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아껴야 할 것은 육체
박경리 작가가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위대한 책 토지를 쓰면서 말했었다. 글을 쓰는 자신의 악착스러움에 무서움을 느꼈다고. 그것은 마치 주술에 걸린 것 같았다고 했다. 글쓰기가 지나쳐서 육신에 고통이 와도 그 사슬을 벗어던질 수가 없었다고도 말했다. 박경리 작가처럼 대단한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숫한 육체의 고통을 호소한다.
반복적으로 손목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로 터널 증후군 같은 병으로 고생하거나 바르지 않은 자세로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점점 거북목이 되어간다. 눈의 피로와 시력 저하는 너무 흔해서 애교 수준이다. 신체적인 증상은 여러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하나씩 차례대로 증세가 늘어나기도 한다. 불편함을 넘어서 고통으로 오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얼마 전 출판사에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내 손목이 너덜너덜해졌음을 깨달았고 지금도 틈만 나면 파스를 붙이고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다. 아직까지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의학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그런 날이 곧 올 거라는 것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젊어서 육신을 아끼지 않고 과도하게 사용한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주변의 젊은 작가들도 비슷한 아픔을 호소한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아얏! 하는 작은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올 때도 있다. 이쯤 되면 고장의 근원을 찾고 그것을 완벽하게 뿌리 뽑으려고 노력하거나 원래의 상태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해 수리를 한다.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기계나 도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책상과 의자를 바꾸는 사람도 있고 고감도의 마우스와 고가의 키보드로 주변기기를 바꾸는 사람도 생긴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부실한 육체에서 찾는 사람들은 자세 교정이나 근육 강화를 위해 운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있다. 등산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애매한, 아담한 높이의 뒷동산에 오르는 일과 산책을 하듯 느릿느릿 걷는 일이다. 나이가 오십이 넘은 사람들은 한 번쯤 시도해 본다는 울긋불긋한 등산 점퍼는 절대 입지 않는다. 대신 적당히 몸에 맞춰지고 늘어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동산에 오르는 것도 버거운 날이면 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책길을 한 시간 정도 걷는다. 걷다가 지칠 때는 쉬기 좋은 의자를 찾아서 가능한 아무 생각 없이 앉았다가 그것도 지루해지면 읽다만 책을 꺼내 몇 줄 읽는다. 일 년 전부터 종자골염이라는 조금은 골치 아픈 발병이 걸려서 뛰는 것을 포기했다. 발병이라고 표현하니까 조금 우습게 보일 수는 있지만 발병은 절대 호락호락한 병이 아니다. 십리도 못가 발병이 난다는 아리랑의 가사는 그야말로 자신을 버리고 떠난 님을 향한 무서운 저주가 담긴 노래다. 막상 발병의 주인공이 되어보니 뼈가 쑤시는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 전방위적으로 삶의 질이 추락하는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걸으면서 굳을 대로 굳은 팔도 사방으로 휘둘러보고 손목과 발목도 돌려본다. 뻣뻣한 목도 최대한 부드럽게 풀어주고는 만보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정도의 움직임으로 살이 빠지기를 기대하거나 드라마틱한 체형의 변화를 바라지는 않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일을 즐길 정도의 체력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는 있다.
꾸준한 운동을 하면서 절제되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작가로는 대표적으로 마루야마 겐지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하루도 빠짐없는 마루야마 겐지의 새벽 산행과 삼십 대부터 마라톤 완주를 하기 시작한 하루키, 두 사람 모두는 글쓰기를 육체의 노동으로 생각했다. 오전에 두세 시간 집중해서 글을 쓰고 오후부터는 절필하다시피 한다고 들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쓰고는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노닥거리는 삶의 방식이다. 작가로서 그들이 취한 삶의 방식은 내가 오래전부터 격하게 원하고 꿈꿔온 것이다. 나는 그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힘과 자연스러움은 아무래도 무리하지 않는 삶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따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흉내 내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한결같은 꾸준함을 본받고 싶다. 자신의 삶에 걸맞은 가장 편안한 리듬을 찾아내고 그것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부분은 지나친 의욕이다. 흥이 난다고, 탄력 받았다고.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오늘따라 글이 잘 써진다고 느껴지는 어쩌다 드물게 찾아오는 이상한 날에 그동안 힘들게 고수했던 삶의 리듬을 깨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다가 펜을 놓아야 할 시기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그만 쓸까. 뭔가 망설여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일단 중단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망설여지는 마음을 무시하고 몇 발자국을 더 나아가다가 육체를 혹사하고 급기야는 글쓰기에 실패하게 된다. 망설임의 가장 큰 원인이 피로감이라는 것을 깨닫고 발행자의 삶에 적용시키며 사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좋은 글을 써내고 발행하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즐기려면 결국 모든 것에서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대충 살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내면의 것을 다듬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창작자들은 짧은 시간 집중하고 가능한 오래 쉬어야 한다. 쉬는 것은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남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바라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일상에 숨겨진 사람들의 몸짓과 말 그리고 표정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에 힌트를 찾는다, 그것을 글과 사진으로 옮기는 일이 발행자의 삶이라는 생각이다. 시간이 접혀 주름진 틈 사이에 스며들고 일상의 그림자 뒤에 숨으면 그 안에서 진리까지는 아니지만 삶을 향해 끝없이 품었던 의문들에 답이 될만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발행자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발행할 것인가가 아니라 건강을 포함해 자신을 다듬는 일이다. 이 순간 불현듯 양어깨에 벽돌 하나씩을 얹고 앉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부리나케 글을 마무리한다. 무엇보다 삶에 군더더기를 하나둘씩 없애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가 믿음직스럽다. 지금이 딱 놀기에 좋은 마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