴 듯한, ‘코수스의 의자가게’라는 글씨가 쓰인 간판이 달린, 나무로 된 낡은 오두막 건물 하나뿐이다.


행인: 사막 한복판에 의자 가게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그렇게 말하긴 하였으나,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어쩌면 유용한 것을 얻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인은 우선 한 번 들어가 보기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는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손님: 주인장 계시오?


 문에 매달린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행인은 행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손님이라는 정체성을 얻게 된다.


손님: 주인장 안 계시오?


 분명히 어디에선가 숨소리는 들리는데, 대답은 없다.


손님: 음... 코수스씨?


 손님 앞에 있던 검은 물체가 갑작스럽게 움직인다. 손님은 화들짝 놀란다. 알고 보니 그 검은 물체는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코수스이다. 코수스는 뒤를 돌아보며 손님을 확인한다.


코수스: 아, 손님이 오셨군.


 코수스는 손님이 느꼈던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있기에 형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코수스가 손님은 발견하지 못했던 전등 스위치를 눌러 불을 밝힌다.


손님: 바로 앞에 있었소? 두 번이나 불러도 대답하지 않던데.

코수스: 무슨 소리요. 나를 부르는 소리는 딱 한 번밖에 들리지 않았소.

손님: 내가 주인장 계시냐고 하는 소리는 못 들은 거요? 분명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와 비슷한 크기로 말했는데.

코수스: 주인장? 주인장은 누구요. 나는 코수스라네. 당신도 알고 있는 것 아니었소?

손님: 당신이 이 가게의 주인 아니오? 나는 분명 ‘코수스의 의자 가게’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말이지.

코수스: 그렇소. 여기는 ‘코수스의 의자 가게’요. ‘주인장의 의자 가게’가 아니지 않소? 그러니 내가 ‘주인장’이라는 부름에 대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 나는 코수스잖소. 당신은 나를 한 번 불렀소.

손님: 말장난 마시오. 그렇다면 여기의 주인은 누구란 말이오?

코수스: 말장난이 아니오. 나는 코수스라는 이름과 함께 나의 추상적인 정체성을 구체화할 수 있소. 그러나 주인장이라는 단어로는 나를 담을 수 없다네. 그러므로 나는 주인장이 아니라 코수스이지.


 손님은 눈을 위로 굴린다.


손님: 그래 그렇다고 칩시다 코수스씨. 그럼 이곳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코수스: 거 참 왜 그렇게 주인을 찾으려 하는지 모르겠구먼. 여보게 손님, 이곳은 어디에 있소?


 손님은 코수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손님은 약간의 어이없음이 곁들여진 혼란스러움이 담긴 표정을 짓는다. 코수스가 말을 덧붙인다.


코수스: 이 건물 바깥을 말하는 거요.

손님: 이 건물 바깥은 사막이지.

코수스: 그래 사막이오. 당신은 사막에 주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손님: 사막에 주인은 있을 수 없겠지. 어느 국가의 영토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이니까.

코수스: 그럼 사막에 있는 모래 한 알 한 알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소?

손님: 아니 무슨 대동강물 파는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말도 안 되지.

코수스: 그럼 그 모래 위에, 마찬가지로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를 쌓아 올려 만든 이 건물은, 주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소?


 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코수스: 기본적으로 소유란 불가능한 개념이오. 따라서 주인이란 불필요한 호칭이지. 나는 불필요한 호칭으로 내가 불리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소. 그래서 주인이라는 호칭에 나는 답을 할 필요가 없는 게요.


 분명 어딘가 맥이 빠진 논리라는 것은 확실한데, 손님의 머릿속에는 반박할 거리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손님은 코수스의 저 기묘한 구렁텅이 논리에 더 빠져들기 전에 화제를 전환하기로 한다.


손님: 알겠소, 알겠소. 그럼 어떤 의자를 파는 건지나 한 번 봅시다.

코수스: 아, 그거 좋지. 내 멋진 의자들을 보여주겠소. 자 이쪽으로 오시오.


 손님은 코수스를 따라 움직인다. 대단히 많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고, 그저 코수스의 오른쪽에 가서 서는 것일 뿐이다. 코수스는 정면에 있는 물체들을 가리킨다.


코수스: 자 여기 의자들이 있소.



 코수스가 가리킨 곳에는 의자 사진 한 장과 실물 의자 하나, 그리고 무어라고 많은 글씨가 쓰인 종이 한 장이 있다.


손님: 의자‘들’? 여기 의자는 하나밖에 없지 않소? 어디 의자들이 있단 말이오?

코수스: 무슨 말이오? 여기 의자가 세 개나 있지 않소?


 손님은 실물 의자를 가리킨다.


손님: 이거 말고 또 의자가 어디에 있다는 거요?


 코수스는 고개를 두 번 가로젓는다. 그리고 실물 의자 왼쪽에 있는 의자 사진을 가리킨다.


코수스: 이 사진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오?

손님: 의자이지.


 이번에는 실물 의자 오른쪽에 있는 종이를 가리킨다.


코수스: 여기 종이에는 뭐라고 쓰여 있소?


 손님은 종이 속 글자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이것이 사전에서 ‘의자’가 적힌 페이지를 떼어온 것임을 깨닫는다.


손님: ‘의자’라고 쓰여 있군.

코수스: 아주 좋소. 그렇다면 여기 의자는 몇 개요?


 손님은 코수스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깨닫고 경악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코수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다.


