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결국 견디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과분한 사랑도, 싫어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견뎌야 하는 일 같습니다. 왜 견디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봤는데, 세상에 이미 나와 버린 나의 책, 지금은 주워 담을 수 없는 책을 책임지는 중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쓴 책<사생활들>로 기억하는 데요. 프롤로그인지 에필로그인지 정확하지는 않아요. 이런 문장을 썼을 겁니다. (요즘 기억력이 심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쓰는 건, 언젠가는 제 안의 진짜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희망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면 더 이상 남의 시선이 무섭지 않을 것 같고 책이 나오면 삶을 좀 가볍게 여길 용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산문집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문학은 일기가 아니다. 자신의 일기를 문학이라고 주장하거나 착각하는 글쓴이를 만나면 당혹스럽다.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곧 소설적인 장면이라 믿고, 자기가 느낀 감정을 특별한 문학적 발견으로 인지하며, 자기가 겪는 마음의 문제나 모종의 발견이 곧 시적인 순간이라고 강하게 주장할 때 독자는 민망해진다.
이런 글을 읽으면 가슴이 졸여지는 건 아무래도 에세이를 쓰는 사람 이어서겠죠. 요즘은 시인도 소설가도 에세이를 많이들 쓰지만 그들은 에세이만 쓰지 않으니 나처럼 찔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요?
내가 그동안 썼던 책은 대부분 나에게 일어난, 사적이라면 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에게만큼은 고유한 사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일일 수도 있을 겁니다. (자녀의 우울증과 이혼, 또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크고 작은 일을 겪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그런 이야기는 누구나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고 진학을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뻔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겪고 느낀 감정은 나만의 감정이니까 분명히 고유합니다. 내가 어떻게 다듬어 문장으로 만들었나에 따라 그것은 김설의 글이 되고 때로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겁니다. 문학적인 의미와 가치는 나중에 따지더라도 말이죠. 같은 이야기를 읽더라도 어떤 작가만의 고유한 문장이 좋아서 그 작가가 좋아지는 것처럼요. 작가만의 뉘앙스. 그 사람이 시선이 닿는 곳을 좋아해서 한 작가를 사랑하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문학은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운이 좋았던지 지난 5년 동안 그런 이야기쯤은 나도 쓰겠다는 말을 듣지는 않았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졸아든 마음을 쓸어내립니다.
흠.... 이런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냐면.. 누군가가 내 책과 나의 작업을 깎아내려서입니다. 깎아내리는 말 사이에서 슬픔이 한 움큼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가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쉽게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사람과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아무튼, 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고 모호하게 내비쳤던 표정을 읽어내느라 마음이 상하고 지쳤나 봅니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로 살고 싶어집니다. 라고 여기에 쓰고 있네요. 참 한심.... 그런데 진짜 그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