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폭식의 어둠 속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죽음의 경고 앞에서 나는 삶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by ANNA

결핵으로 망가진 건강을 되찾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지만, 퇴사 후 깊은 우울증의 수렁에 빠지며 폭식증에 걸렸고 불어난 몸이 용서가 안 돼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정기검진시 의사가 심각한 어조로 경고했다.


'결핵은 못 먹고 과로해서 걸린 병인데, 다시 이런 식으로 다이어트하다간 죽을 수도 있어요. 반으로 줄어든 폐의 상태도 그대로입니다. 살려면 잘 먹고 운동하세요'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죽어?

내 나이 아직 마흔도 안 됐고 애들도 어린데, 내가 죽으면 우리 새끼들 엄마 없는 하늘아래 불쌍해서 어쩌나?

천국이고 나발이고 난 지구별이 좋아.

근데 이 세상의 반의반의 반의반의 반도 탐험 못해봤는데, 아무리 천국이 천국인들 무슨 의미겠냐고?

결정적으로 난 천국에 배정될 자신도 없단 말이야.


난 못 죽어!!!


병원 다녀온 그날 잠든 애들 얼굴 부비며 눈물바람으로 뒤척거리며 밤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운동이라니..

운동은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로 담쌓고 살았으며, 회사 단합대회로 청계산 갔을 때는 초입에서 몰래 이탈해 마음 맞는 저질체력 동지들과 아침부터 고기 구워 먹은 게 마지막 운동이었던듯하다.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내가 아는 운동은 걷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몸을 일으켜 온동화 끈을 조여매고 그날 새벽 무작정 걸었다.


새벽빛이 번져오는 하늘 아래를 걸으며,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온기가 온몸을 돌며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듯했다.

모든 감각들이 나의 새출발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걸으며 다짐했다.

우울, 집착, 불안, 회의가 나를 잠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이제 진정한 나를 찾자


그래서 매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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