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저 꿈을 꾸었을 뿐..

by ANNA

‘경단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다 어감마저 어쩜 이리 찰떡처럼 더러운지..

더 정확히 말하면 ‘된장녀’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녀’라는 호칭 자체가 거슬린다. 그것들은 결국 특정 여성 집단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낙인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경단녀란 단어를 쓰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 굴려보고 검색도 해보고 챗지피티한테 자문을 구해봐도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국어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단어를 대체할 수단은 없었다.





나 또한 짧지 않은 '경력 단절 여성'의 길을 걸었다.

겉으로는 건강 문제 때문에 직장을 내려놓았다고 했지만, 그 속살에는 육아로 인한 시댁과의 갈등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나 또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직장을 떠나는 이유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육아’라는 구조적 이유 앞에서 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이 꼬맹이부터 한창 커갈 나이에 벌어들이는 월급으로는 비싼 육아비용이 감당되지 않는 고만고만하게 버는 여성들이 일을 그만둬야 했고, 자식들이 엄마 손을 타지 않아도 되는 시점부터는 돈이 궁해진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여성들을 철저히 외면하기 때문에 '경단녀'라는 말이 등장했다.


‘경력 단절 여성’을 차갑게 외면하는 사회와, 일자리와 돈을 간절히 원하는 엄마들의 처절한 줄다리기.

그 팽팽한 긴장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나 역시 힘겹게 그 길을 건너왔다.




다만 일반 '경력 단절 여성'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면 나름(?) 전문적인 기술을 가졌기에 원한다면 눈높이와 조건을 낮춰 충분히 취업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외면했다는 점이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똑같은 일을 한다면 그 일을 인생 정년까지 지속해야 할 듯한 서늘한 느낌이 들었고, 나인투식스 직장인으로 돌아가 스트레스 받으며 인생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서 버텼다.


그래서 이왕 일을 한다면 인생 2막을 설계한다는 각오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자 노력했고 꿈을 꾸었다.


마침내 롤모델을 찾았고, 꿈을 꾸었고, 기회를 잡았고, 꿈을 실현했다.


빌딩숲으로 출근하던 커리어우먼에서 알바를 전전하며 허황되어 보이던 꿈을 꾸던 여자는 마침내 전 세계를 일터로 삼게 되었다.


한때는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던 여자가, 어쩌다 전 세계를 인솔하는 길 위에 서게 되었을까?

이제 그 굴곡진 사연을 하나씩 풀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