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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새로운 소통법

팀 잉골드 『조응』

by 김설

혼자는 도무지 모르겠는, 감을 잡을 수조차 없는 단어가 조응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제목 자체가 좀 막연해서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고 부러 읽었다고 해도 맞는 말입니다.

세상과 사람과 대화하는 게 나는 그렇게 어렵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아요. 하긴 그 소통이 쉽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아무튼 나와의 대화도 잘 못하는데 세상과 대화를 하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건지 의문스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팀 잉골드의 『조응』을 읽으며 알게 된 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살아왔나. 뭐 그 정도였습니다. 진짜 주고받음이 무엇인지 모른 체. 때로는 받기만 하고, 반대로 주기만 하면서 현명함 같은 건 1도 없이 한 방향으로만 미련하게 살았다는 건 이 책을 통해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두꺼운 책을 읽고 얻은 게 고작입니다.




작가는 조응을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말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 심지어 인간과 공간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미묘한 교감이라는데. 뭔가 철학적이고 어려운 개념 같았습니다.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의 그 묘한 교감, 비 오는 날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내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리듬, 늦은 밤 책을 읽다가 작가의 문장과 내 마음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들. 스쳐 지나가는 이런 경험들이 다 조응의 순간인가?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을 때 친구의 목소리 톤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그 뒤에 숨은 고민까지 헤아려지는 것. 그게 조응의 힘일까?

둘 사이에 말 한마디 오간 게 없는데도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과 그 자리에 앉는 할머니. 할머니의 피곤한 표정, 청년의 배려심, 그리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할머니의 모습까지.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장면. 이런 게 조응의 모습일까요?

서로를 의식하고, 상황을 읽고,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 마치 춤을 추듯 서로의 움직임에 맞춰 조화를 이루는 것. 이런 순간들은 사실 눈치채지 못할 뿐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데, 이것이 조응일까요?


책을 다 읽었는데도 여전히 알쏭달쏭합니다.
온통 의문투성이. 물음표만 잔뜩 던져준 책이네요. 책이 말해준 것들이 왜 공허하게 들리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그 이유를 좀 헤아려 봤습니다. 그런데 말하기가 좀 꺼려집니다. 왜냐하면 좋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요. 그래도 뭐 솔직히 말할게요. 나는 이 조응이라는 걸 잘 할 자신이 영 없습니다. 꼭 이래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노력의 영역인 것 같아요. 폰을 내려놓고 상대와 눈을 마주치기, 상대방의 기분을 세심하게 살피기,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작은 노력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째 점점 더 어렵더라고요. 혼자 하는 노력이라면 결과가 좀 없어도, 변화가 더뎌도 내가 감당하면 그만이지만 상대가 있다면 혼자의 노력으로는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난 열심히 반응을 하는데 상대가 묵묵부답이면 다 때려치우고 싶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이 조응이라는 작업(?)에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미묘한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는 끈질김,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끈질김, 때로는 오해받을 수도 있는 진솔함을 유지하는 끈질김. 이런 노력이 공허하게 느껴져서 포기하고 싶어도 참아내는 끈질김. 하지만 이것 없이는 진짜 소통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가 잘 안되겠죠. 참 이래저래 어렵습니다.

『조응』은 삶의 태도에 대한 책입니다.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고 싶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싶은 모든 이들이 읽으면 감동받을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는 아닌 것 같군요. 이 나이쯤 되면 안 되는 건 용을 써도 안된다는 개똥철학이 생겨서 말이죠.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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