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혼잣말
아침에 눈을 뜨면서 휴대폰을 집어 든다. 어제 메모해 놓은 내용을 토대로 간단한 글을 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글을 발행하면 얼마의 원고료가 입금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글감을 모으고 노트북을 펼친다. 발행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조금 늘어서 그나마 기쁘다.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는 알아줄 것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다. 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거릴 것이다. 휴대폰을 수시로 열어서 죽어가는 글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발행된 글을 큰소리로 읽어본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문장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글은 대부분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 것도 같다. 글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궁금해하지 않는 것들이다. 현재 내가 글을 발행하는 곳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다른 발행처를 찾아봐도 마땅치 않다. 현재로서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미리 읽어내고 흥미를 끌만할 내용을 써내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는 약삭빠르지 못한다.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50살이 훌쩍 넘은 내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남을 흉내 내고 싶지 않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처럼 포장해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진실로 무엇을 바라는가. 글을 통한 소통인가. 아니면 단순히 재미인가. 소통이라면 현재로선 실패고 재미라면 성공이 반이고 실패가 반이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혼자 노는 것에 조금 질린 상태다.
글쓰기 초짜는 글을 쓰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고 타짜는 글을 쓰고 나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의 말을 덧붙이면 초짜는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탄성을 내지르고 타짜는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고 한다. 나는 초짜의 타짜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초짜라도 좋고 타짜가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꼭 뭐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 보다, 글을 열심히 잘 쓰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글쓰기를 즐기는 일이 잘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선 잘 쓰고 싶다. 잘 쓰려면 무엇이라도 읽어서 좋은 글을 알아보는 눈이라도 길러야 한다. 힘을 뺀 글을 많이 써서 여기저기 발행을 하고 자꾸 자꾸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 잘 쓰는 사람들의 글과 비교도 당해보고 이걸 글이라고 쓴 거냐며 얻어맞기도 해야 한다. 아프지만 맷집은 생긴다. 잘 쓰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전에 우선은 뜻이나 잘 전달되는 글이라도 쓰면 좋겠다.
햄스터를 키운 적이 있다. 햄스터는 그저 먹고 싸고 쳇바퀴를 도는 일에만 열중한 동물이었다. 주인이 가는지 오는지 모른다. 햄스터를 키우며 온기를 느끼고 싶어 했던 어린 딸아이는 오히려 더 외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 갔다 오면 먹이를 주고 정을 주었지만 언제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햄스터에게 점점 지쳐가더니 어느 날부터 햄스터를 쳐다보지 않았다. 햄스터가 싫어졌냐는 질문에 딸아이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햄스터에게 싫증이 났다고 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당시 딸아이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했다.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먼저 다가가거나 적극적으로 내 존재를 알릴 용기는 없다. 그래서 짝사랑이 힘든 것이다. 나처럼 이름 없는 발행자들은 관심 있게 글을 읽어줄 사람들을 대상으로 짝사랑을 하는 중이다. 이 짝사랑도 뭐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