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생이 달라졌다
퇴사 후 발병한 쇼핑중독과 육아집착증, 다이어트 강박증 등등등
나를 갉아먹던 각종 중독들을 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시작한 것이 여행과 산행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
이것이 한 가지만 집중하기도 힘든데, 회사일과 육아를 둘 다 완벽하게 하려 하니 결국 골병이 났고,
직장인의 업이 사라진 이후엔 모든 열정이 교육으로 쏠리니 이 또한 파국으로 치닫았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는 산행을 시작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여자는, 목표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에 세운 목표는 언뜻 보면 허황돼 보였던 ‘대한민국 100대 명산 완등’이었다.
불가능해 보였지만, 한 걸음씩 산을 오르다 보니 그 자체가 즐거워졌고, 어느새 해외의 명산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거창한 꿈이라기보다, 그땐 그냥 ‘나도 한번 해냈다’는 식의 일종의 플렉스를 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철없던 나는 아직도 ‘평범하게 살림하는 주부’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나푸르나’
처음 들었을 때,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수 많은 생명을 삼켜버린 잔혹한 산이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안나푸르나'라는 이름은 마치 꽃 이름 같고, 봄날의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회사 초년생 시절, 잠깐 함께 일했던 동갑내기 여사원은 금요일마다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출근하곤 했다.
지리산으로, 설악산으로 주말마다 산을 타러 간다며 웃던 모습이 그땐 그저 멋져 보였다.
어느 날 휴가를 다녀온 뒤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이야기를 쏟아냈다.
얼마나 장엄하고 멋진 곳이었는지 열변을 토하던 그녀 앞에서, 내 인생과는 절대 상관없을 듯한 그 멋짐만 감탄하며 그저 입을 벌리고 '와, 대단하다'며 흘려들었더랬다.
고등학교 체력장을 마지막으로 참으로 일관성 있게 운동과는 담쌓고 살았던지라, 회사 야유회로 갔던 청계산 등반도 용납 못해 올라가는 척만 하다가 도로 내려와서 고기 구워서 먹고 있었던 내가 산을 오르게 될 줄이야..
산을 타기 시작하면서, 마치 숙명처럼 ‘안나푸르나’라는 이름이 자꾸 떠올랐다.
히말라야 산맥의 한 봉우리,
히말라야라고 하면 내겐 그저 TV 속에서만 보던, 엄홍길이나 허영호 같은 전문 산악인들이 얼음덩어리를 기어올라 태극기를 꽂던 그곳이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안나푸르나, 그 산은 어떤 곳일까?’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히말라야는 선택받은 산악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정상은 아니더라도, 베이스캠프까지는 일반인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코스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톡 하고 켜졌다.
그때부터 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확히 말하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언젠가 꼭 밟아보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먼저 남편을 설득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친구들과 간간히 함께 갔던 자유여행은 허락했던 남편이 안나푸르나 트레킹만큼은 단호하게 결사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번 마음먹은 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성격이었기에 끈질기게 남편을 설득하며 타협점을 찾은 것이 자유여행이 아니라 '패키지투어'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몇 편 안 되는 글들을 읽으며 느꼈겠지만 나란 여자는 겉으로 보이는 걸 중시하고 허세끼 가득한 여자였다. (과거로 표현하지만 현재도 그닥 변한 게 없다)
당시 내가 알던 패키지 투어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여행고자들이 깃발만 따라다니며 주요 명승지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가소로운 투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편의 허락이라도 받아낸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난 안나푸르나 패키지투어를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몰랐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참석했던 그 트레킹 패키지여행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을 줄은.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국 내 안의 잠든 나를 깨운 기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