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공모전 나도 작가다
이유모를 고통을 겪다 보면 어느 날부터 신에게 대들거나 더 이상 신 따위에 의지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겪어내야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고통 속에 매몰되어 살았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여자가 딸아이를 낳아 나도 모르게 불행을 전염시키고 두 사람이 함께 불행해졌다. 희망을 만들어 보겠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간신히 만든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말과 글에 쫓기다가 지치고 피곤해져서 관심 이외의 것들은 언제부턴가 외면하는 버릇이 생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간과 세상을 완전히 모른척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줄곧 자신과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느라 타인의 불행과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와 아이의 고민은 결국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주제였기 때문에 완전한 배제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이를 자세히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보니 할 말이 그렇게 많아지더라. 마음속으로 웅얼거리던 말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어딘가에 조용히 앉히고 싶다는 욕망이 드는 건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쓰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일상이 더 중요했다. 쌀을 씻고 호박과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매일 아침 하루 동안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맑은 공기를 집안으로 들이는 일과 자기가 피어날 순서를 잊지 않고 환한 얼굴을 내보이는 베란다 화초에게 물을 주는 일이나 고양이의 화장실 모래에서 밤새 쌓인 똥오줌을 치우고는 마지막으로 천천히 커피콩을 갈고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일처럼 별일 아닌 사소한 일상이 훨씬 중요했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예술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나의 사소한 일상이 예술이라면 그 세계를 기록하는 일도 나름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상과 일이 그렇게 이어진다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는 일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남이 쓴 책도 한 몫했다. 남이 쓴 책이지만 이 책이 나다. 이건 내 이야기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을 수없이 만나왔다. 글에게 내 우울함을 이해받았고 어지럼증에 시달릴 때마다 급한 데로 그때그때 수혈받았다. 몇 마디 말로는 단정 지을 수 없는, 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모호한 감정을 끝내는 방법으로 책이 내린 처방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절망이 끝날 때를 기다려주는 책을 읽으면서 결국 내가 얻은 건 무언가라도 써야 한다는 당위성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쓰는 사람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한결같이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에 나이 50이 되고서 작가가 아니라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대답을 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글을 썼다. 가끔은 써놓은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내 글이 세상에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을 해본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까지 작가의 대열 끄트머리에 줄을 서지 않아도 세상에 좋은 글은 널리고 깔렸다는 생각에 항상 주춤거렸다. 인간의 인생은 별이 반짝하는 순간에 불과하다는데 그렇게 짧게 반짝이다 가버릴 인생이라면 무엇보다 웃으며 즐겁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반짝이는 순간을 바라보고 기록하며 살다 보니 불현듯 내가 쓴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와버렸다. 노란 표지의 책을 앞에 두고 묻는다. 너에게 글을 쓰는 삶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많은 단어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잡초가 무성한 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또렷하게 남은 기억들을 글로 바꾸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이야기들을 건져 올려야 하는 감정 노동자들이다. 비록 내가 쓴 글이라도 이미 세상에 나와버린 글의 존재를 잊어야 하는 대범함도 필요하고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읽은 이의 말에 좌우되기 시작하면 다른 곳을 곁눈질하고 옆길로 새게 되고 급기야는 매일매일 대수롭지 않게 썼던 처음의 마음을 놓치게 된다. 이런 시시콜콜한 글을 쓰면서 당신이 무슨 작가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여유롭게 대처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재능이 있거나 없거나 그게 무슨 상관이야? 솔직히 1퍼센트의 천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게 예솔 아냐? 특히 글쓰기는 매일 조금씩 성장할 수 있는 분야라서 얼마나 다행인데.
책을 읽은 이와 읽지 않은 이의 삶이 다르게 흐르듯 글을 쓰는 이와 쓰지 않는 이도 삶의 태도가 다르다는 생각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깨끗하고 밝은 곳에는 끝없이 술을 마시는 노인이 등장한다. 집에 가는 시간을 최대한 미루고 깨끗하고 불빛이 밝은 카페에 앉아 슬을 마시던 노인이 두려워했던 것은 허무였다, 누구에게나 깨끗하고 밝고 환한 곳을 원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란 여전히 마음 한쪽에 앉은 우울과 허무를 피해 깨끗하고 밝은 곳으로 나오는 일이라고 해야겠다. 내 글이 언제나 유용하고 믿음직한 문학은 아니겠지만 깨끗하고 밝고 환한 곳으로 나오고 싶은 절실함은 담겨있다.
얼마 전 한번 들으면 하루 종일 입에서 맴도는 중독성 있는 노래를 들었다. 요즘 유행가의 노랫말은 잘 들리지 않고 멜로디가 먼저 와 닿는 편인데 신기하게도 반복되어 들리는 단어가 있었다. 아무 노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자꾸만 반복되고 있었다. 궁금증이 생겨 노래 가사를 찾아보고는 내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을 때마다 하는 생각과 같아서 깜짝 놀랐다. 아무 글이나 일단 써. 아무렇게나 써.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