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책이라는 사물과 읽는다는 행위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책의 제목은 대체로 책의 내용이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한나 슈미츠는 왜 자꾸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걸까. 단순히 지적 세계에 대한 갈망이라고 하기에 집요하다.
글을 모른다는 건 그녀의 가장 큰 비밀이자 수치심의 근원이기에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인물. 나는 한나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했다.
한나에게 처음 책을 읽어준 미하엘. 책을 읽은 시간 동안 둘은 가장 친밀했고 그래서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 미하엘은 한나에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체호프의 단편 등을 읽어준다. 읽어주는 행위는 중요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비쳤다. 한나는 단순히 책 내용을 즐기는 것을 넘어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그들의 관계에서 가장 순수하고 평등한 순간이다. 미하엘이 읽어주는 책에 집중하는 한나의 모습에서 내면에 숨겨진 연약함과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보였다.
한나가 두 번째로 책을 읽으라고 요구한 사람은 수용소에 있던 소녀들이다. 소녀들에게는 왜 책을 읽어달라고 했을까.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했다고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는지. 도덕적 책임을 외면하거나 희석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인지, 책 읽기를 요구함으로써 그들을 지배하고 지적 우월감을 느끼려 했던 건지. 예측하기 힘든 심리의 소유자 한나 슈미츠. 책에 빠져들수록 그녀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럴수록 이 여자가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독서 모임이 끝난 지금까지도 안다고 말하기 힘들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크기의 상처를 남긴다는 거다. 문맹을 숨기기 위해 직업을 포기하고 재판에서 불리한 선택을 하며,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한 한나를 보면서 지적 세계에 속하고자 하는 인간이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도 느꼈다.
한나는 마지막까지도 나치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며 저지른 범죄에 대해 명확한 회개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감옥에서 스스로 읽고 쓰기를 배우는 모습에서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속죄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에게 책 읽기는 자신의 도덕적 실패를 간접적으로 마주하는 방식이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