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중독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내 인생의 흑역사

by ANNA

퇴사를 망설였던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토록 무시하고 우습게 보던 '주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과장님으로 불리던 내 이름은 택배 아저씨만이 불러 주었고, 직장을 그만둔 이후 **엄마라는 자리에 내 자아를 내주게 되었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뤄 아이를 출산하고 가정을 챙기며 아이가 건강한 성인이 될 때까지 살뜰히 보살펴야 하는 그 어렵고 숭고한 직업을 난 왜 이리 무시했던가?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던 엄마에 대한 부끄러움과 직장여성에 대한 동경심이 만들어낸 못난 콤플렉스였다.


어쭙잖은 완벽주의로 똘똘 뭉친 그 시기의 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이 미웠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이 지겨웠다.

열심히만 일하면 완벽한 결과로 나를 보상해 주던 직장생활과는 너무도 달랐다.

컴퓨터공학 출신의 사고방식은 0 아니면 1

그래서인지 뭐든 극을 달렸다.

보통 주부와는 달라 보여야 한다는 알량한 자존감으로 옷과 장신구를 사댔고, 포장된 껍데기로 멋을 내자니 무엇을 걸쳐도 받쳐주지 않는 통통한 몸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작정 굶어서 빼는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굶다 폭식하기도 하고, 폭식하는 날은 토하기까지..


정신은 피폐해지고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키우는 학부형으로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애들을 잡기 시작했다.

큰애가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시행한 독서왕 프로젝트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기 위해 초등학교 1학년이 감당하기 힘든 양의 독서를 아들에게 강요했으며, 매일 문제집을 풀게 했고, 난 그렇게 아이들 성적을 내 노력으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 즈음에는 울고 있는 아들과 화를 주체 못 해 씩씩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접하기 일쑤였고, 다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꼈을 즈음

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문제집을 체점하는 중, 너무나 완벽한 주관식 답을 의심하여 살펴 보니 정답지를 보고 베껴 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불러서 다독이며 물었다.

아들이 울먹이며 하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엄마는 제가 틀리면 싫어하잖아요'


내 욕심을 아들이 다 읽은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렇게 힘들게 내 욕심 하나를 내려놓았다.


정신, 육체 모든 게 엉망으로 달리고 있었던 절정의 순간에 이제 나를 위해 살아야 할 때라는 결심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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