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중입니다

멈춤에 대한 변명

by 김설












잠시 멈추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일상을 채우는 사소한 일에만 충실했었다고나 할까요. 멈춤의 시간은 자신만 알고 있는 시간이라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멈춰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이 시간을 사랑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아주 잠시 멈춤을 멈춥니다. 글쓰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멈춘 시간에 대하여 말하고 싶어 이른 아침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당신들도 나같이 숨이 차서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 걸 압니다.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장 그 자리에 멈추세요. 당분간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을 멈춤으로 채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최대한 느린 호흡으로 살아가기를 권합니다. 이를테면 밥을 해 먹는 일도 말입니다. 최대한 천천히, 겹겹이 쌓여가는 시간의 주름 사이에 한참을 머문다 라는 느낌에 집중하는 겁니다. 쌀을 씻어 놓고 다른 때와는 다른 냄비를 선택해 보는 거예요. 냄비밥을 짓습니다. 냄비 속에 담긴 쌀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까지 가만히 냄비를 바라보면서 기다려 보는 거죠. 당신의 공간에 음악이 흐른다면 그것도 잠시 꺼두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냄비와 불린 쌀이 가스불과 함께 내는 들릴 듯 말듯한 작은 앙상블에 귀를 기울입니다. 적막합니다. 그 순간 마음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외로움이 밀려올 수도 있어요. 내 머릿속을 지배하려는 외로움이라는 관념을 가만히 다른 곳으로 치워 놓으셨으면 합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멈춤의 가장 강력한 방해꾼입니다.


내가 왜 멈춤을 택했을까요. 나는 수시로 발행을 하겠다는 집착과 글을 생산해 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자꾸만 무언가를 써내고 지웁니다. 발행에 대한 집착과 글쓰기의 욕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쓴 글은 다시 읽어보면 역시 욕망의 찌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겨우 이런 것을 써 놓겠다고 그렇게나 기를 쓰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그럴 때 나는 용기를 내어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집니다.


















커피콩을 갈고 종이 필터를 깔고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갈린 원두 위를 조용히 덮는 크레마를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작은 소리로 또르르 커피가 내려옵니다. 빠른 속도와 간편함을 선택한다면 당장 시끌벅적하지만 최고의 커피 맛을 내주는 규모가 큰 카페를 가야겠지만 멈춰 있을 때는 핸드드립을 해보세요. 마치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과 시간이 동시에 일시 정지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힙니다. 커피가 떨어지는 장면까지도 슬로 모션으로 보이는 착각마저 듭니다.

글쓰기에 욕망과 발행의 집착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도해 보세요. 언제까지 멈춰 있어야 하냐고요? 그건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묻지 않아도 자신이 가장 확실히 알게 됩니다. 이제는 멈춤을 멈춰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커다란 욕조에 천천히 물을 받아놓는 일과 비슷하거든요. 찰랑찰랑 물이 넘치는 순간이 오면 그때 비로소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아. 물론 이것은 제 경험일 뿐입니다. 당신들은 이미 나보다 먼저 시작한 일이라서 내가 뒷북을 치는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당신들은 이미 글쓰기 고수들이니까요.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요. 글 쓰는 일은 원래 고뇌 속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지난한 글쓰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자아도취 중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글쓰기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가. 인생을 너무 재미 위주로 살아가려는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면 뭐.... 할 말 없지만요. 하긴 그렇습니다. 멈춤의 시간을 갖는 일이 너무 잦은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이 돼버렸네요. 제 글은 언제나 마지막이 맥없이 끝나 버리는 편입니다. 이래서 저는 자주 멈춰야 합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않으면 이런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고 있거나 근본 없는 글을 생산해 내거든요. 그래서 나는 다시 멈추러 갑니다. 금방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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