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내게 당겨준 친구
쾰른에서 하루 자고 뒤셀도르프로 간다. 뮌헨에서 오는 친구 정네와 만나기로 해서. 정은 유럽에서 벌써 10년 넘게 살았다. 스물세 살에 처음 알고 꽤나 친하게 지냈는데 정이 유럽에 가면서 소원해졌다. 내가 유럽으로 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절친해졌다. 뮌헨에서 내가 사는 아인트호벤까지 차로 8시간 거리인데 3년 간 세 번을 만났다. 우린 서로를 아니까. 이젠 누굴 새로 만나면 알아갈 시간은 적고, 알아야 할 역사는 길어서 알기를 좀 포기하게 된다. 나를 알릴 부분도 흠 없는 곳만 골라 보여준다. 줄곧 방어한다. 정은 그래서 특별하다. 유일하게 마음이 놓이는 친구다.
남편의 이직으로 정은 뒤셀도르프로 이사 예정이다. 집을 알아보러 6시간 운전해 달려왔다. 나는 1시간이면 오는 거리이므로 얼씨구나 만나기로 했다. 한식당 후 키즈카페에 가자 했는데 독일은 내가 조사하는데 한계가 있다. 정은 식당을 알아보다가 그냥 밥 파는 키즈카페에 가자고 했다. 우리 가족 넷과 정의 가족 셋이 편히 밥 먹을 곳을 유럽에서 어떻게 찾겠나. 키즈카페 알아봐 준 것도 고맙다.
간만에 만난 우리는 약속도 안 했는데 선물을 준비했다. 나는 일부러 찾아 들른 한국슈퍼에서 산 몽쉘통통, 정도 그랬을 한국 배 3알. 메이드인 코리아끼리 메이드인 코리아 선물을 한다.
이사를 오면 정도 이직을 해야 한다. 아인트호벤의 회사에 지원해 본단다. 출퇴근이 힘들겠단 얘기를 하니 남편이 껴든다.
남편 : 그래도 독일보다 네덜란드 도로 상태가 좋아요.
정: 네덜란드는 속도제한이 있잖아요. 독일은 없는데...
(낮엔 100km, 밤엔 120km 속도 제한이 있다.)
남편 : 크루즈 걸어놓고 한 차선에만 있어도 되어서 할만해요.
정: 느린 것보다 차선변경이 낫지 않을까요?
사실 차 몰고 오면서 남편과 네덜란드로 이민 와서 다행이란 얘길 했다. 영어가 웬만큼 통해서 적응이 그나마 순탄했고 인종차별도 유럽 내에선 없는 편이다. 나라가 작아서 택배가 하루 만에 오는 것도 좋다. 식생활이 소박해서 소박한 요리실력이 흠이 아닌 것도, 수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보풀 있는 옷을 줄기차게 입을 수 있는 것도 좋다. 나쁘게 보려면 나쁘게 볼 수 있고 여기 사람들도 자조하는 면들이지만 내가 사는 곳의 면면이 정답고 귀엽다. 내 것이 아니었던 내 주변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는 걸 보니 나의 타국이 나에게 스미고 있음을 느낀다. 정도 독일의 아우토반이 낫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정의 타국도 정에게 스며들었겠다. 각자 환경과 불화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서 모두 잘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느글거리는 패스트푸드를 먹고 아이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게 시간이 가버렸다. 당분간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고 한탄했지만 이렇게라도 줄기차게 만나려는 관계임이 기쁘다. 외국 살면 이런 관계는 하나도, 반개도 없기 때문. 혹시 이런 게 베프인가? 단박에 꼽을 수 있는 월등하게 친밀한 친구. 확실하게 정이다. 정에게 내가 베스트가 아닐지라도 베스트 언저리임이 분명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중년에 다다라서, 유럽까지 와서야 베프를 임명해 본다. 정은 내 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