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의 별이 인도한 길

by ANNA

두근두근

꿈에 그리던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없던 중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안나푸르나 인솔자입니다. 준비하는데 궁금한 사항 있을까요?'

'침낭이 없는데 사야 되나요?'

'대여해 드리니 여권만 잘 챙기시면 됩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세월을 담은 노련미와 여유가 느껴졌다.


패키지여행은 인천공항에서 인솔자와의 미팅을 한 후 일정표 및 항공권을 전달받은 후 비행기에 탑승하게 된다.

공항에서 만난 인솔자는 일흔이 넘은 어르신이었다. 막 등산에 맛을 들인 ‘등린이’ 눈으로 봐도, 그의 얼굴에는 산과 함께한 세월이 그의 주름마다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대전, 부산, 제주도, 영천 등등 다양한 곳에서 온 가족, 친구, 싱글 등등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팀의 일원으로써 낯선 사람들과 난생처음 패키지 투어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떠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네팔을 한 번만 다녀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한번 그 매력에 빠지면 반드시 다시 찾게 되는 곳

그곳이 바로 네팔이었다.


네팔은 실로 마법 같은 나라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사람들의 미소는 햇살처럼 따뜻했다.


나도 일행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함께 공감하고 감격하고 감탄했다.

히말라야 골짜기를 물들이는 쏟아질듯한 별은 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네팔 아이들의 순박한 미소가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스래빠만 신고 그 험한 골짜기에서 짐을 지고 뛰듯이 다니는 쉐르파들은 또 어찌나 경이로운지..


고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거지 소굴 느낌의 롯지도 아늑하게 다가왔다.

히말라야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행 인솔자'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안나푸르나에서의 밤은 길고 깊었기에 저녁 식사 후 자연스럽게 난로가 있는 롯지의 홀로 모여들게 된다.


싸구려 보드카를 곁들이며 그가 세계 각국을 다닌 모험담을 펼치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여행이 좋아서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시간의 제약을 받았고, 생활비를 쪼개 여행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내가 다닐 수 있는 여행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기에 지인 찬스를 많이 사용했다.

해외에서 나한테 “한번 놀러 와요”라는 말,

그것이 빈말이라면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여행에 관해서만큼은 빈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몸소 증명하듯, 정말 많이도 떠났다.



거기다 남편은 홀로 여행은 허락하지 않았기에, 결이 맞는 여행 친구를 구해야 했던 일도 큰 걸림돌 중 하나였다.

이래저래 힘들게 가야 했던 여행을, 저분은 돈을 벌면서 한다고?

세상에 저런 환상적인 직업이 있었다니..

저런 직업 가져보면 소원이 없겠네.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이후 그냥 막연히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상상도 못 했다.

꿈을 꾸던 일을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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