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여행업 종사자의 반전 과거사

by ANNA

'다행히 결핵입니다'

긴장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나는 결핵 판정을 받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결핵인데 다행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자식 둘을 시부모님과 함께 키우며 직장생활 하고 있었을 때였다.

힘들게 얘들을 돌봐주는 시부모님을 외면 할 수가 없어서 5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댁으로 출퇴근 하며 시댁살이를 했던 것이 건강 악화의 시작이었다.


남편 없는 시댁에서 젖먹이 둘을 돌보며 직장 생할을 하는 고충은 상상 그 이상이었고, 잘 시간, 먹을 시간 줄여가며 일과 육아에 매진하며 얻었던 육체적 고단함과 더불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몸은 점점 이상 상황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뼛속까지 공돌이로써의 당연한 수순으로 금융사 전산실 프로그래머로 직장 생활을 시작 했고, 그 직장에서 결혼과 출산을 겪었으며 직장생활 10년차 정도에 한번의 이직을 감행했었다.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퇴직 후 입사전까지 제법 많은 시간을 빼서 아이들과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걸려온 한통의 전화

이직하기로 결정된 회사의 인사처였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폐결핵 미정'이란 판정이 나왔습니다. 정밀 검사 받아서 이에 대한 확실한 소견이 있어야 입사 가능합니다.'


전화 받을 당시 몸은 멀쩡했지만 금이 간 유리처럼 불안이 번져왔다.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몇 해 동안의 폐 사진을 들춰봐도 선뜻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며 일단 정상 소견을 써 줄 테니 3개월 뒤에 다시 오라는 말을 건넸다.

그 덕에 입사는 허락되었지만, 그 사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 기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깊어졌다.

그러나 입사한 회사에서의 업무는 살인적이었고 나는 폐결핵 사건을 까마득히 잊은 채, 그저 흔한 감기쯤으로 여겼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재검사 시기가 다가와서 마침내 마주한 폐 사진은 참담했다. 이미 병은 조용히 진행되어 왼쪽 폐는 반으로 쪼그라 있었고, 그 아래에는 정체모를 물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폐 아래에 고인 물을 빼내기 위해 열흘간의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곧바로 입원해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제시한 가능성은 폐암과 폐결핵, 이 두 가지였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는 제발 폐암만은 아니기를 가슴 졸이며 기다렸기에 막상 폐결핵 판정을 듣자 아이러니하게도 안도감에 가까운 기쁨이 밀려왔던 것이다.


폐결핵이라고 하면 과거 영화에서 여배우가 콜록콜록 기침하다 흰 손수건에 묻은 피를 발견하면서 깜짝 놀라며 죽어가는 암시를 했던, 그러니 걸리면 죽는 병의 대명사였지만 의학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약만 꾸준히 먹으면 완치할 수 있는 착한 병이 되었다.


소견 잘못 써줘서 회사로부터 원망을 듣게 된 담당 선생님도 폐 아래 찬 물만 빼면 정상적인 회사 생활 할 수 있다며 으샤으샤 용기를 불어 넣어줬고, 이직한 회사에서의 업무에 적응해가며 한참 재미 붙여가고 있던 나로서도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퇴원하면 더욱더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 기여를 하겠다는 포부를 품으며 퇴원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나의 바램과는 반대로 남편은 지속적으로 퇴사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외국계 회사 연구소 소장으로 발령 나며 인생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남편의 퇴사 요구에 커리어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 반, 남편 믿고 이제 좀 쉬어 볼까? 라는 마음이 반반으로 갈려 고심하던 중 결국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주부'로써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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