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솔자의 시간 속에서 조금씩 사라진 것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로,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무조건 그의 걸작들만을 봐야 하는 곳이다.
2014년, 인솔자를 하기 전 정확히 4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녀왔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중부 유럽과 이탈리아까지 전부 돌아보는 일정이라 스페인을 들를 여유는 없었지만,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무리를 해서 바르셀로나만 딱 하루를 집어넣고 그 하루를 온전히 성가족성당과 구엘공원을 보는 데에만 할애했다.
성가족성당의 외관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과 내부에 들어섰을 때의 감동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그저 멍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의 손길과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다가 퇴장 시간이 되어서야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그렇게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신의 손길을 빌린 듯한 이 걸작을 인생에 단 한 번만 보고 지나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방문하겠다는 다짐은 4년 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해외 인솔 일을 업으로 삼으며 가장 처음 방문한 나라가 바로 스페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현지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점점 완성에 가까워지는 성가족성당을 다시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체투어의 특성상 빡빡한 일정에 맞추다 보니 내부에서 주어지는 자유시간은 고작 20여 분 남짓이었지만, 몸담고 있던 회사가 스페인 전문 여행사였기에 앞으로도 계속 방문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당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스페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성가족성당 티켓을 확보하기조차 어려워졌고, 일정의 중반을 지나면서부터는 인솔자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날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성가족성당 방문이 반복될수록 처음의 감흥은 점점 옅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짧은 자유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오히려 내 티켓이 나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6년 후, 스페인 가이드로서 다시 성가족성당을 찾았을 때는 상황이 조금 더 ‘악화’되어 있었다.
단체 티켓을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손님들의 티켓을 개별 티켓으로 발권하게 되었고, 그 결과 가이드조차 내부에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가이드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나 좋아'라며 기뻐하기 까지 했으니, 그 변화는 꽤나 분명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또 다른 이슬람 건축의 걸작인 알함브라 궁전의 경우, 인솔자 티켓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겉으로는 아쉬운 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산하며 은근히 들뜨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다른 인솔자들과 커피 한 잔을 놓고 수다를 떨며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꽤나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남들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성가족성당과 알함브라 궁전.
물론 분명한 걸작이지만, 여행이 일이 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감상은 둘째치고 입장하는 순간부터 마무리되는 시간까지 손님들을 챙기고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면, 게다가 그런 방문이 열흘에 한 번꼴로 반복된다면 그 감정은 더 이상 처음과 같을 수가 없다.
여행이 좋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여행의 즐거움이 의무로 바뀌는 순간부터 그것은 점점 손이 가기 싫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그 지역의 새로운 곳을 하나라도 더 보고자 분초를 아껴가며 움직이는 손님들과는 달리, 나와 가이드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커피숍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더 간절해지곤 했다.
돈 벌며 여행하고 싶어 인솔자 일을 선택했지만, 여행이 일이 되는 순간부터 그 좋아하던 감각은 서서히 무뎌지고 설렘 대신 책임이 앞서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비행기를 타는 일조차 기대가 아니라 준비와 점검의 연속이 되었고, 눈앞의 풍경은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일정 속에서 관리해야 할 하나의 요소처럼 느껴졌다.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그 안에 오래 머물다 보니 여행은 더 이상 나를 들뜨게 하지 않았고, 어느새 짐처럼 어깨에 얹힌 채 나를 따라다니는 무엇이 되어 있었다.
이게 과연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