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걸렸을 그 병에 대하여

하이퍼그라피아

by 김설








나는 아무래도 하이퍼그라피아 환자인 것 같다. 하이퍼그라피아는 글을 쓰고 싶어서 주체 못 할 욕구를 지닌 사람을 말하며 측두엽 뇌전증 증상의 일종이다. 이렇게 써놓으니까 꽤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남들이 볼 때는 미친 사람과 비슷하게 보일 뿐이다. 그들은 뭐라도 쓰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들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하다못해 메모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글쓰기라는 것이 욕구를 지닌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업이라면 이 세상에 작가의 고뇌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쓰고 싶은 욕구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가졌다. 그런데도 어떤 날은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나는 그런 면에서 불행한 길을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이 가장 좋지만 만족할 만한 높은 수준의 글을 생산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것과 그것 사이의 딜레마는 언제나 숙제로 남아있다.

그렇게 혼자 좋아하고 남들 몰래 쓰다가 끄적거린 것들을 하나씩 세상 밖으로 꺼내 놓게 되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책과 글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요 며칠 머릿속을 맴돌던 말은 단 한 문장. "잘 쓰고 싶다"였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오히려 글쓰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 부분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 같다. 타고난 소심쟁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뭐라도 써놓고 호기롭게 발행을 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 남들이 써놓은 글과 비교를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치고 비교를 해본다. 언제나 보나 마나 마음에 들 리가 만무하다. 내 글이 내 품을 떠나면 더 이상 내 글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어느 작가의 조언을 들으며 맞다 정말 맞는 말이다 생각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내 글과 나는 한 몸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아. 언제쯤이면 발행하는 순간에 대범할 수 있을까.

















하물며 실비아 플라스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글을 쑬 수 있을까. 많이 써보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작품을 잘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유명한 작가들이 글쓰기의 고난에 대해 말한 것들을 필사 노트에 적어 놓고 내게도 비슷한 고난이 올 때마다 뒤적거려 찾아 읽는다. 물론 훌륭한 작가들의 말을 곱씹으면서도 여러 번의 좌절이 찾아오는데 그건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고민의 출발 지점은 엇비슷했어도 종착점이 너무나 달라서 주눅이 들다 못해 스스로 주제 파악을 하게 될 때다. 가령 시몬 드 보부아르가 "나는 대작가가 아니다. 대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히 전해 주는데서 존재 가치를 두고 싶다."라는 말을 했을 때 당신은 내게 좌절감을 줬어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나도 보부아르처럼 대단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반대로 시시콜콜한 글을 더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시시콜콜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를 줄곧 생각했었다. 그랬더니 인생이 자체가 시시콜콜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보부아르는 평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꽤 대단한 작가로 살았는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쓰기에 관한 한 욕심을 버렸다고 할 수도 없다. 솔직히 그렇다.











책상. 뭔가를 쓰려고 당신이 앉아 있는 그곳 말입니다. 오늘은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아서 당신들이 주로 글을 쓰려고 앉아 있는 곳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멍한 얼굴로 앉아있거나 나처럼 차를 마시는 테이블로 사용하기도 하는 당신의 책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내 하얀 책상은 창문가에 있습니다. 요즘은 하얀 레이스 커튼 뒤로 개나리와 벚꽃이 화사합니다. 책상엔 언제나 노트북과 찻잔 외엔 아무것도 올려져 있으면 안 됩니다.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뒀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멀리 가는 생각을 붙잡기가 힘들어집니다. 고요한 책상 앞에 한참을 앉아있으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진정 나 혼자인 것 같습니다.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라니까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자신의 할 일은 꼭 해내고 마는 철든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얼마 못가 철이 없는 원래의 나로 돌아갑니다. 나를 부르는 것이 많은 계절이거든요. 얼마 전엔 탐스러운 얼글을 한 목련이 긴 목을 빼고 인사를 하더군요. 목련이 가고 나면 진분홍 철쭉이 또 나를 부를 텐데 책상 앞에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을까요. 자꾸만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핑계를 찾아서 밖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질 겁니다.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바로 작가다 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당장 글을 쓰는 사람보다 밖으로 나가 끝없이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하이퍼그라피아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다행인데 왜 서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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