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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푸름 Aug 04. 2021

무관심은 폭력의 연료

Yuval Noah Harrari, Sapiens

Yuval Noah Harrari, Sapiens, Vintage, 2015, 383p-384p

양계산업에서 암탉 하나는 바닥면적 가로 25cm 세로 22cm 정도에 불과한 우리에 갇힌다. ··· 사실 우리가 너무 좁아서 날개를 펴거나 똑바로 서는 것조차 힘들다. 

(중략)

돼지는 포유동물 중 지능과 탐구심이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한다. 아마 유인원 다음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공장식 돼지 농장의 축사는 너무 좁아서 그곳에 갇힌 돼지는 문자 그대로 ‘몸을 돌릴 수조차 없다’. (걷거나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략) 

많은 젖소는 그들에게 할당된 평생 중 대부분을 비좁은 울타리 안에서 보낸다.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대소변 위에서 잠을 자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한다. 

(중략)

이러한 공장식 축산의 연료는 ‘무관심’이다. 닭알, 소젖, 그리고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이 먹고 있는 닭, 소, 돼지의 살점이나 산물의 운명에 관해 시간 내어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

Yuval Noah Harrari, Sapiens. Vintage, 2015, 383p-384p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무관심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수저를 들기 전에 반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고자 한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폴 매카트니의 말처럼 “도살장 벽이 유리로 되어 있다면 모든 사람은 채식 지향인이 될 것이다.” ‘모든’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관심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국주의 시절, 노예제도가 성행하고 있었을 때 그것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자본을 투자하여 노예를 사들인 이들은, 노예들이 일하는 곳인 플랜테이션 농장에 발 한 번 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관리인에게 숫자를 보고받았을 뿐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에게 노예제도는 너무나도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성장의 원동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관심의 산물인 노예제도의 산물은 설탕, 카카오, 커피와 같은 것들이었다. 설탕, 카카오, 커피의 소비자들이 모두 인종차별주의자였을까? 그들은 그저 설탕, 카카오, 커피를 맛있게 먹었을 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맛있는 걸 맛있게 먹었을 뿐이었다. 그저 그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노예제도의 산물은 무관심으로 인해 꾸준히 소비될 수 있었고, 그것은 다시 어떤 존재를 기꺼이 짓밟도록 도왔다. 무관심과 함께.


Yuval Noah Harrari, Sapiens, Vintage, 2015, 383p-384p


 하라리의 말마따나 노예제도의 동력은 인종차별주의가 아니었다. 노예제도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의 무관심 셋의 합작이었다. 셋의 공통점은 셋 모두 '인간 이성'의 산물이라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무관심으로 인한 무지는 죄일까? 나의 편의, 나의 무지는 결국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무지가 죄라는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살아가며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제한되어 있고,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알고자 함'은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했기 때문에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것에 책임질 수 없다. 모든 것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있다.


 선택과 책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무관심을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기보다는 공공연한 폭력을 방조하겠다고 말하는 쪽에 더 가깝다.


 알고자 함은 책임이고, 무관심은 방관이다. 자유와 책임감의 결여를 헷갈려해서는 안 된다.




성산동 비건베이커리 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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