코수스: 당신 입으로 말했잖소. 저기 왼쪽의 사진은, 의자. 저기 가운데의 의자는, 의자. 저기 오른쪽의 종이는, 의자. 그럼 의자는 세 개 아니오?

손님: 사진 속 의자와 종이에 쓰인 글자는 진짜 의자가 아니잖소!

코수스: 그렇다면 사진과 종이는 가짜라는 게요?

손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코수스: 그렇다면 이것들은 환상이라는 것이오? 그렇다기에는 내 손에 잡히는구려.


 코수스는 사진과 종이를 한 번씩 만지고 온다.


손님: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것이오? 주인장, 아니 코수스씨 당신의 논리는 아주 비약 덩어리이군!

코수스: 나의 모든 말의 근거는 당신의 시인에 있소.


 손님은 다시 한 번 눈을 위로 굴린다. 이번에는 푹 꺼질 듯한 한숨 소리와 함께이다.


손님: 좋소. 그럼 아무튼 가운데 것이 의자인 것은 맞는 것이지? 그럼 앉아보기라도 하겠소. 걸어오느라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잘 됐구려.

코수스: 잠깐 기다리시오!


 코수스는 의자에 가까이 가려 하는 손님 앞으로 끼어들어 의자와 손님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이제는 당황스럽지도 않다는 듯, 손님은 눈을 한 번 길게 감았다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눈을 뜨고 말을 잇는다.


손님: 이번엔 또 뭐요? 구매할 게 아니라면 앉는 것도 안 된다, 뭐 그런 건가?

코수스: 그런 것이 아니오. 내가 그렇게 빡빡한 사람으로 보이오? 이것은 의자가 아니올시다.


 손님은 더 당황스러울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있었나 보다, 얼굴을 찡그린다. 손님은 천장을 향한 그의 두 손바닥을 코수스에게 내밀어 보인다.


손님: 아니 아까 저 사진 속에 있는 의자도, 의자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사전의 한 페이지도, 이 실물 의자도 의자라고 하지 않았소?

코수스: 정확히 이해했구먼!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의자가 아니게 된 것이오.

손님: 아니게 된 것이라니, 의자가 의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이번에는 무엇이란 말이오?

코수스: 이것은 예술 작품이오.


 손님은 말없이 눈알을 위로 굴린다. 그리고 다시 찡그렸던 표정을 푼다. 코수스는 아래 대사에서 작은따옴표가 걸린 단어들에 힘을 주며 말한다.


코수스: 당신이 진정한 ‘의자’의 개념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 전까지는 말이오, 이것들은 그저 사진 한 장이었고, 글자가 적힌 종이 한 장이었으며, 앉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소. 그러나 이제 당신은 ‘의자’가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소?

손님: 고맙게도, 당신 덕분에 그렇게 되었소.

코수스: 하하, 고맙다니 그것 참 감사하구려. 본디 예술은 개념에 관한 고민이오. 제아무리 익숙한 것이라고 하여도 당신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 많지. 친근한 개념에까지도 의문을 던져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는 것, 그것이 예술이오.


 손님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는 것을 넘어서서 관조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어디 한 번 더 말해 보라는 듯 그저 코수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코수스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코수스: 예술은 개념이오. 당신은 나의 ‘물질’에 의문을 제시했고, 당신이 의문을 제시한 순간 이 물질들은 개념을 담은 하나의 ‘작품’이 되었소. 마치 당신이 나의 가게, 의자가 작품이 된 순간부터 전시실이 된 이 가게의 문을 연 순간부터 당신은 행인이 아니라 손님이 된 것처럼 말이오. 아 참 이제는 손님이 아니지. 저 물질이 작품이 되었다는 것은 당신이 손님에서 감상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오. 축하하오.

감상자: 고맙소.

코수스: 좋소. 그럼 어떻게, 나의 작품이 마음에 드오?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의 개념을 사는 것은 어떻소?

감상자: 그래, 그럼 저것이 의자가 아니라 작품이 된 개념이라고 칩시다. 그럼 당신은 개념을 어찌 팔 수 있고 나는 개념을 산 대가로 무엇을 받을 수 있소?

코수스: 작품인 의자와 의자, 그리고 의자를 받을 수 있지! 안타깝게도 개념을 팔아넘기지는 못하오. 내가 대동강 팔아먹는 김선달도 아니고, 어찌 개념을 팔겠소. 다만 당신은 이 의자와 의자와 의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그 순간 당신은 이제 손님도, 감상자도 아닌 나의 작품의 수집가가 되겠지.


 그 순간, 어디에선가 감상자와 수집가 경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니 감상자와 콜렉터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아침 알람으로 자주 쓰는 노래이다.


잠듦과 잠 깸 사이에 있는 사람: 갑자기 이게 꿈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코수스: 아니지. 아무래도 불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기이한 꿈이었다.




*작품정보

조셉 코수스 Joseph Kosuth,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 1965, Wood folding chair, mounted photograph of a chair, and mounted photographic enlargement of the dictionary definition of "chair" © 2021 Joseph Kosuth


*이 ‘시나리오가 아닌 글’은 코수스의 직접적인 말이나 생각에 근거를 두지 않습니다. ‘예술은 개념’이라는 코수스의 주장을 제외하자면, 이 글은 온전히 이 글의 작가이자 코수스 작품의 감상자인 필자의 상상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한 마디로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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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5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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